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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머의 뉴스

나침반/제주신문

by 너머의 새 2019. 1. 16.

                                                                                            


나침반
제주신문  |  jejupress@jejupress.co.kr
승인 2016.04.14  18:38:40







복사꽃 진다 볕뉘에 피었던 복사꽃 진다
바람 한 점에 겹겹 허공, 천길 벼랑 너머 천랑성 뜬다
사나운 별빛에 물어뜯긴
복사꽃 되는 일도 복사꽃 바라봄도 저무는 봄밤의 명주바람 탓
실낱같은 바람은 꼬리를 숨기는데
돛을 단 별자리가 몸을 트는 저녁은 남쪽이 멀다
복사꽃 지는 마음은 삿대가 짧다
꽃이 진다는 건 지나간 별의 방향을 묻는 일
당신에게 가는 길이 그러했으니
별의 방향만 읽어내는 꽃인 것처럼 몸속에 별자리를 묻은
나는 자석이어서
안개 낀 밤에는 뱃속에서 새가 울었다
가수알바람 부는 흐린 밤에는 쇠가 된 가슴에서 거북이가 기어 나왔다
꽃 지는 남쪽이 그리운 건 무슨 까닭인가

-강영은의 ‘나침반’ 모두


‘복사꽃 진다 볕뉘에 피었던 복사꽃 진다’의 첫 행부터 무릎을 탁, 치게 한다.
꽃이 지되, 그저 그런 꽃이 지는 게 아니라, 작은 틈을 통하여 잠깐 비치는 햇빛에 겨우
피었던 그 복사꽃이 진다니!
그런 봄밤, 큰개자리의 천랑성, 그 사나운 별빛에 물어뜯긴 사랑의 상처가 낭자하다.
한 편의 시를 빚되, 이렇게 ‘볕뉘’ ‘명주바람’ ‘가수알바람’ 등 우리말을 감칠맛 나게 버무리는 솜씨도
가히 고수다.
중학교 시절, 쇠소깍과 예촌망을 혼자 거닐며 갈매기를 날리던 소녀가
어느덧 시인이 되고, 한국문단의 중견으로 자리매김했다.
서울에서도 그의 나침반은 늘 복사꽃 피고 지는 남쪽을 가리킨다.
당신을 가리키고 있다.  오승철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