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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등 바다의 등

눈雪의 거처

by 너머의 새 2015. 10. 22.

 의 거처 /강영은

 

  

사내가 사라졌다

CCTV가 없는 현장에는 물이 흥건했다

물이 사내라는 혐의는 너무나 투명했지만

눈이 오는 계절이어서 불어나거나 줄어들지 않는 몸뚱어리가

얼어붙은 몸의 안쪽으로 흐르고 있을 뿐

한낮에 보면 한 마리의 은빛용이 잠자는 모습 같았다

음유시인이거나 수행자들은 희게 빛나는 용의 이마를 향해

붉은 머리 독수리를 날려 보냈다

밀라레파의 붉게 빛나는 울림주발(Singing Bowl)에서

청아한 소리가 울려 퍼지면

구름 위를 나는 독수리는 지상에서 가장 높은 침묵이었다

만년설의 등짝에 칼을 꽂는 칼바람을 만난 누구라도 몸을 낮추어

죽음처럼 빛나는 침묵의 높이를 숭배했을 것이다

눈의 집이라는 이름마저 넘었을 것이다

누구를 용서하고 무엇을 속죄할 것인가

벽옥의 눈을 지닌 허공에 묻고 물었지만

얼지 않는 강물이, 미해결의 시간이 그랬던 것처럼

가장 높은 바닥에서 솟아나는 침묵의 깊이는 푸르고 시렸다

히말라야, 크고 멋지고 성스런 사내가 눈발에 지워졌다

매화 향기가 천년 바람에 흩날리듯 세상 밖까지 펄펄 눈이 날리고

세월의 비바람에 깎이고 쪼개어진 모래알갱이의 마음이 저물도록

몸속으로 돌아오지 못할 때

공명을 받은 주발처럼 육체 속에 들어 있는 비명소리가

눈사태를 내기 시작했다

66%의 물로 채워진 몸이 바다라는 듯

눈에서 흘러나가 녹지 않는 눈물이 더 큰 바다라는 듯

옛집의 처마 끝에 수정 고드름이 열렸다

사라진 등뼈가 거기 기억처럼 박혀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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