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갑(還甲)/강영은
이른 봄, 폭설이 내렸어요. 육십년 만에 내리는 눈이라고, 사람들은 두 눈을 발목 속에 푹푹 파묻었어요. 숫자 같은 건 아무래도 좋았어요. 질척거리는 길들과 엉켜 붙은 자동차 사이에서 설산을 경험했으니까요.
하늘과 땅이 서로의 두피를 긁어댔어요. 흩날리는 머리칼에선 묵은 쌀로 찐 백설기 내음이 났어요. 쌀벌레가 겹겹이 쌓인 떡을 제사상에 올려도 아무도 모를 거라고, 눈 맞은 나무들은 시루의 크기를 속살 거렸죠. 나, 나는 죽은 쌀벌레를 생각 했어요.
그래요, 폭설 속에선 모든 것이 모호해져요. 속은 비고 겉은 차가운 것이 벌레처럼 눈가에 어른거리죠. 오래된 사랑을 길모퉁이 거울 속에 세워둔 것처럼 사람들은 겹눈을 가지게 되죠 먼 곳은 가까이, 가까운 곳은 멀리 보이는 이런 날,
눈사태를 이룬 풍경과 상관없이 겨울은 태어난 때로 돌아가겠죠. 그토록 많은 눈사람을 두고 걸어 가겠죠. 만들다 만 눈사람처럼 나는 태어난 때로 돌아갔어요.
더러움을 벗어던진 흰 눈의 축제, 가장 순하고 어여쁜 아기 하나가 눈 속에서 태어나는 것을 보았어요. 축하해요 엄마, 몇 사람의 얼굴을 감춘 내가 아장거리며 다가 왔어요. 보너스처럼, 보너스가 담긴 봉투처럼,
가고 오지 않는 시간이 거기 놓여 있었어요.
『시와 문화』 2019년 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