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조의 호수/강영은
뜨거운 후라이팬 바닥을 휘젓는다
참깨 발가락들이 꼼지락거린다
뒤꿈치를 드는 참깨, 무릎 구부리는 참깨, 한 다리를 직각으로 펴는 참깨,
깨금발 군무를 시작한 참깨들이 “백조의 호수”
무용수 같다
여기저기 작은 무용수들이 튄다
한 발이 올라가면 한 발 세상이 튄다 깨금발 세상이 튄다
발가락이 누렇게 타들어간다 뒤꿈치가 발갛게 벗겨진다
토슈즈 속, 물집 터진 발가락이 가득 들어찬다
물집은 눈물의 집,
발레리나 강수진은 깨금발 세상을 들어 올리느라
일주일에 천 컬레의 눈물을 버렸다지?
천 켤레의 리듬, 천 켤레의 눈물이 허공을 휘젓는다
휘휘 돌아가는 깨금발 세상이 어지러워 나도 모르게 한 발을 든다
왼발 오른발, 번갈아 들며 리듬을 탄다
허공을 높이 찰수록 허공에의 몰입은 고소해지는 걸까
두 발로 허공을 걷어차 본다
허공을 걷어차는 고난도의 연기는 깨소금 맛,
가브리엘의 경지다
손 잡아줄 발레리노 없는 슬픈 체공의 나는
깨금발 호수의 프리마돈나,
타닥 탁, 허공을 차는 동안 두 발을 놓친
나는 어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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