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발말똥게의 귀가/ 강영은
주름 잡힌 하루의 저물녘, 그녀의 원피스 속엔
한 번도 펼치지 못한 하늘이 들어있다
초겨울 바람이 그려 낸 한 벌의 고독 속엔
붉은발망똥게의 알집같은 노을이
무정란으로 번식한다
섭지 바닷가에서 태어난 조에아 유생처럼
나이 든 재능 산수 여선생인
그녀가 몸을 누이는 곳은
출렁이는 바다도 모래 언덕도 아닌
지상의 한 칸 지하 방이어서
붉은 색연필 하나에 의지하고 살아가는 그녀
눅눅한 습지로 돌아가기 위해
구름을 하나씩 채점하기 시작한다
동그란 빗방울들이 나무 가지에 빗금을 치는 동안
축축이 젖은 어둠 한 자락 끌고 들어서는
산 13번지
등껍질 속에 하루를 기탁해 온
몸이 딱딱하게 굳어가는 것도 모른 채
한 벌의 하늘을 벗는 등 뒤로
붉은발말똥게의 궤적 같은 별빛이
돋기 시작한다
풀등 바다의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