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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냥한 시론詩論

여이驢耳

by 너머의 새 2016. 3. 7.

 

 


 

 

 

여이驢耳/강영은

 

 

귀는 하늘과 연결된 구멍이다 구멍이 막히면 죽은 귀다 죽은 귀에는 고통의 감각이 남아 있다​

억울한 귀는 사람이 되는 성질을 갖는다 상대의 귀를 종처럼 부려서 자기 신변을 시중들게 한다

 

귀는 유혹하고 길을 막고 겁을 준다 주먹이나 무기를 써서 사람을 해치지는 않는다 능력이 통하지 않으면 사라진다

 

사라진 귀는 새벽닭이 올 때까지 몸을 긁는다 침묵이 종소리처럼 울릴 때가 있다

 

​귀에게도 식욕이 있다 먹지 않으면 비쩍 마른 귀가 된다 무너진 입가에 귀가 출몰하면 귀가 먹먹해진다

거북의 오줌이나 쥐의 쓸개를 먹는 것은 귀의 식사법이다 좋아하는 말과 싫어하는 말을 엿듣는 모자장수의 목격담이 길어진다

벌레가 나오지 않을 때에는 참대 대롱을 귀 안에 넣고 입으로 힘껏 빨아내면 좋다고 한다 말문이 트이는 이치가 그와 같다

 

귀가 길어진 대나무 이파리에선 벌레소리가 난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왕은 이것을 싫어하여 대를 베어 버리고 산수유를 심게 하였으나* 산수유가 바람에 흔들릴 때마다 당나귀가 튀어나왔다

 

대나무가 씹어 삼킨 귀는 지금도 존재 한다

 

 


 

 

 

 

『불교문예』 2015년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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