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니버설 커뮤니케이터, 시인 /권현수 (시인)
*고영섭 「소 ―워낭소리」 (『문학과창작』 2009년 여름)
*주경림 「손맛만 보세요」 (『미네르바』 2009년 여름)
*강영은 「유마힐 민달팽이」 (『불교문예』 2009년 여름)
*박승미 「김수근의 공간사옥」 (『문학과창작』 2009년 여름)
*최금녀 「무생물도 봄을 기다린다」 (『현대시학』 2009년 6월)
*한이나 「타박네로」 (『문학과창작』 2009년 여름)
1.
애니멀 커뮤니케이터(animal communicator) 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흔한 직종이 아니라 아직 확실한 이름으로 자리 잡지 못하고 있어서 동물 치료사, 동물 심리분석가 등의 이름으로 불리지만 서구에서는 꽤 알려진 직종이라고 한다.
하이디 라이트(Heidi Wright)라는 미국의 애니멀 커뮤니케이터가 동물과 교신하는 모습을 지켜보노라면 동물들과도 영적인 소통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이디는 동물들이 놀라지 않게 조용히 다가간다. 눈을 맞춘다. 그리고 몸을 쓰다듬는다. 동물들의 말을 들어주고 위로하고 보듬으며 그들의 심리적이고 감정적인 문제들을 거뜬히 풀어준다. 마치 사람과 사람의 감정 교류를 보는 것과도 같다. 갑자기 사람을 태우기를 거부하는 명마, 떠돌이개로 유랑하다가 구함을 받아 귀한 대접을 받으면서도 돌아누워 은인의 손길을 피하는 개, 두 눈이 멀어지도록 두 다리가 불구가 될 때까지 목숨을 걸고 싸우는 두 마리 강아지 등을 치료(?)하는 하이디의 능력은 대단해서 치료를 받는 동물의 주인도 울고, 하이디 자신도 울고, 그 프로그램을 함께 보던 나도 울었다.
그러고 보면 시인은 유니버설 커뮤니케이터가 분명하다. 동물뿐만 아니라 고갯길에서 만나는 들꽃 한 포기, 산을 넘어가는 흰 구름 한 조각, 떨어지는 유성은 물론 우주의 블랙홀과도 자유자재로 소통하고 감응하고 치료하고 치료받기도 하는 유니버설 커뮤니케이터. 그러한 시인들의 영적 교감을 한 편의 시로 잘 다듬어 발표한 시인들이 있다.
2.
내 너와 함께 걸어온
서른하고 몇몇 해
말없는 너와 나를
이어준 워낭소리
난 가끔 마음을 주었지만
너는 늘 전부를 바쳤다
맑은 눈과 밝은 귀로
전체를 살아 온 지음知音
내 너만 생각하면
초록 논에 물이 돌 듯
메마름 가슴 속에
퍼져오는 진한 온기!
내 너를 떠나보내며
할 수 있는 한 마디 말
고맙다 고맙다,
정말 고맙다.
―고영섭 「소 ―워낭소리」 전문
워어― 워어― 딸랑 딸랑 딸랑. ‘워낭소리’는 시인이 주석한 것처럼 이창률 감독이 ‘롱 테이크 遠寫’ 기법으로 찍은 다큐멘터리형 독립영화 제목이다. ‘무뚝뚝한 노인’과 ‘무덤덤한 소’의 기적 같은 사랑 이야기에 매료된 영화 팬들이 많아서 적은 돈으로 1시간 남짓의 영화를 만든 독립영화의 감독이 관객 290만을 동원하며 189억이라는 수입을 올렸다. 2009년 백상예술대상을 비롯한 서너 개의 국제적인 영화상을 휩쓸었고 무명의 감독을 하루아침에 대감독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시인은 영화의 주인공인 노인이 되어 죽은 소를 위한 한 편의 조사를 썼다. 2음보 4연 4행, 마치 노래를 듣는 것과도 같은 정형화된 한 편의 시가 노인과 소의 사랑을 이야기하고 있다. 늙어서 제 한 몸도 추스르기 힘든 80대 노인과 40살의 늙은 소는 “서른하고 몇몇 해를” 함께 살았다. 소의 평균 수명이 15살쯤인데 40살이라면 인간의 나이로 환산하면 200살이 넘는 고령이다. 수의사마저 한 해를 넘기기 어려울 것이라고 했는데 그렇게 장수할 수 있었던 것은 노인의 정성어린 보살핌이 있었기 때문이다. 농약이 없는 유기농 풀을 베기 위해 절뚝이는 다리로 산을 오르는 노인의 사랑이 있었기 때문이다. 늙고 꼬부라져서 금방 넘어질 것 같다가도 노인이 고삐만 잡으면 소는 워낭소리를 딸랑딸랑 내면서 따라나선다. 노인과 소는 그렇게 평생의 동반자였다. 9남매를 낳아 함께 기른 아내보다 더 잘 어울리는 소울메이트였다. 워낭소리로 서로 영적인 교감을 하면서 함께 일하고, 함께 늙고, 죽는 일을 견디어 내었다. 그 워낭소리는 “맑은 눈과 밝은 귀로/ 전체를 살아 온 지음知音”이다.
여기서 불교학자인 시인이 보고 있는 이미지는 분명 ‘심우도尋牛圖’의 ‘소’의 이미지이리라. 우리나라 절의 대부분이 대웅전 외벽을 단장하는 그림으로 택하고 있는 심우도는 ‘십우도十牛圖’라고도 하는데 선 수행을 하는 수행승의 수행 과정을 목동이 잃어버린 소를 찾아가는 열 개의 그림으로 비유하여 보여주고 있다. 만해 한용운이 말년에 살던 집을 ‘심우장’이라고 하였고, 보조국사 지눌스님이 자신의 호를 ‘목우자’라고 한 것도 바로 여기에서 연유한다. 그 심우도 속의 ‘소’는 바로 우리 모두가 갖고 있다는 ‘본래 면목’ ‘불성’으로서 진정한 우리 존재 그 자체로서의 ‘나’를 의미한다. 그래서 수행승은 영원히 변치 않는 진정한 존재인 ‘나’를 찾아 ‘소 발자국의 흔적을 추적하고’ ‘소의 고삐를 잡아’ ‘소의 등에 타고 집으로 돌아오지만’ 중생 제도를 위해 ‘다시 저자거리로 돌아가는’ 수행을 게을리 하지 않는 것이다.
해가 뜨면 일어나 고삐를 잡고 절뚝이는 걸음으로 일하러 간다. 그 순간에는 아픈 다리와 늙어서 죽고 싶은 생각 따위 떠오르지 않는다. 노인도 소도 그저 일하러 들로 나갈 뿐이다. 가난을 곱씹으며 불평하는 마음도, 돈을 더 벌려는 바쁜 마음도, 모든 생각이 멈추어 버린다. 텅 비운 마음의 평화 속에 느릿느릿 느리게 그런 속도로 그저 일할 뿐이다. 살아갈 뿐이다. 그렇게 텅 빈 마음은 맑은 눈을 주고 밝은 귀를 주고 자연과 하나가 되어 그 속에서 평화롭게 사는 삶의 지혜를 준다.
지혜로운 두 동반자는 ‘워낭소리’속에서 ‘지금 이 순간’을 살 뿐이다.
이제 마지막으로 소의 코에서 코뚜레를 풀어주고 워낭을 떼어내고 그렇게 소를 떠나보낸 노인은 이제 어디에서 “초록 논에 물이 돌듯/ 매마른 가슴 속에 퍼져오는 진한 온기”를 얻을 수 있을는지…… 그저 “고맙다”는 말밖에 할 수가 없다.
시인도 그렇게 소를 치는 ‘목우자’ ‘노인’ ‘소’가 되어 시도 쓰고 학문도 닦으면서 수행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옥천 비아골에 사는 나는 입큰붕어,
식탐이 큰 탓에 지렁이든 떡밥이든 마다않고
모조미끼인 메이플라이 파라슈트, 캐디스의 깃털도 덥썩,
어라, 내 몸이 세상 밖으로 들어올려진다
입질 한두 번에 내 몸이 챔 질 당한 모양이다
“오 하느님, 시험에 들지 말게 하옵시며……”
가슴지느러미부터 꼬리, 아가미까지,
날개 될 만한 것들은 모두 팔딱거려본다
살림망으로 떨어지려는 순간,
“아직, 치어로군”
어려서 볼품 없다는 죄목으로 놓여난다
하느님, 애초부터 나를 잡을 생각은 없었던 게지요
세상의 낚시터에서 모조 미끼까지 던져가며
유혹에 약한 나를 단련시킨다
번번이 걸려들고 마는 나를
언제까지 치어 노릇이나 할 거냐고
까무러치도록 혼쭐을 낸다
고질병인 식탐 때문에
옥천 비아골 세상의 낚시터에서
나는 여러 번 죽는다.
―주경림 「손맛만 보세요」 전문
주경림 시인은 두말없이 “옥천 비아골에 사는 입큰 붕어”가 되어 하이디처럼 동물과 영적 교감을 한다. 시적 화자는 붕어다. 모조 미끼든, 떡밥이든, 지렁이든 가리지 않고 마구 먹어대는 “식탐이 큰” 붕어다. 그러니 낚시꾼의 표적이 되기 십상이다. 미끼에 걸려 “세상 밖으로” 끌려 나와 제발 살려 달라고 “오, 하나님, 시험에 들지 말게 하옵시며……” 열심히 기도한다.
그런데 이 붕어는 아주 긍정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다. 미끼를 따라 끌려나와 공중에서 팔딱거리면서도 ‘시험’이라고 생각한다. 과연 긍정적인 기도의 힘은 무섭다. 낚시꾼이 “아직도 치어로군”하며 놓아준 것이다.
시의 후반부는 시적 화자의 긍정적인 성격이 두드러지게 드러나는 부분이다. 하나님은 자기를 “애초부터 잡을 생각이 없었다”는 것이다. “세상의 낚시터에서 모조 미끼를 던져가며/ 유혹에 약한 나를 단련시킨다”고 생각하고 있다. “까무러치도록 혼쭐”을 내지만 죽이지는 않는 것이다. “고질적인 식탐”을 고쳐주기 위한 ‘시험’일 뿐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절대적인 긍정의 힘으로 붕어는 살아난 것이다. 긍정의 힘은 목숨 따위가 장벽이 될 수 없다. 운명도 바꿀 수 있는 무서운 신념이다.
『The Secret』이라는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책이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장장 2년이나 베스트셀러 1위였다. 그 책의 ‘비밀’이 바로 긍정에 대한 신념을 말해주고 있다. “행복이든, 건강이든, 돈이든 무엇이든 원하는 대로 얻을 수 있다”라고 유명한 저술가와 목사들이, 철학자와 심리학자들이 한 목소리로 믿기 힘든 말을 하고 있다. 완벽하게 믿고 기도하면 우주의 에너지를 “끌어당겨”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거짓말이 아닌 것 같은 수많은 일화들을 열거하면서 ‘끌어당김의 법칙’이라고 하니 믿기 힘들지만 믿지 않기도 힘든 책이다.
그런데 자세히 읽어보면 그 사상의 근저에는 불교 경전 화엄경의 핵심인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사상이 자리 잡고 있다. 일체유심조의 서양 버전인 셈이다. 이 세상 모든 만물은 마음이 만들어 낸다는 것이다. 생과 생을 윤회하면서 몸을 받아 태어나는 것은 내가 그렇게 살고 싶어서 그렇다는 것이다. 마음이 생명을 만들었으니 이 세상의 모든 것도 당연히 그 마음에 의해서 생겨난 것이다. ‘비밀’은 그 마음이 만든 이 우주 만물을 그 마음으로 다시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긍정적인 사고를 하면 행복한 삶이, 부정적인 사고를 하면 불행한 삶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불교 경전 속에서 붓다는 그러니까 세상 만물은 본래의 실체가 있는 것이 아니라 허깨비, 환상에 지나지 않으니 그 환상을 버리고 깨어나라고 가르친다. 그러나 ‘비밀’의 작가는 환상이라고 해도 행복하니까 긍정적인 마음으로 행복을 만들어 붙잡으라고 말하고 있다. 비록 결과는 다르지만 긍정적인 마음이 결국 긍정적인 결과를 만든다는 것은 분명하다.
오랫동안 불교 공부에 심취하고 있는 시인이 ‘비밀’과 만난 지점이 바로 여기다. 옥천 비아골의 붕어는 세상의 낚시터에서 여러 번 죽지만 일체유심조인 긍정의 힘으로 식탐 즉 탐진치를 끊고 분명 살아남으리라.
주경림 시인은 「석양에게」라는 작품으로 2008년 『문학과창작』 작품상을 받으며 그의 시적 여정이 성공적인 궤도를 가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였다. 그 모두가 바로 긍정의 힘에서 나왔음이 분명한 것 같다.
배춧잎 유마경을 읽는다 섬유질 행간마다 푸르게 돋는 경을 바람이 도반되어 따라 읽는 길,
곱게 누벼진 논둑길 밭둑길 밑줄 치다가, 둥근 알 품은 구릉의 젖가슴 한나절 내내 읽다가, 들판에 걸터앉은 구름 한 자락 뭉게뭉게 받아 적다가, 소낙비 젖은 수풀 이슬 도르르 도로 외우다가, 눈부신 햇살 등에 지고 비탈진 고샅길 건너는 행과 행 사이, 등뼈보다 더 물렁한 발자국 따라
바람도 길도 배추 잎 되는 초록 빛, 저 불이법문不二法問!
―강영은 「유마힐 민달팽이」
시인이 유니버설 커뮤니케이터답게 민달팽이가 되어 “배춧잎 유마경”을 읽고 있다. 불교 경전인 유마경과 민달팽이, 공통점이라고는 전혀 없는 두 이미지를 결합하여 버젓이 제목으로 삼아 ‘낯설게 하기’에 성공하고 있다. 덧붙여 그 경이 배춧잎에 씌어 있다고 한다. 독특한 ‘상상력’의 발현이다. 강영은 시인은 거의 신기(神氣)에 가까운 상상력과 바늘 끝 같은 감각으로 일상에 널려 있는 오브제 속에서 다양한 이미지를 이끌어 낼 수 있는 이미지 사냥의 명수이다. 시인의 세 번째 시집인 『녹색비단 구렁이』를 읽어 보면 독자들이 미처 숨 돌릴 사이도 없이 쏟아내는 언어들은 ‘기의’보다는 ‘기표’에 기울어 있어서 그 화려한 이미지에 빠져 시집 한 권이 금방 읽혀진다. 그 시인이 이제 민달팽이가 되어 유마경을 읽고 있다.
『유마힐 소설경』은 불교 경전 중에서도 비교적 후대에 완성된 대승경전 중의 하나인데 주인공인 유마거사는 결혼하여 가족을 부양하면서도 깊은 깨달음을 얻어서 심지어 지혜의 상징인 문수보살까지 가르침을 주는 인물이다. 보시, 지계, 인욕 등 대승의 표상인 ‘보살도’에 대하여 설하고 있는 이 경을 우리 식탁 위에 김치가 되어 날마다 오르는 배춧잎 위에 써 놓았으니 중생 구제는 저절로 할 수 있으리라. 그래서 시인은 민달팽이가 되어서 그 경을 먹을 수밖에 없다.
민달팽이는 모든 움직임이 느리다. 그 움직임을 추적하려면 여간 인내심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그 걸음으로 논둑길, 밭둑길을 가려면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리겠는가. 어렵다고 소문난 불교 경전을 “밑줄을 치며” 읽으려면 바로 그 민달팽이의 걸음이어야 한다. 그렇게 한나절 내내 읽으면서 중요한 부분은 “받아 적기”도 하고 “외우기도”해야 한다. 민달팽이가 “비탈진 고샅길”을 건너듯 “행과 행 사이”를 “등뼈보다 더 물렁한 발자국”으로 찰싹 엎드려 건너야 한다. 민달팽이는 시인과 하나가 되어 “불이법문不二法問”을 듣고 있다.
시인의 시집 『녹색비단구렁이』에 첫 시로 내세운 시 「매미 시편」을 보면 시인은 “17년을 땅 속에 파묻혀 몸 속 가락을 고른 매미가 피를 토하는 명창처럼 쏟아내는 매미 소리”를 노래하고 있는데 바로 시인 자신을 말하고 있는 것 같다. 등단한지 10년이나 되었지만 아직도 초발심 그대로의 열정으로 밤을 새우며 시를 쓰고 있는 시인의 모습이 참으로 아름답다.
유니버설 커뮤니케이터답게 생물뿐만 아니라 무생물인 돌, 나무, 쇠붙이까지 서슴없이 교감하는 ‘신기’ ‘색기’ 넘치는 시인들이 또 있다. 그래서 김동리 선생님도 “기생이 되려다 못된 년들이 글을 쓴다”고 하였으리라.
사내라면
욕심이 났을까?
훔치고 싶었을까?
앞 뒤 안 가리고 따라가고 말지
허리띠라도 잡고 절대로 놓아주지 않지
굵고 분명하고 믿음직스럽고
여유만만한 포용력 하며
그늘 좋은 한그루 나무
바람에 안 흔들리고
비에 젖으면 선이 더 굵어 보이는,
햇빛 아래 눈부신 갈기,
담장이넝쿨에 덮일 달빛 아래 옛 성,
그 사내의 고독에 살이 떨려 와
나, 그의 여자로
그 성에 갇혀
천년만년 살고지고.
―박승미 「김수근의 공간사옥」
박승미 시인이 “허리띠라도 잡고 절대로 놓아주지 않고 싶은” 사내 하나 꽉 잡았다. “그의 여자로/ 그 성에 갇혀/ 천년만년 살고” 싶은 사내 하나 보았다. 그런데 그것은 놀랍게도 목숨이 있는 생물이 아니고 인간이 만든 건축물이다. 무생물인 ‘김수근의 공간사옥’이다.
‘한국의 현대 건축을 상징하는 20세기 최고의 스타 건축가 김수근’이 조선시대 궁궐의 미곡 창고를 관리하던 ‘사도사’의 자리에 자신의 건축회사 사옥과 함께 사저로 지은 건물이 ‘공간사옥’이다. 검정 벽돌의 외장을 가진 구관과 유리 외장의 신관 그리고 그 사이에 작은 한옥을 함께 일러 그렇게 부른다. 고즈넉한 정취에 흠뻑 젖어들게 하는 담쟁이 넝쿨이 수북하고 옛사람들의 생활 흔적을 엿볼 수 있는 돌 맷돌, 돌 수조 등으로 꾸며져 있어 신구의 조화가 잘 어우러져 있는 건축물이다.
자주 화랑을 돌면서 그림을 감상하고 음악을 좋아하며 그렇게 만난 예술 작품에서 흔히 시의 모티프를 찾는 시인의 눈에 그런 건축물이 허투로 보일 리가 없다. 그래서 꽉 잡았다. “굵고 분명하고 믿음직스럽고/ 여유만만한 포용력 하며” “바람에 안 흔들리고” “햇빛 아래 눈부신 갈기”를 가진 “그 사내의 고독에 살이 떨려오는” 남성미 넘치는 매력적인 남정네 하나 만났으니 「모과 1 ―누드」의 “허리끈을 풀어 놓고 누운 여자/ 이봐,/ 하고/ 툭 치면/ 응/ 나?/ 하고/ 돌아눕는” ‘색끼’ 넘치는 시인이 잡아도 아주 꽉 잡아서 천년만년 살고도 남으리라.
박승미 시인은 20여 년을 하루 같이 은근한 시심을 놓지 않고 있어 2005년도 『문학과창작』 작품상을 수상하는 영광을 안은 시인이다. 그 시인이 이제 천년만년 살 집을 찾았으니 앞으로의 시작은 더욱 굳건해 질 것이 분명하다.
백통으로 만든 새 두 마리가
날 자신이 생겼다는 듯 마당에서
날개를 뒤로 모아 푸드득거리고
깎아 만든 나무오리 다섯 마리가
주둥이를 더 높이 쳐들고
막 달려갈 기세이고
모처럼 거풍 나온 오리털 이불 3개는
빨랫줄에서 기분이 좋은 듯 흔들흔들
입 꾹 다물고 과묵했던 파벽조차
빙그레 홍조를 띄우는 봄날,
그들 속에 끼어들어 나도 토요일 오후를 건들 건들
배 부풀어 오른 오리털 이불이
주책없이
나일론 빨랫줄은 끊어먹을까 걱정하며.
―최금녀 「무생물도 봄을 기다린다」 전문
“늦으막하게 내린 신끼로 굿을 치고 다니며/ 선무당 사람 잡는 소리가 등을 훑어 내리고/ 옷 속으로 식은땀 쭉쭉 흘린다 // 세상만사 굿 한 방이면 끝나는 듯/ 작두날 위에서 물구나무서며/ 신끼 휘두르니 위태위태”한(「자화상」) ‘신기’ 넘치는 최금녀 시인이니 “백통으로 만든 새”나 “깎아 만든 나무오리”와의 교감쯤은 다반사다. “모처럼 거풍 나온 오리털 이불”과도 함께 “토요일 오후를 건들건들” 노닐고 있다. 때는 “입 꾹 다물고 과묵했던 파벽조차/ 빙그레 홍조를 띄우는 봄날”, 시인은 “그들 속에 끼어들어” 한껏 신기를 발휘하고 있다. 볕 좋은 봄날, 오리털 이불을 빨랫줄에 널어 말리는 평범한 일상의 와중에서도 잠든 만물을 일깨우는 봄의 신과 교신하고 있다. 시인의 신기는 교감하지 못할 것이 없을 만큼 효능이 대단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시라는 독화살을 받고/ 맹독이 전신으로 퍼져나고 있는”(「큐피트의 독화살」) 시인이니 만큼 “물 좋은 시”를 찾아서 그 독을 풀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 독을 풀어서 “마지막 영혼의 증표로/ 영정 사진 놓을 그 자리에/ 사진 대신 육필 시 한 편 놓기를 바라는”(「육필시 한 편」) 시인이기 때문이다.
최금녀 시인은 늦은 나이에 등단하였지만 그 시적 여정은 그것을 보상하고도 남을 만큼 치열해서 시인 특유의 그 신기를 마음껏 발휘하여 등단 10년도 되지 않아 시집 5권에 일역시집, 영역시집까지 두루 갖추게 되었다. “너무 기술적으로 시를 쓰려 하거나 타성에 지나치게 젖어 습관성으로 시쓰기를 하고 있는 시인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시단”(강우식 시인)에서 그 신기를 인정받아 많은 평론가들의 주목을 받으며 ‘현대시인상’ ‘한국문학 비평가협회상’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시인의 그 신기는 아마도 “영정 대신 육필 시 한 편” 놓을 때까지 계속되리라고 넉넉히 짐작해 볼 수 있다.
오시게
서쪽으로 바람 부는 날은
쓰러질 듯 주렁주렁 매달고 다닌 주머니 속
보랏빛 욕망, 가뿐히
내려놓고 오시게
귀 먼 늙은 친구 기다리고 있는, 산비알 농막으로
영원도 한 순간임을 아시는 이
슬프지 않은 것을 슬퍼할 줄 아시는 이
쓸쓸함을 즐기시는 이
오시게
풀풀 먼지 날리는 황톳길 타박타박 걷는 타박네로
혼자인 듯 서러운 이 세상
오시게 오시게
함께 살아도 외로운 사람들,
지금 바로 여기,
타박네로.
―한이나 「타박네로」 전문
어디로부터 와서 어디로 가는지를 모르는 “풀풀 먼지 날리는 황톳길”을“보랏빛 욕망” 가득 담긴 주머니를 “주렁주렁 매달고” 지친 걸음으로 타박타박 “타박네로” 걸어가고 있는 우리들의 生.
“혼자인 듯 서러운 이 세상” “함께 살아도 외로운 사람들”과 어울려타박타박 “타박네로” 걸어가고 있는 우리들의 生.
“영원도 한순간임”을 이미 깨닫고 “슬프지 않은 것도 슬퍼할 줄 아는” 넉넉한 자비심이 넘친다 하더라도 “서쪽으로 바람 부는 날”이면 주렁주렁 매단 주머니 “가뿐히 내려놓고” “귀 먼 늙은 친구 기다리고 있는, 산비알 농막으로” “타박타박 타박네로” 걸어가야 하는 우리들의 生.
이미 『능엄경 밖으로 사흘 가출』하여서 “저 무한한 우주의 영원한 침묵”(버나드 쇼)속 삶과 죽음의 속삭임 하나쯤 ‘득음’하였을 것 같은 한이나 시인이 전래동요 「타박네로」에서 모티프를 얻어서 그 노래 풍으로 우리를 부르고 있다. 삶에 지친 우리를 “오시게, 오시게” 손짓하고 있다. “쓸쓸함을 즐기는 이”도 그만 눈물이 난다. 이토록 서글픈 정조 넘치는 시를 이토록 아름답게 쓰려면 시력 15년쯤은 되어야 하리라. 15년을 하루 같이 시심을 다듬으며 사흘 가출에도 삶의 비밀 하나쯤은 넉넉히 채집할 수 있는 유니버설 커뮤니케이터로서의 시인이 되어야 하리라.
3.
유니버설 커뮤니케이터답게 신기 색기 넘치는 시들을 읽으면서 워낭소리에 취해 보기도 하고, 입 큰 붕어가 하느님과 교신하는 것을 듣기도 하고, 민달팽이가 먹는 배춧잎을 맛보기도 하면서 한여름 더위를 잊을 수 있었다. 한 사내의 고독에 살이 떨려오는 경험도 하고, 백통으로 만든 새가 하늘을 나는 날에는 타박타박 타박네로 사흘쯤 가출도 하면서 좋은 시 읽는 재미에 빠져 열대야를 거뜬히 넘겼다. 풍성한 여름이었다.
2009, 문학과 창작, 가을호
권현수 시인
진주 출생
건국대학교 교육 대학원
Hawaii Pacific University 2년 수학
2003 ≪불교문예≫로 등단
시집 <칼라차크라> 문학아카데미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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