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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머의 리뷰

서정의 깊이와 위반의 불온성 사이/김홍진

by 너머의 새 2017. 1. 10.

서정의 깊이와 위반의 불온성 사이/김홍진

 

 

강영은의 시집은 시쓰기에 대한 치열한 심미적 자의식의 산물이다.그에게 시는 '꽃'이기도 하고 ,'집'이기도 하며 '독'(시인의 말)이기도 한 존재이다. 말하자면 시는 존재의 아름다움을 드러내는 '꽃이기도 하고 집이기도 하고 , 존재를 한 순간 무로 돌릴수 있는 치명적 '독'이기도 한 것이다. 시 혹은 언어 혹은 존재가 지닌 이러한 이중적이며 다중적 속석에 대한 심미적 인식을 그의 시집은 집요하게 추구하고 잇다. 그 심미적 자의식이 생산되는 거점은 바로 "몸 속에 오글거리는 빛의 맹독"처럼 번져가는 "내 안의 꽃"(사막 장미)을 피우려는 시적 욕망이다. 그 시적 욕망은 존재론적 질문, 부재와 결핌의 화인으로부터 출발한다. 가령 다음과 같은 작품은 그러한 면을 잘 드러내고 있다.

 

바위나 벽을 만나면 아무나 모르게 금이 간 상처에 손 넣고 싶다

단단한 몸에 기대어 허물어진 생의 틈바구니에 질긴 뿌리 내리고 싶다

지상의 무릎 위에 기생하는 모으든 슬픔이여!

벼랑 끝까지 기어오르는 기막힌 한 줄의 문장으로
나는 나를 넘고 싶다

 

                            -「담쟁이 」전문

 

담쟁이 넝쿨이 지닌 속성에 화자 자신을 기탁하고 잇는 위의 시는 시인이 지향하고 도달하고자 하는 지점이 어디인지를 짐작할수 있게 해준다. 담쟁이 넝쿨에서 화자가 발견한 것은 극한 상황에서도 벽을 타고 오르는 생명력에 대한 경외심과 존재의 비극성에 있다. 화자는 존재의 미극성에 포함된 부재와 결핍을 " 한 줄의 문장 文章처럼" 간결 명료하게 넘어서고자 한다. 담쟁이가 벽을 타고 오르는 것은 생명의 현실, 실존적 현실 상황에 대한 첨예한 비극적 인식과 그것을 넘어서고자 하는 예각화된 인식이다. 자아나 세계는 단단한 "바위나 벽" 처럼 견고한 듯 하지만, 그것은 실상 "금이 간 상처"를 지닐수 밖에 없다. 생은 그 "금이 간 상초"의 질긴 틈바구니에도 뿌리 내린 것에 불과하다. 때문에 "지상의 무릎 위에"는 슬픔이 기생할 수 밖에 없다. 화자에게 세계는 "금이 간 상처" 이며 "벼랑 끝"으로 존재의 슬픔을 품고 오르고 싶어한다. 화자는 단 "한 줄의 문장 文章"으로 처리될 수 있는 간결하면서도 명쾌한 삶, 그러한 시를 쓰고 싶어한다.

 자아나 세계는 단단한 "바위나 벽" 처럼 견고한 듯 하지만, 그것은 실상 "금이 간 상처" 를 지닐 수 밖에 없다. 그것은 완강하게 닫혀 잇는 듯 하지만 단단한 것은 금이 가기 쉽다. 그에게 이 세계는 금이 간 상처이다. 그 속에서 " 지상의 무릎 위에 기생하는 모오든 슬픔"을 품고 사는 것이 삶이다. 상처가 없다면 금이간 틈이 없다면 세상은 얼마나 삭막할 것이며 또 얼마나 다ㅣㄴ조롭고 무미할 것인가. 상처 속에서 상처에 발을 딛고 상처를 견디며 살아가는 것이 삶이다. 따라서 금이 간 상처, 슬픔은 부재와 결핍에 대한 자기 부정이 아니라 삶과 세계의 안과 바깥을 두루 거치고 꿰뚫어 본 사람살이에 대한 획득할 수 없는 통찰이다. 그 통찰은 완벽할 수 없는 사람살이에 대한, 금이간 상처와 슬픔에 대한 긍정이다. 화자는 담쟁이처럼 상처와 슬픔을 온 몸으로 보듬어 안고 이 산문화된 세상과 '나'를 '한 줄의 문장'으로 넘어서고자 한다.

 

 

늙은 소나무의 축 늘어진 그것이든
버드나무 휘어진 허리춤이든
낭창낭창 휘감는 붉은 뱀들이
절정으로, 꼭대기로 치닫고 있잖아요?

폭염에 술 취한 딸처럼
주홍빛 얼굴을
울컥울컥 게우고 있잖아요?

그게 나라구요, 나였다구요

그러니 엄마, 습한 문 열고 나 장마 지게
꽃다운 나답게 꽃답게

툭, 툭, 모가지를 떨굴 때까지

 


그냥 피어나게 내버려 두세요

                       ㅡ「능소화 」중에서

 

모든 시인은 절대의 언어, 절대의 세계를 굼꾼다. 이들은 언어를 통하여 인간과 세계의 긍극적인 의미를 직관적으로 포착하고, 이를 해독하고 재현하려는 본능을 지니고 있다. 어떤 절대의 세계에 대한 매혹으로 포기하는 순간, 시는 사라지고 만다. 자신에게 주어진 가시적인 현실의 지평을 넘어서려는 시인의 의도는 결국 역동적 상향의식을 잉태하게 되는 것이다. 강영은 의 시는 '꽃'이기도 하면서 '독'이기도 한 절대의 세계에 이르려는 역동적 상향인식을 시를 이글어나간다. 이러한 절정의 세게에 도달하고자 하는 역동ㅈ족 상향인식은 자신에게 주어진 구체적인 욕망이나 고통과 긴밀하게 조응하면서 자신을 새롭게 갱신하고자 한다. 시인에게 자아와 세계는 끊임없이 부정되거나 갈등과 투쟁의 과정을 거쳐 절정의 세계로 나아가면서 자아와 세계를 새롭게 갱신하려는 역동적 상향인식을 바탕으로 존재의 핵심에 도달하려고 한다. 

존재의 폐쇄된 영역안에 갇혀 있는 화자에게 부재의 경험은 끊임없이 존재의 새로운 경험, 존재의 전환, 존재의 개화를 굼꾸도록 한다. 강영은 시인의 시는 "눈부신 부재의 중심"에서 "몇 겹의 비밀로" "겹겹이 덮인 내력"(양파론)과 "내 안의 꽃"(사막 장미)을 찾아나가는 과정에 있다. 인용 시는 존재의 폐쇄성을 거부하고 절정의 세계를 향한 역동적 상향 의식이 잘 나타나 있다. 표면적으로 엄마를 내적 수화자로 상정하고 화자의 심증을 건네는 형식의 이 시는 자신에게 숨겨진 본성을 따라 살고자 하는 화자의 강한 의식이 돋보인다. " 내 안의 꽃"을 피우며 "절정의 꼭대기로 치닫"는 향일의 상향의식은 "엄마가 내 몸 속에" " 꽃씨를 숨겨 놓으셨"기 때문이다. 그것은 사유 이전에 화자의 몸을 가진 본성이며 본능이고 " 그게 나" 이다. 몸에 주어진 본성은 가장 자연스러운 것이며 순수한 것이다. 그래서 화자는 " 습한 문 열고 나 장마 지게/ 꽃다운 나답게 꼽답게/ 툭, 툭, 모거지를 덜굴 때가지" 주어진 본성대로 " 그냥 피어나게 내버려 두세요" 라고 요구하게 되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 꽃다운 나답게 꽃답게 " 자신의 존재성을 획득하고자 하는 것이다.

 

어머니. 천둥번개 치고 비 오는 날이면 비 냄새에 칭칭 감겨 있는 생각을 벗어버리고 몸 밖으로 범람하는 강물이 되고 싶어요 모과나무 가지에 매달린 모과열매처럼 시퍼렇게 독 오른 모가지를 공중에 매달고 뭉게뭉게 피어나는 구름신부가 되어 한 번의 낙뢰, 한 번의 키스로 죽는 천둥벌거숭이처럼 내 몸의 죽은 강물을 퍼 나르고 싶어요

하지만 어머니, 내가 건너야 할 몸 밖의 세상은 구름 한 점 없는 하늘뿐이에요 눈부시게 빛나는 햇빛의 징검다리 뿐이에요 내 몸에 똬리 튼 슬픔을 불러내지 못하기 때문일까요? 연두에서 암록까지 간극을 알수 없는 초록에 눈이 부셔 밤이면 독니에 찔려 죽는 꿈들만 벌떡벌떡 일어나요

어머니, 녹색비단구렁이새끼를 부화하는 세상이란  정말이지 음모일 뿐이에요 희망에 희망을 덧칠하는 초록의 음모에서 나를 구해주세요 제발 내 몸의 비단 옷을 벗겨주세요 꼬리에서 머리까지 훌러덩 벗어던지고 도도히 흐르는 검은 강, 깊이 모를 슬픔으로 꿈틀대는 한 줄기 물길이고 싶어요

                            

                                                                                  ㅡ<녹색비단구렁이>전문

 

역시 어머니를 수화자로 상정하고 있는 위의 시는 미당의 '花蛇' 처럼 뱀이 유발하는 징그러움과 추악함 등의 이미지와 '녹색비단'이 주는 아름다운 이미지의 결합은 이중적 상징성을 포함하고 잇다. 화자는 뱀에게 주어진 허울 같은 이름이 '녹색비단'을 벗어버리고 뱀 그 자체로서의 실존성을 회복하고자 한다. 그 징그럽고도 아름다운 뱀이라는 이름을 버리고 그 자체로서의 실존성의 회복은 억압된 생명력의 회복, 뱀에게 덧 싀워진 정신적이며 육체적인 온갖 금기가 일체 사라진 자유로운 삶에 대한 희원으로 파악된다. 화자는 " 비 오는 날이면 비 냄새에 칭칭 감겨 있는 생각을 벗어버리고 몸 밖으로 범람하는 강물" "한 줄기 물길이고 싶" 다고 청원한다. 그러나 "내가 건너야 할 몸 밖의 세상은 구름 한 점 없는 하늘" 과 " 햇빛의 징검다리뿐이"다. 여러 의미가 있겠지만, 뱀은 일반적으로 저주받은 짐승으로 어둡고 불길한 악의 상징인데 \, 그것은 이 시에서처럼 하늘(천상)의 햇빛과 대비됨으로서 얻은 상징이다. 녹색비단구렁이를 구성하는 " 연두에서 암록까지 간극을 알수 없는" 빛에 "눈이 부셔"서 자신의 실존적 정체성을 살해당한다. 그러니까 자신에게 관념적으로 덧 씌워진 녹색비단의 색갈에 의하여 자신의 실존족 본성은 제거된 나머지 "밤이면 독니에 찔려 죽는 꿈들만 벌떡벌떡 일어나"게 된다. 구렁이에게 주어진 "녹색비단"은 저주받은 운명에 다름 아니다. 그러나 그것은 "정말이지 음모일" 따름이다. 화자는 그러한 "음모에서 나를 구해" 달라고 청원하며 존재성 회복을 희원하는 것이다. 그는 자신에게 덧입혀진 "내 몸의 비단 옷을 벗"어 버리고, 녹색비단으로 덧 입혀지기 이전에 이미 몸이 지닌 본원적 존재성을 탈환하고자 꿈꾸는 것이다. 이는 "눈부시게 빛나는 햇빛"으로 상징되는 ㅈ어신과 이성, 상투적 관념과 편견에 의한 몸에 대한 지배를 거부하고. 이를 반성적 성찰하는 행위로 앍힌다면, 그 구속과 억압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로윤 생명에 대한 희원으로 해석된다.

 몸에 주어진 본성 그대로  "꽃다운 나답게 꽃답게 " " 내 안의 꽃" 을 찾아 자신의 존재성을 획득하고 실현하고자 하는 욕망은 소재적으로나 주제적으로 긔의 시집 곳곳에 편재되어 있다. 몸에 대한 탐구는 곧 존재론적 기반이며 동시에 세계와의 최초 접점인 몸성을 그대로 벋어들이려는 태도이다. 그것을 몸과 마음, 육체와 정신이라는 이원적 접근법에 대한 거부로 읽힌다. 몸을 물질의 덩어리로 보는 태도는 필연적으로 육체를 정신의 가칠ㄹ 위해 희생해야 하거나 극복해야할 장애물로 보게 만들고, 하나의 하등한 신체적 기관으로 여기게 만든다. 강영은 이렇게 몸은 정신이나 마음에 비해 열등한 존재로 치부하게 만드는 사유의 방식을 부정하고 실존적 실체로서의 몸을 회복하고자 한다. 그에게 몸성은 금기적이며 부정벅 대상이 아니다. 몸은 존재의 출발점이자 회귀점으로서 삶의 중심에 자리잡은. 그러니까 인간이 사유하기 이전에 존재하는 하나의 엄연한 실체이다. 아울러 강영은 의 시는"몸매가 상품이 되는 시대"(소비되는 봄)에, 그러니까 육체의 물신화에 의한 소비 조작의 코드에 따라 그 실존성을 박탈당한 시대에 그 잃어버린 실재성을 탐구하는 과정에 있다.

 

『현대시와 도시 체험의 미적 근대성』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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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진/충남 홍성 출생. 문학박사, 문학평론가. 계간 <시와정신> 편집위원. 현재 한남대학교 문과대학 문예창작학과 교수
저서 <장편 서술시의 서사 시학>, <부정과 전복의 시학>, <오르페우스의 시선>, <계승의 형식, 형식의 위반> 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