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의 방향/강영은
웃는 입장을 버린 건 아니지만 얼굴을 더듬으면 직박구리가 날아간 하늘과 직박구리를 날려 보낸 저수지가 있다
안색이 변하는 건 아니지만 얼굴을 뒤집으면 물속에 거꾸로 선 나무와 그 나무를 받치고 있는 저수지가 있다
말을 하는 건 아니지만 오목하고 볼록한 얼굴을 맞바꾸면 태양의 불과 달의 물을 보여주는 저수지가 있다
구리와 돌로 네 얼굴을 만들어 줄까, 깊고 우묵한 동굴을 파줄까, 견본을 보여주면 종교 앞에 선 것처럼 조금 불행한 얼굴,
듣는 입장을 바란 건 아니지만 파형(波形)이 반복되는 얼굴을 꺼내면 눈을 깜빡이는 저수지가 있다
웃고 있다고 믿는 눈의 오독에 대해 얼룩은 얼룩진 방향을 갖는다
부지중, 나는 얼굴을 벗어나는 습관에 젖어버렸다 새들의 비상과 추락에 전념하게 되었다
『현대시학』 2015년 4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