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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냥한 시론詩論

선셋 포인트

by 너머의 새 2016. 3. 7.

 

 

 

선셋 포인트/강영은

 

쉐산도 파고다 베란다에 앉아 일몰을 기다리네 지는 해가 솟는 해 같아 조금 전 보다 환한 낯짝이 되네

​산 너머 이글거리는 태양은 들판을 불태우는 불사조, 땅거미에 물든 새가 돌아올 것 같아 걸음을 서두르네

내 발자국이 희미한 핏자국을 읽어 낸다면 천년 전의 저녁이 되살아날까, 피 묻은 벽돌 속에서 어제를 꺼낸 구름이 폐허를 양각 하네

깃털에 담긴 잉크가 계단을 물들일 때 천년이 돌아왔네 완벽한 어스름에 잠겨 있길 좋아하는 개처럼 내 속에 남아 있는 어떤 슬픔이 뭉클했네

땅의 목덜미에서 돋아나는 풀숲이 축축해질 때까지 벽돌을 쌓는 것 외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내, 벽돌을 머리에 이고 가는 일 외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계집이 거기 있었네

탑과 사원을 짓는 일이 죽어도 죽지 않는 사랑이라면 ‘해가 지면 다시 뜨는 그런 사랑은 아냐, 어둠에도 체온으로 느껴지는 그런 사랑이야’*

벽돌을 만지다 일생이 저문 bagan**의 들판, 해가 지거나 해가 뜨거나 이름은 아무래도 좋았네 흔하디흔한 들꽃처럼 내가 거기 있었으므로

*조하문의 노래 ‘사랑하는 우리’에서 빌려옴

*bagan, 불국토를 꿈꾸던 바간왕조의 수도, 5,000여 곳에 이르는 불탑(佛塔) 유적이 있었으나 2500기만 남아 있다

 

 

 

 

 

 

*조하문의 노래 ‘사랑하는 우리’에서 빌려옴

*bagan, 불국토를 꿈꾸던 바간왕조의 수도, 5,000여 곳에 이르는 불탑(佛塔) 유적이 있었으나 2500기만 남아 있다



『문예연구』 2015년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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