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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비단구렁이

제논의 화살

by 너머의 새 2015. 9. 22.

제논의 화살/강영은


시애틀의 배션 아일랜드에서 자전거 나무를 본다
자전거의 두 바퀴가
허공에 매달려 있는 커다란 꽃 같다
녹슨 바퀴 꽃 살대마다 햇빛이 지나간다
자전거가 달리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나무가 껴안은 시간 속에서
자전거가 계속 달리고 있는데도
우리 눈이 멈춰있다고 착각하는 것인지 모른다
유심히 살펴보니
제 키만큼 허공을 달리는 나무의 길과
나이테 속에 둥근 길 내려놓은 자전거가
서로의 속도를 껴안고 있다
달려오던 속도와 뿌리박힌 속도 중
어떤 속도가
페달을 내려놓은 것인지 알 수 없지만
한 영혼이 또 다른 혼에 머문 것처럼
서로의 허공을 쓰다듬었을 것이다
허공이 꽃 피는 순간,
더 이상의 과녁이 필요 없다는 듯
딱, 멈춰 섰을 것이다
통과 할 수 없는 시간이 각막에 달라붙은
거기서부터
내 눈먼 사랑도 벌겋게 녹물 번지기
시작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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