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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머의 리뷰

환한 "발" 위에 닿은 마음의 꽃/전혜수(문학평론가)

by 너머의 새 2016. 3. 7.


장자 연못/ 강영은


두물머리 연못에 연꽃이 피었다기에
연꽃 보러 세미원에 갔지요
연꽃의 발가락을 보듬고 있는 진흙은 보지 않고
붉고 하얀 꽃들만 보았는데요

이마 위에 툭, 얹히는
빗방울 하나

구름의 발가락인 빗방울들이 제 몸 가득
연못을 길어 올리고 있었는데요
둥근 물무늬를 그리며 환한 발바닥을
보여주는데요

한 잎 가득 연밥을 지어 올린
저, 발가락 공양

흙투성이 발바닥을 씻어주는데요
닿지 않는 마음에
수천 송이 연꽃을 피워낸 건
그 때였어요

시집<녹색비단구렁이>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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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한 "발" 위에 닿은 마음의 꽃/전혜수(문학평론가)



나는 두물머리(양수리) 세미원에 가본 적이 없다. 세미원은 경기도 양평에선 꽤 유명한 테마 공원인데 500여가지 연곷의 아름다운 자태를 볼 수 있다는 물의 정원, 생각해보면 정원이란 것이 마음의 번민을 덜어내기에 적절한 공간이기도 한데, 더구나 꽃과 물이 어우러진 연못으로 꽉찬 정원이라면, 모네의 그림(수련)을 직접 보는듯한 환각이 보태져 마음의 번뇌 따위는 생각조차 나지 않을 것 같다.

그러나 강영은 시인은 아름다운 연곷에만 시선이 머무는 것이 아니라 꽃잎 아래 가려진 물 속의 정경에 관심을 기울이고, 한 송이 꽃을 피워낸 물 속 힘의 원천을 유추해낸다. 그것은 " 연곷을 보러 세미원에 갔"을 때 우연히 만난 허공의 물인"빗방울"로 인한 것인데, "구름의 발가락인 빗방울들이 " 연못에 무심코 떨어진 것이 아니라 생명의 원천으로 작용하여 "연못을 길어 올리고 있"다는 역발상에서 비롯된다. 빗방울과 연꽃, 연꽃과 연못의 구도는 결국 물과 꽃의 관계지만 열매(꽃)와 뿌리(물)의 관꼐를 새롭게 설정하는 시인 특유의 시선이기도 하다.

평범한 이들은 열매 맺음에는 관심이 있지만 그 열매 맺음을 위한 뿌리 내림에는 관심이 없다. 아름다운 꽃은 꽃이 되기 위한 각고의 희생과 노력이 전제되어 있다는 당연한 사실을 곧잘 망각한다. 시 (장자연못)은 이러한 사실에 대한 자각을 일깨워 주는데(그래서 시제가 존재의 깨달음을 주는 연못이라 하여 "장자 연못"이던가) 위에서 아래를 바라보는 보편적 수직 구도를 버리고 아래에서 위로 향하는 역행의 놀라운 구도를 보여주면서 '아래에 숨겨져 있는것'에 대한 눈부신 의미를 포착한다. 빗방울(물)이 "발"이란 인식은 그 대표적인 예이다.

물(水)= 발(足). 그러므로 "한 잎 가득 연밥을 지어 올린"공로는 수면 속 "발가락"의 공양이며 이러한 '아래에 숨겨져 있는 것'의 재발견에 이르렀을 때"닿지않는" 내 마음 속 "수천 송이 연꽃을 피워낸" 순간을 맞게 된다.

이 시는 새삼스럽게 관수세심, 관수화심이란 말을 되새기게 한다.물을 보면 마음을 개긋이 하고 꽃을 보면 마음을 아름답게 하라는 뜻이다. 물과 꽃....... 연못에 핀 꽃이 보고 싶어진다. 이번 주말엔 나도 "연꽃 보러 세미원에 " 가야겠다. 그리고 비가 와주면 좋겠다. 그러면 나도 시인처럼 "둥근 물무늬를 그리며 환한 발바닥을 보여주는"물(빗방울)을 만나서 "닿지 않는 마음"에 핀 연꽃 한송이를 발견할 수 있을런지...................................






정표 예술포럼<꽃이 바람의 등을 밀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