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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머의 단평

적막 소리/ 문인수

by 너머의 새 2019. 1. 18.

적막 소리/ 문인수

 

 적막도 산천에 들어있어 소리를 내는 것이겠다.

 적막도 복받치는 것 넘치느라 소리를 내는 것이겠다.

 새소리 매미소리 하염없는 물소리, 무슨 날도 아닌데 산

소엘 와서

 저 소리들 시끄럽다. 거역하지 않는 것은

 내가 본래 적막이었고 지금도

 다시 계속 적막 속으로 들어가는 중이어서 그런가,

 그런가 보다 적막한 어머니 아버지 무덤가에 홀로 앉아

 도 터지는 생각이나 하고 있으니, 소주 몇 잔 걸치니, 코끝

이 시큰거려 냅다 코 풀고 나니,

 배롱나무꽃 붉게 흐드러져 왈칵!

 적막하다. 내 마음이 받아 그득하고 불콰하여 길

게 젖어 풀리는

 저 소리들, 적막이 더 많이 소리를 낸다.

 저 또 그 소리에 그 소리인 부모님 말씀

 적막도 산천에 들어있어 소리를 내는 것이겠다.

 

 

                   -『적막소리』 전문

 

■귀로 듣는 풍경/ 강영은

 

 

 "이 시집이 껴안고 있는 그것(죽음)들은 오히려 가장 생생한 '산 증거'들로 읽히면 좋겠다"는 시인의 바람대로 주변의 그늘진 풍경을 형상화한 문인수 시인의 여덟 번째 시집 제목이자 표제詩이기도 한,「적막 소리」는 소멸에 이르는 바람처럼 적막, 혹은 죽음 속으로 들어가는 것처럼 보인다, 때문에 적막은 더 깊은 울림을 내고, 시인의 시(“한 삽 한 삽 퍼 던져 이제 막 무덤을 지은 흙처럼”-최첨단)에서 보듯 죽음은 또렷하게 살아나 본래 적막이었던 내면 풍경들을 따뜻하게 끌어안는 친연성을 알게 한다. “적막도 산천에 들어있어 소리를 내는 것이겠다.” 라는 첫 연과 끝 연에서 여실히 증명하듯 시인은 적막이 빚어낸 소리들을 챙기며 스스로 적막의 일부가 되고자 한다. 그것은 부모의 무덤 앞에서 죽음 너머의 세계를 바라보는 시인의 시선이 ‘다른 곳’을, 그리고 ‘다르게’를, 또 ‘타자’를 향하고 있음을 말한다.

 

  적막이 어떤 구원을 줄지 미학적으로 엄격함을 추구하는 시인의 언어들은 적막 속에서 울리는 고통을 쉽게 미화시켜 들려주지 않는다. 하지만 평론가 권혁웅의 말처럼 “통상의 여운이 아니라 울음을 끌고 다니는” 시인 특유의 언어들은 “배롱나무꽃 붉게 흐드러져 왈칵!”과 같은 문장의 정점에서 은유의 빛깔로 독자의 가슴을 베는 서정을 보게 한다. 그의 詩 “쉬”에서 기 확인했던 서정의 진수는 “새소리, 매미소리, 하염없이 넘치는 물소리”를 거역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내면 풍경을 확인하는 데 있다. 그것은 시적 화자가 산천이 내지르는 자연의 소리를 그대로 감상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내면의 소리로 듣고 있다는데 기인한다. 말하자면, 화자의 그리움은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귀로 듣는 풍경임을 말한다.

 

 적막이란 단어는 듣는데 보다, 보는데 더 많이 적용되는 단어이다. 적막에서 소리를 캐어낸 시인의 귀는 그러므로 인간의 가장 본질적인 슬픔이거나 그리움을 향하여 활짝 열려 있는 창이다.

 

 “적막하다. 내 마음이 받아 그득하고 불콰하여 길/게 젖어 풀리는 저 소리들, 적막이 더 많이 소리를 낸다” 자연에 숨겨진 무음을 찾아내는 귀처럼 객관적 세계를 시적 자아의 내면에 용해시켜 인간의 내면과 미적 형식을 깊이 있게 강조하는 시인이야말로 자연의 어떤 적막보다 웅숭깊은 울림을 내는 목소리가 아닐까,

 

 

-『문학과 창작』 2012년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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