시집 <나는 구름에 걸려 넘어진적이 있다>

시집 <나는 구름에 걸려 넘어진적이 있다>

해설 /노철 (문학 평론가,전남대 교수)

 

1, 사루비아 종족의 신선한 감각

 

아파트 평수 늘리기, 집값 올리기에 혈안이 된 세상에서 시를 쓰는 마음은 삶의 과녁에서 빗나가는 일이다. 이 지상에서 행복을 보장하는 것은 '돈'이라는 것을 아는자, 동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닌자, 돈으로 아름다움마저 사버리는 자, 돈 아니면 남자도 아닌자, 돈 아니면 여자도 아닌 자, 이런 종족이 거주하는 나라에서 시인은 무슨 짓을 하는 것일까, 아니 시인이란 추상 명사로 말하기에는 시인들도 이미 여러 종족들의 집합이다. 이 여러 종족 가운데 강영은 시인은 '사루비아 종족'이다.

 

간 밤에 깨꽃

붉게 피었다

 

면도날 같은 달빛

꽃잎 위에 박혀

 

붉은 눈물

화염처럼 번졌다

 

생으로 사루는

그, 진한 빛깔의

목숨을 보고

 

언니야,

큰 언니야

 

달빛 출렁이며

내게로 오면

 

나두야,

깨꽃이고 싶어

 

한 세상을 동여맨 채

피어나고 싶어

 

<사루비아> 전문

 

불타는 사루비아의 빛깔로 피어나는 존재는 화려하다. 면도날 같은 것, 눈물 같은 것, 그런 기타 등등을 동여맨 채 피어나는 사루비아는 황홀하다. 강영은 시인은 이런 활홀한 꿈을 꾼다. 그것은 스스로를 송두리째 불태우고 싶은 욕망이다. 그러나 대개 사람은 살아갈수록 염치가 늘어가고, 염치가 늘어갈수록 불타는 욕망을 눌러야 한다. 그러다가 욕망은 엉뚱한 곳에서 터지거나 새로운 탈출구를 만들려든다. 그런데 강영은 시인은 이런 모험을 감행하지 않는다. 욕망이 던지는 아픔을 감내하면서 그 상처들을 동여맨 존재의 아름다움을 추구한다. 그러므로 그의 시선은 하찮고 누추한 것의 아픔을 포착한다.

 

목숨이 다하는 동안

발바닥이 뜨거웟으므로

가슴이나 머리까지

날카로운 가시가 박혔으므로

 

비에 젖어 누워 있는

저, 쓰레기 통 속의 신발

 

<신발>부분

 

헤어져 버려진 신발을 보면, 그 신발의 주인이 살아온 흔적들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시인은 그 흔적들보다는 신발위 운명을 본다.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닳고 닳는 순간의 뜨거움과 예기치 못한 날카로운 가시 찔림을 감내하는 존재로서 신발, 그 신발이 비에 젖어 쓰레기통 속에 던져진 것을 가슴 아파한다. 이런 점에서 강영은 시인의 시는 감상적인 측면이 없지도 않다. 그러나 이런 감성이 뜨거운 열정이되기도 한다. <계갼의 날들>에서 무너져 내리는 것들이 수직 상승을 기다리는 것이나, <그대 생각> 에서 목숨이 활황 타올라환하게 되는 마음 같은 것, <부활절 달걀이 되고 싶다> 에서 소생하고 싶은 마음 같은 것, 이 모두는 뜨겁다. 이 뜨거운 열정이 꿈꾸는 세계는 어디에 어떻게 존재하는 것일까, 이 시집에서는 감각으로 존재한다.

 

2월은 박하t사탕처럼 돌아온다

언 땅을 두드려

가만히 입술을 대면

어린 싹들이 밀어내는 진한

파~스 향기

 

<2월> 부분

 

유월의 숲에 서면

나뭇잎들이 글읽는 소리 낭랑하구나

몸 밖까지 넘치는 소리들이여

 

<가랑잎이 나를 불렀다> 부분

 

낮달처럼 굽어보는 마음에

가만가만 뿌리내리고 있는

강아지 풀

 

<강아지 풀> 부분

 

진한 파~스 향기, 나뭇잎들의 낭랑한 소리, 뿌리내리고 있는 강아지 풀 들은 모두 감각이다. 언 땅이 입술에 녹으면서 풍기는 냄새가 관절을 풀어주는 파스 냄새라니 참으로 신선하다. 그 냄새를 어린 싹이 밀어내는 진한 향내라니 시인의 속내와 촉수가 온통 싹 틔우고 싶은 열정에 휩싸여 잇는 것 같다. 유월 가랑잎이 바스락대는 소리가 글읽는 낭랑한 소리라니 귀가 번적 뜨인다. 바람과 나뭇잎의 조화가 사믓 줄겁다. 미동도 없는 낮달의 속도만큼 가만가만 흔들리는 강아지 풀이 뿌리내리는 중이라니, 시인의 마음도 낮달과 같아서 강아지풀처럼 뿌리를 내리고 있을 지니 정중동의 마음이 환하다.

 

2, 아슬아슬하게 뭉쳤다 흩어지는 감각들

 

그러나 인간은 아름다운 세계 속에만 머무르르 수 없다. 인간의 마음은 끊임없이 흐르고, 그 흐름은 수 없는 변화 속에서 요동치게 마련이다. 이 요동 속에서 우리는 을 벽을 만난다. 정말 벗어나고 싶은 내가 끝내 벗어나지 못하는 나를 만나기도 한다. 정말 지긋지긋한 나를 만난다.

 

벽이 있다

벽일 때가 있다

부수고 싶은 벽

벽 같은 날이 있다

<벽) 부분

아, 어쩌란 말이냐 이 아픈 가슴을' 이란 가요처럼 어쩔 수 없는 사태에서는 정말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다. 마음이 온통 눈물로 가득하니 아무 것도 볼 수도 들을 수도 없으니, 그것은 벽이다. 그러나 인간은 변한다. 그 변화 속에서 눈물의 벽을 부수고 싶은 마음이 들게 마련이다. 그러나, 벽은 도 다시 앞을 가로막으며 다가온다. 강영은 시인은 이 알 수 없는 사태를 아름답게 묘사하고 있다

 

 

길을떠난다길하나가길게따라온다너를벗어나고싶어!너도그런생각을했었잖니단단한각의뿌리는근육질로뭉쳐허리띠처럼쉽게풀수가없다사방으로뻗어나간너그러움도음한덫처럼한순간을노린다너를벗어날거야!길이웃는다도마뱀꼬리처럼짜를수있니?옆리마다풀꽃을피워내는나를?네생의일부를?

​

벌판에는길이 없다누군가가지나간벌판에는바람이불고풀들이흔들리고발자국이지워고뒤따라온생애가지워진다빈손가락만가진벌판은아무것도기록하지않는다엎드리거일어서거나스스로피고질 뿐무너지지않는삶을계속한다

​

끝과시작을놓아버린벌판위에서길을잃어버리고싶다잠시동안 아주잠시동안만이라도의흔적들을지워낼수있다면벌판끝키큰상수리나무꼭대기위발가벗고뛰노는햇빛처럼린열매들을파랗게물들이는또다른기록속으로소풍나가고싶다

 

< 마음의 황금분할> 전문

​

 

한 걸물 속에 여러가족처럼, 한 사람의 몸 속에 함께 살고 있는 마음들은 얼마나 여러가지일까, 현대인의 마음은 단독조택이 아니라 아파트다. 아파트처럼 여러 마음이 함께 거주한다. 공종주택 같은 마음을 스스로 다스려 항금분할을 할 수 있다면 행복할지 모른다. 이런 시도는 그 자체가 행복한 일이 될 수도 있다.

첫째 공간은 이미 살아온 길 안에서 생각의 뿌리를 내리고 싶은 마음이다. 아니 길이 풀 수 없는 허리띠로 둘러싸고 있어 몸이 되어버린 사태, 거기서는 길을 벗어나려는 것은 무의미한 행동이다. 인간의 육체는 이미 삶에 길들여져 있기 때문 그 길을 도마뱀 꼬리처럼 짜를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마음은 유물론적 인간이다.

둘째 공간은 길이 없는 막막한 마음이다. 과거의 흔적들이 지워지고 바람부는 허허벌판만 펼쳐진 공간, 시인은 매 순간 이런 공간과 마주치고 있다. 매 순간 마다 그는 허허 판에 던져져 있고, 거기서 의지 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살아 있는 한 인간은 허허 벌판에서 바람을 맞으며 스스로 피어났다가 지고 피어났다가 지는 과정을 계속할 수 밖에 없기 대문이다. 그러므로 이 마음은 실존적 인간이다.

셋째의 공간은 무의식으로 탈출하고 싶은 마음이다. 인간의 이성적 사유는 모든 것에 시작과 끝이라는 구획을 설정한다. 논리적 사유는 이런 구획 속에서 이루어진다. 그런데 이런 구획의 설정을 지워버리는 것은 논리적 사유를 지워버리는 일이다. 시인은 모든 것을 지우고, 그리하여 '상수리 나무 위 발가벗고 뛰노는 햇빛처럼' 살고 깊다. 현실의 모든 압력으로부터 벗어나 그 자유롭고 즐거운 세계로 소풍가고 싶은 것이다. 이곳은 모든 이성적 염치로부터 벗어난 세계로 윤리와 질서를 초과하는 놀이의 세계다. 그러므로 이마음은 무의식적 욕망의 놀이를 즐기는 인간이다.

이렇듯 마음을 세가지로 황금분활하는것은 흥미롭지만 지나치게 평면적이다. 여기에는 세가지 마음을 균형잡으려는 시인의 태도가 들어있다. 균형적 태도는 문제를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는 야성이 미약해지기 쉽다. 마음은 분활하려고 해서 분할되는 것은 아니다. 강영은의 시에서는 이 세가지 마음이 아슬아슬하게 뭉쳤다 흩어졌다 할 때 시적 묘미가 더 살아난다.

 

감꽃이 지고, 진 자리엔

 

여름의 눈동자가 바늘처럼 박혀있다

.

처마에선 비둘기가 구구구 울고

​

강아지 혓바닥같은 그늘에 앉아

​

나는 떨어진 감꽃으로

​

열 세살의 내가 목에 걸었던

 

목걸이를 만든다.

 

<유월> 전문

 

'감꽃이 지고, 진 자리'의 허전ㄹ함을 넘어서 감곷을 밀어낸 애기 감을 만나는 놀라움과 생명력을 '여름의 눈동자'로 바라보는 시선이 싱그럽다. 여기에는 눈종자가 '바늘'처럼 박혀 있다'는 가슴 아픈 심정이 함께 어우러져 허전하면서도 깉그럽고, 싱그러우면서도 가슴 아픈 감정이 아슬하다. 이어서 처마 밑 비둘기의 '구구구' 소리가 주는 우울, '강아지 혓바닥처럼 늘어진 권태. 그 우울과 권태의 껍질을 깨고 부활한 열세상의 풋감꽃 목걸이, 그 목걸이를 목에 건 푸르른 유월, 그 유월은 정말로 푸르고 싱그러워 아픔, 우울, 권태 같은 것을 벗어버리는 쾌감이 있다. 여기에는 여러 감정들이 아슬아슬하게 뭉쳤다 흩어지는 묘미가 있는 것이다

 

3, 감각의 제국 가까이에서

 

강영은 시인은 확실히 감각적 이미지가 월등하다. 여기에 운율의 깊이가 없다고 탓하는 것은 무의미한 일일 것이다 이런 수다를 떨어내고 말할작시면 그의 시에는 여전히 감각이 떠돈다

 

개밥바라기별이 뜨면

내 생의 종아리가 단단해진다

식지 않는 기다림이

바글바글 끓으며 부풀어 오르는

된장 뚝배기의 저녁

안락할미새처럼 어린것들을 부르는

사소한 이유만으로도

지상의 모든 저녁을 지나는

저, 生의 종아리들

식탁 다리거나 밥상 다리같이

따뜻하고 둥근 저녁에 이를 때까지

한결같이 무엇을 받쳐 들고 있다

 

<저녁의 노래> 부분

 

저녁밥을 지으며 별을 바라보며 누군가를 기다리는 순간에도 단단해지는 종아리, 뚝배기에 된장이 바글바글 끓어오르면 안락할미새처럼 어린 새끼 부르는소리, 이 저녁에 식탁 다리, 밥상 다리, 내 다리, 네 다리, 그 모든 다리들이 단단해진다. 그것은 제각기 무엇을 받쳐들고 있기 때문이다. 비유하자면 세상의 모든 다리가 부드러우면서도 격조 있는 살바도르 달리의 탁자나 의자가 된 것 같다. 살바도르 달리의 탁자나 의자가 제 각기 인격을 가진 존재로 살아나는 것처럼, 강영은 시인은 의식적으로 이런 감각의 제국을 그리워하거나 쫓아가는 것 같지는 않다. 그는 자신의 몸이 느끼는 감각들을 바라보고 매만지는 정도다.

 

쇼윈도에 걸려있는 옷처럼/남자를 입어보고 싶어/ 블란서 영화에서/ 어린 소녀가 내게 말했다/ 외출을 위해/ 이 옷 저 옷을고르다가/ 그녀의 욕망과 내 욕망 사이의 껍데기를 벗겨낸다

 

<옷> 부분

 

'쇼윈도에 걸려있는 옷처럼 남자를 입는다' 상상만 해도 자유롭고 활달하다. 쉽게 벗고 입을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강영은 시인은 이런 멋진 상상을 끝까지 즐기기 보다는, 그 상상을 자신을 비추는 거울로 바꾸어 버렸다. 옷을 고르는 행동 속에 살아 숨쉬는 욕망을 비추어버린 것이다. 이대로 시인의 매력을 보여준다. 이것이 아쉽다. 앞으로 강연은 시인의 감각적 본능이 더 활발해졌으면 좋겠다. 좀 더 의식적으로 감각의 제국을 향한다면 다음에는 훨씬 풍성한 감각의 제국을 만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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