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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비단구렁이

왜목마을을 지나며

by 너머의 새 2015. 9. 22.

왜목마을을 지나며/강영은



이곳에 이르자
눈시울 속에 폭발하는 찰나의 빛들은 눈부신 어둠이어서
햇빛에 숨죽인 그녀의 얼굴은 확연히 드러나지 않는다

다만,
왜가리의 목처럼 구부러진 해안선이 그녀의 배경이기 때문일까
가슴께의 봉긋한 섬들이 젖무덤처럼
아늑하게 보였던 것인데
그녀가 젖을 물리는 국화도와 장고항 사이,
항아리처럼 부푼 그녀의 몸이 지고 있었다

물결마다 황홀하게 스러지는 꽃 무덤 저, 화염 바다에 내 언제
몸을 내주었던 것일까

개펄에 고개 묻은 몇 척의 목선들과 잔물결 가득 이는 꽃잎 사이
생의 한 지점에서 숱하게 피고 졌던 꽃이기나 한 듯
어두워 가는 내 몸 속으로도 가뭇한 밀물이 들었던 것인데

조개나 고둥처럼 다 캐낼 수 없는 그녀를 놓아두고
돌아오는 길

저 풍경은 왜가리처럼 구부러진 목으로
내 생의 배후를 기웃거릴 뿐
그 구부러진 곡선으로 여기까지 온 내 몸의
밀물 드는 소리 듣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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