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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머의 리뷰

시선 2009, 가을호 좋은시

by 너머의 새 2015. 10. 22.

트롬세탁기에 관한 보고서/강영은

 

 

비가 억수처럼 쏟아지고 우레 번개가 칠 때
벼락과 함께 땅에 떨어져
수목을 찢어놓고

사람과 가축을 해친다는 뇌수 한 마리,

우리 집 세탁실로 들어왔다
들어온 날부터 외눈박이 눈을 부라리더니
남편을 삼키고 나를 삼키고 아이들을 집어 삼킨다
소용돌이치는 220볼트, 쇠 이빨이
뒤따라온 골목길과 먼지 묻은 발자국을 지워나간다
열대성 호우 쏟아지는 내장 속에서
술 취한 바지와 가리지날 꽃무늬 원피스가 엉켜 붙는다
시너지효과만 주절대는 팬티와 브라자,
쌍방울표

메리야스는 멀티 오르가즘을 탐색하다 빈혈을 일으킨다
게임기에 빠진 모자와 양말이 게임 속도를 높인다
천상의 속도와 지상의 속도가 맞붙자
괄약근을 조이는 세상이 쿨럭거리며
구정물을 쏟아낸다
잃어버린 낙원이 물기 하나 없이 탈수 된다

우리 아직 살아 있지?
햇빛 좋은 베란다에

환골탈태한 감색 바지와 꽃무늬 원피스

높이가 다른 모자와 양말이 나란히 널린다
거꾸로 보는 하늘이 파랗다

 

하느님도 가끔은 지구라는 통을 통째로 돌리신다

 

 

-《시에》2009 여름호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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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눈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다. 시인의 사유 또한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일상의 눈으로 바라보고 일상의 생각으로 관찰하는 것일 뿐이다. 다만 대상을 바라보는 자에게 좀더 세세할 뿐이며  좀 더 적극적일 뿐이다. 나를 둘러산 주면의 삶에 따뜻한 시선을 갖는 것이면 일상의 대상과 나를 견주고 비교대조하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자아가 대상 속으로 들어가기도 하며 반대로 대상이 자아 속으로 들어 올 수 있도록 사유의 폭을 확장시키는 노력을 하는 것이다 바로 시 <트롬세탁기에 관한 보고서>가 시인의 일상이 찾아낸 새로움의 발견이다. 세탁기 자체로는 비생명체의 조작된 기게에 불과하지만 전설 속의 무시무시한 괴물의 이름을 가졌기에 인간계에 생명을 가진 존재로 재탄생할 수 있는 당위성을 갖는다. 이 때 재조사가 강조되는 것은 전설 속 괴물의 속성을 내세워 강력한 세탁력을 부각시키고자 하는 점이다. 시인은 이러한 일상성을 그대로 수용하는 적극적인 자세를 취한다. 찌든 때가 제거된 결과를 "잃어버린 낙원" 에 비유함으로써 열심히 혹은 한 때 즐겁게 지내온 삶의 흔적들에 대해 긍적적이고 따뜻한 시선을 보내고 있는 점을 들 수 있다. 그렇기에 거구로 보는 하늘도 파랄 수 있다. 그러한 시인의 사유가 통째로 돌아가고 있는 지구 세탁기를 만들어 내기에  이를 수 있는 것이다/ 최광임

 

시선 2009, 가을호  좋은시

 

*최광임/ 전북 부안 출생, 대전대학교 문예창착학과 박사 수료 2002년 <시문학>으로 등단, 현재 ,시와 경계>편집장, 창신대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