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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등 바다의 등

사랑의 본적

by 너머의 새 2015. 10. 22.

사랑의 본적/강영은

 

  

  난 늘 발이 꼬였어요내내 넘어지며 산거죠 총상화서의

길이 수만 갈래 생각을 낳았거든요

 

 꼬이고 꼬인 등줄기 아래 칡 싹이 돋아났지만 라일락과 장

미의 계절, 칡과 등나무가 얽힌 비문을 읽지 못한

 

  난 나비 한 접시를 주문했죠

 

  공원을 한 바퀴 도는 동안 비비꼬인 슬픔이 끝났으면 날아

온 거리만큼 날개를 내려놓았으면

 

  나비를 주문하자 벌이 따라왔죠

 

  세상의 모든 꽃들은 무한차례, 이 꽃 저 꽃 날아다니는

의 방식에서 보면 등과 등이 얽힌 뿌리에서 피고 지는 같은 운

명을 지녔겠죠?

 

  누군가 떠나가고 누군가 찾아오는 모년 모일처럼 누가 누

구의 꽃이랄 것도 없이 칡과 등나무가 그저 고른 간격으로 눈

뜨는

 

 여긴 내가 속한 곳, 내 세계

 

  한장면이 다른 장면으로 건너가는 것처럼 벌과 나비를 구

분하지 못한 오늘은 내가 갈등葛藤이에요

 

 태어나려는 육체의 세계에서 죽음과 상실의 고통을 겪은

그러니까 나는, 무수한 발자국인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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