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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머의 신작

백비(白碑)

by 너머의 새 2019. 4. 1.


백비(白碑)/강영은

 

  내 몸에 함부로 손대지 마라.

 비문을 정으로 쪼아 뭉개고 땅에 묻어버린 자, 비문에 이름 새기기를 좋아하는 자, 비문을 무덤의 표석으로 세우고 싶은 자.

 

왼쪽으로 가자고 왼쪽 옆구리를 차는 자, 오른편이 낫다고 오른쪽 팔뚝을 잡아당기는 자, 이쪽도 저쪽도 아니라고 중심을 버리는 자, 나만 옳다고 깃발 내거는 자

 

손에 피 묻힌 자, 총탄 쏘는 자, 말 폭탄 퍼 붓는 자, 역사로부터 도망치는 자, 자연을 외면하는 자, 섭리에 불충한 자,

 

하늘과 바람과 별을 이해하지 못하는 자, 슬픔을 차별하는 자, 통곡할 줄 모르는 자는 더욱,

 

나는 평화와 상생의 , 희디흰 얼굴뿐이니 어떤 색깔로도 나를 화장(化粧)하지 말라. 백세(百世) 뒤에도 천세(千歲) 뒤에도,

 

내가 죽으면 절대로 나를 일으켜 세우지 마라.

​- 3,1 운동 100주년 기념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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