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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머의 리뷰

제주특별자치도의회 의정뉴스 /시로 읽는 제주

by 너머의 새 2019. 7. 25.

 제주특별자치도의회 의정뉴스 /시로 읽는 제주



화산탄(火山彈)

시 강영은 / 서평 김효선

시로읽는제주 ( 2019-04-01)


화산탄(火山彈)

 

강영은

 

 

이리를 닮은 오름 길에서 너는 상냥한 이리처럼 나뭇가지를 부러뜨렸어 울음 끝에 툭, 던져진 벌레처럼 숨을 멈추었지만

 

눈썹을 동여맨 덩굴의 방향에서 터져나오는 울음소리, 삼나무 숲길에선 진초록 이끼들이 기어 나왔어

 

굉장하지? 득의를 얻은 네 웃음 너머엔 불타는 산의 원경(遠景)같은 돌무더기들, 시간의 무덤들이 회색에서 검은 색으로 건너가고 있었어

 

등뼈 쭈그려 든 돌덩어리 위, 폭발하는 허공은 보이지 않았지만 수천 겹 바람 드나들고 수천 겹 햇살 내리꽂힌

 

여기가 이승이라고, 우리가 사랑할 곳은 여기라고, 참새부리처럼 돋아난 잎사귀들 다른 공간에 닿은 듯 하늘 거렸어

 

돌의 이마를 깨고 나온 무진장의 이승이 둘레에 피어났어 이승의 끝이 보이지 않는 그 속에 들고 싶었어

 

나, 새 잎 틔우고 싶었어 나의 관절, 나의 등뼈와 무관하다 해도 폐허를 일으키는 울창한 숲이 되고 싶었어

 

화염 터로 전쟁터로 오가는 봄을 만나 근접하지 못하는 마음의 안부를 물어도 될까,


죽어서 이름 얻은 돌, 화산탄이 봄을 뿜어내고 있었어 성자(聖者)처럼,

 

화산탄 속에 화산이 들어있었어 화산탄 속에 총알이 들어 있었어.

 

한라산 둘레길을 돌아오는 동안 너는 나에게 죽어도 죽지 않는 세계를 보여 주었어 돌 속에 나무를 심어 주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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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이 폭발하면서 터져 나온 돌. 시뻘건 용암을 견디며 뜨거움을 품었을 돌. 제주는 그렇게 화산탄으로 이루어진 섬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라산이 폭발하면서 생긴 오름들과 그 오름을 이루고 있는 화산탄들은 수천 년 전부터 제주사람들과 역사를 같이 했다. ‘시간의 무덤들이 회색에서 검은색으로 건너가’는 동안의 삶의 궤적인 것이다. 그 안에서 얼마나 많은 울음의 시간을 보냈던가. 그런 아픔을 증명하는 ‘돌무더기들’은 제주의 산증인이다. 절망과 좌절의 늪에 빠질 때마다 그 작은 돌멩이 하나에 의지했다. 비록 작지만 단단한 그 뜨거움의 깊이에 기대고 싶었던 것이다. 수천, 수만 년 그 자리에서 변하지 않을 믿음. 우리가 이승에서 바라는 건 어쩌면 그런 믿음일 것이다. 내 한 몸 의지하기도 힘든 세상에서 누구를 믿고 살아갈 것인가. 자연은 그런 의지를 갖게 해준다. ‘죽어서 이름을 얻은 돌’이니까. 죽음을 넘어선 세계는 이승에서는 가질 수 없는 숭고함이다. ‘죽어도 죽지 않는 세계’를 보여주는 강렬한 믿음인 것이다.


삶을 견디는 건 어쩌면 죽음이라는 세계가 있기 때문인지 모른다. 그 경계를 넘나들 수 없기에 한편으로는 차갑고 딱딱해지는 두려움을 갖고 있다. 물론 우리는 죽어서 흙으로 돌로 어쩌면 나무로 태어날지도 모른다. 인간 역시 아주 작은 원소로 이루어진 생명체이니까. 한 세계가 저물고 또 한 세계가 탄생하는데 억겁의 시간이 걸린다. 그러니 우리가 보는 모든 자연에 어떤 전생이 깃들어 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환생과 윤회가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희망을 품고 있다. 그 희망이 어쩌면 우리를 살게 하는지도 모른다. 그토록 단단함을 품고 있는 강영은 시인의 시를 읽고 있으면 우리는 어느 새 ‘울창한 숲’으로 들어선다. 숲의 기운과 숲에서 전해져오는 이야기들, 삶의 폐부를 찌르는 깊이를 경험한다. 그 흔하디 흔한 작은 화산탄을 통해 삶을 통찰하는 힘이 전해진다. 그 작은 돌에서 이승과 저승을 넘나드는 세계를 확장하는 시인의 눈이 그저 부러울 따름이다.

 

글 김효선(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