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산탄(火山彈)/강영은
이리를 닮은 오름 길에서 너는 상냥한 이리처럼 나뭇가지를 부러뜨렸어 울음 끝에 툭, 던져진 벌레처럼 숨을 멈추었지만
눈썹을 동여맨 덩굴의 방향에서 터져나오는 울음소리, 삼나무 숲길에선 진초록 이끼들이 기어 나왔어
굉장하지? 득의를 얻은 네 웃음 너머엔 불타는 산의 원경(遠景)같은 돌무더기들, 시간의 무덤들이 회색에서 검은 색으로 건너가고 있었어
등뼈 쭈그려 든 돌덩어리 위, 폭발하는 허공은 보이지 않았지만 수천 겹 바람 드나들고 수천 겹 햇살 내리꽂힌
여기가 이승이라고, 우리가 사랑할 곳은 여기라고, 참새부리처럼 돋아난 잎사귀들 다른 공간에 닿은 듯 하늘 거렸어
돌의 이마를 깨고 나온 무진장의 이승이 둘레에 피어났어 이승의 끝이 보이지 않는 그 속에 들고 싶었어
나, 새 잎 틔우고 싶었어 나의 관절, 나의 등뼈와 무관하다 해도 폐허를 일으키는 울창한 숲이 되고 싶었어
화염 터로 전쟁터로 오가는 봄을 만나 근접하지 못 하는 마음의 안부를 물어도 될까, 묻기도 전에
죽어서 이름 얻은 돌, 화산탄이 봄을 뿜어내고 있었어 성자(聖者)처럼,
화산탄 속에 화산이 들어있었어 화산탄 속에 총알이 들어 있었어.
한라산 둘레 길을 돌아오는 동안 너는 나에게 죽어도 죽지 않는 세계를 보여 주었어 돌 속에 나무를 심어 주었어
『시와문화』 2019년 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