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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머의 산문

소문의 정석

by 너머의 새 2015. 9. 10.

소문의 정석/강영은






소문의 기원이나 출처에 대하여 사실 여부를 확인하는 자는 없다. 누구도, 누구라도, 반드시 전해들은 것 뿐이다. 아무도 그 아무도, 직접 본 사실은 아니다. 소문에 관한 한, 사실 여부에는 관심이 없다 . 소문을 퍼트리는 자와 소문을 듣는 자만 있을 뿐이다.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는 것은 그 때문이다. 눈송이처럼 구름송이처럼 부풀어서 소문이 소문의 주인공을 제치고 소문이 주인공이 된다. 확대 재생산된 소문은 그것을 말하는 자의 범주를 넘어서 자체 부력을 가지게 된다. 소문의 권력은 그렇게 양산된다. 마침내 흉기가 된다. 연못의 개구리가 재미삼아 던지는 돌에 맞아 죽듯, 소문은 불식간에 희생자를 낳는다.



소문을 퍼트리는 데 묘한 희열감을 갖는다면 소문의 노예가 되었다는 증거다. 입이 간지러워 도저히 참을 수 없는 것은 노예의 증표다. 노예에게는 자신의 판단력과 통찰력이 필요없다. 그저 주인이 시키는 대로 행할 뿐이다. 소문을 주인으로 믿는 사람들은 소문의 실상엔 관심이 없다. 소문에 굴종하고 소문을 퍼트리는데 주력하면 그만이다.



누군가를 음해하기 위해서, 혹은 자신을 변명하기 위해서 퍼트리든 소문이란 대개 근거없는 사실을 그럴듯 하게 포장하기 마련이다. 소문이 가진 위력을 이용하려는 사람들은 대개 명백한 사실을 감추고 사람들의 흥미거릿를 미끼로 던져준다. 미끼의 달콤하고 사악한 맛에 걸려들면 대부분 판단력을 상실한 채 마약과도 같은 소문의 맛에 중독되기 마련이다. 독하고 썩은 향기를 풍기는 미끼일수록 물고 싶은 유혹은 강하게 마련이다. 기원도 탄생도, 그 내막도 알지 못한 채 소문은 사람들의 혀와 귀를 거치고 또, 거친다.



"버뮤다 바다에서 배가 실종한 사건이 한 미국인의 날조라는 것이 밝혀진 지 한~ 참 시간이 지났는데도 태평양을 지나 대한민국에서는 아직도 수많은 청소년들이 버뮤다 해역이 심심하면 비행기가 사라지는 마법의 해역인줄 알고 있다. 언제나 사람들로 붐비는 손꼽히는 휴양지인 버뮤다 사람들이 이 소식을 들으면 무슨 표정을 짓게 될것인가, 이성의 학문으로 밀어붙일 것도 없이, 애초에 침몰했다는 배 따위는 없었다. 21세기에 진입한 지금, 수많은 음모론자들이 달 탐사가 조작이라고 부르짖는다. 수많은 증거와 톤 단위의 월석을 눈 앞에 보여주어도 모두들 자신의 알량한 정보를 철석 같이 믿으면서 증거를 내놓아 보라고, 우리를 설득시켜보라고 목청껏 소리지른다. 아니 뭐, 애초에그 이성이랍시고 잇는 것들에 주관성의 붕대를 둘둘 감고 있었으니 제대로 보일리가 없지만 여기서 소문의 진가가 드러난다. 소문을 만들고 싶다면 방법은 정말 간단하다. 사람들이 '믿고 싶어하는 진실'을 만들어라 짠~" ㅡ 어느 블로그에서 읽은 내용이다.



소문이란 이렇게 '인지 부조화'를 가져온다. 때문에 '진실'로 믿고 싶은 것만 '진실'이 된다. 소문은 잘 된 일보다 못된 일이 더 빠르다. 정계에서도 거짓 소문을 퍼트려 정적을 제거한다. '가게 기둥에 입춘' 이라는 속담에서 보듯 추하고 보잘것 없는 기둥에 ‘입춘대길(立春大吉)’이라 써 붙이는 것처럼. 제격에 맞지 않는 소문을 듣는 사람들은 어떻게 처신할까, 소문의 경위야 어떻든 진실은 항상 있는 법이다.



그렇다. 자신이 본 것도 믿지 못하는 시대, 소문의 시작은 보지 않는 것에서 시작된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자신이 퍼트리는 소문이 진실이기를 원한다. 그렇지 않다면 소문을 퍼트린 자신을 스스로가 용서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거짓말이 더 큰 거짓말을 낳듯, 소문을 더 크게 확산시키는 것은 이러한 심리적 요인에서 기인된다. 본 것처럼, 사실인 것처럼 꾸밀수록 당위성을 부여 받기 때문이다. 바른 판단력과 양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사실 여부와 관계 없이 남의 흉을 보는 일이 얼마나 괴로운 것인 지 안다. 자신을 기만하는 행위라는 것도,...... 정석의 뜻은 '사물의 처리에 정하여져 있는 일정한 방식' 을 말한다. 소문의 정석은 ' 거짓' 으로 시작되는 퍼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