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뜸 한뜸 날카로운 직선…그 직선이 어울려 만든 곡선, 그리고 '허공 모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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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잎과 풀잎 사이를 이은 거미줄. 찬찬히 뜯어보면 거미줄은 직선이다. 그러나 그 직선이 어느 듯 어울려 아름다운 곡선을 만들었다. 자연의 경이로움이다. 경북 청도 들녘에서 사진작가 배원태씨 찍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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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 그게 뭘까. 사람과 사람, 사람과 사물, 사물과 사물. 그들이 서로 걸리지 않는 일이 세간에는 있을까. 없다. 그대와 내가 이미 이 글을 통해 관계를 맺었다. 그대가 책을 읽으면 이미 책과 관계는 이뤄지고 있질 않는가. 그대가 일테면 재미삼아 만든 활과 화살일지언정 그 둘은 또한 불가분의 관계다. 그런 관계들. 그중에서도 살다보면 얽히고설키는 인간관계야 말로 가장 현란하다. 저마다 자신의 욕망을 실현시키려니 이해와 갈등이 착잡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생떽 쥐페리는 "인간은 상호관계에 묶여지는 매듭이요, 거미줄이며, 그물"이라고 했을까. 그런 거미줄.
아침 이슬 머금은 거미줄을 보라. 그 위로 빛이 들 때면 환상적이다. 좀 허술하고 엉거주춤 하기는 하지만. 여전히 아테나여신을 물리친 아라크네의 솜씨. 빛이 반사될 때는 형언키 어려운 날카로움. 탱탱한 저 줄의 기능. 나무와 나무 사이. 풀잎과 풀잎 사이. 혹은 나무와 풀잎 사이. 걸치기만 했을까. 어림없는 소리. 죄다 잡아 버릴 것만 같은 함성이 거미줄 사이로 팽팽하게 흐른다. 긴장감이다. 거미줄에는 항상 이 같은 긴장이 넘친다. 그래서 거미줄은 더 팽팽하고 탱탱하다. 강철로 금방 빚어낸 철사에서도 이런 긴장은 맛보기 어렵다.
어떻게 저런 직조의 기술이 거미에게 있을까. 가만히 들여다보면 모조리 직선들이다. 그러나 그 직선들이 한데 어울려 서서히 원을 만드는 기술. 직선으로 둥글게 건축된 옹골찬 거미줄. 촘촘하거나 엉성하거나 질긴 구석이라고는 없을 것 같건만. 좀체 끊어질 낌새는 없다. 그러니 무너질 리도 없다. 튼튼한 집. 거미는 사방을 휘 저으며 다녀도 출렁임 조차 생략하듯 걸음은 능숙하다. 능란하다. 마치 겉보기에 정갈해 보이는 일류 모텔을 만만하게 드나드는 듯. 자신에 넘친다. 허공 같은 거미줄. 시인 강영은은 이를 허공모텔로 노래했다.
허공 모텔
한 녀석이 걸려들었다. 한 뜸 한 뜸 직선으로 방사선의 그 어엿한 선을 그으며 아름다운 원을 그린 거미줄에 한 녀석이 걸려들었다. 그 녀석은 정말 모텔쯤으로 여겼을까. 발버둥 쳐도 소용없다. 그저 재수가 없었다. 그뿐이다. 이런 일들이 어찌 그들에게만 가능하랴. 우리들에게도 재수 없는 일들이 너무 많다. 거미줄에 걸린 듯 옴짝할 수 없는 일들이 부지기수다. 곶감 죽을 먹고 엿 목판에 엎드려질 수도 있건만 매염봉우(賣鹽逢雨)라 소금 파는 날 비를 만나는 격으로 하는 일 마다 마가 끼는 날들 또한 허다하질 않는가. 이런 게 인생살이.
린드세이는 인생을 '베틀'이라고 했다. 환상을 짜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거미도 거미줄을 짤 때는 환상적이다. 거미박사 김주필 교수(동국대)의 '거미이야기'에는 거미가 원형의 거미줄을 만드는 차례가 그려져 있다. 김 교수는 거미의 가장 중요한 습성은 점성의 거미줄을 뽑아내 교묘한 거미그물을 치는 일이라며 그 순서를 8차례로 나눠 싣고 있다. 알기 쉽고 재미있게 그렸다. 바람을 이용해 다리실을 미풍에 날려 보내 유사비행을 하는 것이나 거미줄을 팽팽하게 고정시키고는 마침내 가운데서 바퀴통을 촘촘히 쳐 완성하기까지의 과정을 풀이 해 놓았다. 더 호기심을 유발하는 것은 거미가 거미줄의 중앙에 자리 잡고 앉아 사방팔방에 초인종 역할을 하는 줄을 늘어뜨리고는 진동이 감지되기를 묵묵히 기다린다는 것이다. 재수 없는 녀석들을. 이쯤이면 이미 거미는! 초연심오(超然心悟·초연한 마음의 깨달음)다. 걸려듬은 이미 녀석들의 마음 쪽에 맡겼으니 그럴 수밖에.
"내가 으스러지게 설움에 몸을 태우는 것은 내가 바라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그 으스러진 설움의 풍경마저 싫어진다.// 나는 너무나 설움과 자주 입을 맞추었기 때문에/ 가을바람에 늙어 가는 거미처럼 몸이 까맣게 타 버렸다(김수영의 '거미'전문). 그렇다. 초연심오에도 거미는 거미줄에서 때로는 자신의 몸이 까맣게 타 들어가는 설움을 맛보아야 하는가 보다. 왜? 4억년의 진화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날개가 없기 때문일까. 어떤 이는 거미들이 공중에 거미줄을 치도록 진화한 것은 곤충에게 날개가 생겼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렇지만 날개가 없어도 어떠랴. 그 자극으로 오늘. 허공에다 이만한 네트워크를 구축했으니. 아름다운 곡선으로.
거미줄로는 방탄조끼 까지 만든다. 가늘면서 습기나 진동에도 잘 견뎌 말꼬마거미의 거미줄로는 현미경이나 조준기 등 광학렌즈의 눈금으로 이용된다. 영화 스파이드맨이 아니더라도 거미이야기는 재미있는 사실들이 많다. 중국의 절세미인 양귀비가 거미줄로 만든 최고급 브레지어를 착용했다는 사실은 꽤나 흥미롭지 않는가. 그렇지만 거미는 여전히 겁나고 두려운 존재로 느껴진다. 징그럽고 혐오스럽다고들 한다. 그 생김이 그래서일까. 그 행동이 소름끼치기 때문일까. 여기 백석의 시 '수라(修羅)'가 있다.
"거미 새끼 하나 방바닥에 나린 것을 나는 아무 생각 없이 문 밖으로 쓸어 버린다/ 차디찬 밤이다// 언제인가 새끼거미 쓸려 나간 곳에 큰 거미가 왔다/ 나는 가슴이 짜릿한다/ 나는 또 큰 거미를 쓸어 문 밖으로 버리며/ 찬 밖이라도 새끼 있는 데로 가라고하며 서러워 한다// 이렇게 해서 아린 가슴이 싹기도 전이다/ 어데서 좁쌀 알 만 한 알에서 가제 깨인 듯한 발이 채 서지도 못한 무척 작은 새끼거미가 이번엔 큰 거미 없어진 곳으로 와서 아물거린다/ 나는 가슴이 메이는 듯한다/ 내 손에 오르기라도 하라고 나는 손을 내어미나 분명히 울고불고할 이 작은 것은 나를 무서우이 달아나 버리며 나를 서럽게 한다/ 나는 이 작은 것을 고히 보드라운 종이에 받아 도로 문 밖으로 버리며 이것의 엄마와 누나나 형이 가까이 이것의 걱정을 하며 있다가 쉬이 만나기나 했으! 면 좋으련만 하고 슬퍼한다"('수라(修羅)'전문)
되풀이 읽고 싶어지는 시다. 가족이 해체되는 이 시대에 거미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경종의 의미가 신선하다. 이럴 때. 이슬 머금은 아름다운 곡선의 거미줄, 그것이 주는 묘한 뉘앙스는 상상할수록 유쾌하질 않는가
글쓴이//김채한객원기자 namukch@hanmail.net 기자가 쓴 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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