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시 위의 한 문장 /강 영은
산 낙지 흡반, 느리게 흘러가는 문장을 읽는다
접시 넘어 테이블 위로 떨어진 토막 난 문장
꿈틀거리는 기표 위에는
편도차편 같은 얼굴하나 어른거리는데
한 생을 지나는 길은 개펄 하나 밀고 가는 거라고
식도를 지나 위장까지
낱말 한 칸씩 밀고 가는 완행열차 한량
내 뻘 속, 차안에서 피안으로 들어간다
시집 "녹색비단구렁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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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감 속 육탈의 사랑 /김 세형 (시인)
꿈틀거리는 산 낙지가 뻘 속 몸을 파고 들어간다 산 것이 산 것 속으로 점액질 문장을 느리게 새겨 넣으며 빨려 들어간다 산 것은 필시 수컷이고 뻘은 암컷을 의미하리라 그러나 수컷은 결코 사랑을 서두르지 않는다 완행열차의 느림의 속도로 꿈틀 꿈틀 암컷의 뻘로 파고든다 뻘의 부드러운 내면을 쓸고 지나가며 새긴 자신이 온몸으로 쓴 육필시 문장을 흡반으로 천천히 맛있게 음미하며,
그렇다! 한 생은 이렇게 느리게 느리게 그대의 온 몸 내부를 탐식하며 깊이를 알 수 없는 그대의 뻘구멍같은 목구멍 터널 속을 완행의 속도로 꿈틀꿈틀 흘러들어가는 거다 한번 파고들면 다신 살아나 올 수 없는 극락이며 지옥인 밑구멍과도 같은 목구멍, 그 칠흑의 막장과도 같은 구멍 속으로 빨려들어가는 사나토스적 사랑, 일생에 단 한번 편도 운행 차편인 자신의 뜨거운 몸에 자신의 토막 난 생의 기표를 싣고 미련 없이 그대의 뻘 구멍속에 틀어 박혀 숨구멍이 막혀 퍼덕이다 그렇게 부드러운 그대의 내면 속에서 행복하게 숨을 거두는 거다
그러나 실은 산 몸을 삼키는 것은 뻘구멍이 아니라 오히려 산 낙지다 꿈틀거리는 육필시 문장을 써내려가는 것은 산 낙지이지 산 낙지를 목구멍 속으로 삼켜 넣는 자가 아니다 산 낙지는 이미 객체가 아닌 주체다 산 것을 삼키는 것은 오히려 식도를 지나 위장으로 삼켜 들어가는 산낙지다 아니다! 누가 누구를 일방적으로 삼켜먹는가? 사랑이란 서로가 서로를, 주체가 주체를 주체 못하고 맛있게 삼켜 먹는 일, 하나가 된 사랑에 있어 객체란 있을 수 없다 이것은 주체와 객체가 전도되어 들어간다기 보단 주체와 객체가 한 덩어리로 칭칭 엉켜 한 몸의 문장으로서의 주체를 그리며 서로의 몸속으로 삼켜 들어간다는 의미다 그렇게 한 몸으로 삼켜진 뻘구멍 속은 이미 차안이 아니다 산 낙지와 산 몸, 그 문장과 문장이 서로를 삼켜 한 몸을 이룬 피안이다 객체가 사라진 주체로서의 몸이란 기표로써의 입문자와 기의로서의 불입문자의 구분이 사라진 몸이며 따라서 그 뫼비우스 띠처럼 혹은 녹색비단구렁이처럼 서로에게 칭칭 엉긴 몸은 차안으로서의 몸이자 피안으로서의 몸이다.
육감의 몸을 벗어난 육탈의 몸, 그러나 만지면 아직도 꿈틀거리는 육감 속 육탈의 몸이다 그녀의 문장이 지나간 자리마다 녹색비단구렁이의 번쩍이는 비단껍질 문장이 깔려져 있다 제주도 태생인 비바리의 뜨거운 생명력이 녹색비단구렁이거나 산낙지로 환생됐다 그녀 자신이 꿈틀대는 녹색비단구렁이이며 산낙지다 그녀가 꿈틀대면 죽어가던 시문장들이 일제히 비단 옷을 입고 꿈틀댄다 /창작21문학평론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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