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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머의 신작

환갑(還甲)

by 너머의 새 2019. 3. 7.





환갑(還甲)/강영은


 

  이른 봄, 폭설이 내렸어요. 육십년 만에 내리는 눈이라고, 사람들은 두 눈을 발목 속에 푹푹 파묻었어요. 숫자 같은 건 아무래도 좋았어요. 질척거리는 길들과 엉켜 붙은 자동사이에서 설산을 경험했으니까요.

 

  하늘과 땅이 서로의 두피를 긁어댔어요. 흩날리는 머리칼에선 묵은 쌀로 찐 백설기 내음이 났어요. 쌀벌레가 겹겹이 쌓인 떡을 제사상에 올려도 아무도 모를 거라고, 눈 맞은 나무들은 시루의 크기를 속살 거렸죠. , 나는 죽은 쌀벌레를 생각 했어요.

 그래요, 폭설 속에선 모든 것이 모호해져요. 속은 비고 겉은 차가운 것이 벌레처럼 눈어른거리죠. 오래된 사랑을 길모퉁이 거울 속에  세워둔 것처럼 사람들은 겹눈을 가지게 되죠 먼 곳은 가까이, 가까운 곳은 멀리 보이는 이런 날,

  

  눈사태를 이룬 풍경과 상관없이 겨울은 태어난 때로 돌아가겠죠. 그토록 많은 눈사람을 두고 걸어 가겠죠. 만들다 만 눈사람처럼 나는 태어난 때로 돌아갔어요.

 

  더러움을 벗어던진 흰 눈의 축제가장 순하고 어여쁜 아기 하나가 눈 속에서 태어나는 것을 보았어요. 축하해요 엄마, 몇 사람의 얼굴을 감춘 내가 아장거리며 다가 왔어. 보너스처럼, 너스가 담긴 봉투처럼,

 ​ 가고 오지 않는 시간이 거기 놓여 있었어요.

『시와 문화』 2019년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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