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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머의 신작

펭귄우체국

by 너머의 새 2019. 4. 1.



펭귄우체국/강영은







빨간 창문과 검정 칠을 한 지붕을 가졌다고

우체국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젠투 펭귄 모여드는 곳, 그곳에서 당신을 기다릴래요

당신은 틀림없이 뒤뚱거리며 얼음 위를 걸어올 테니까요

당신 대신 엽서가 온다고 해도 걱정 없죠

도둑 갈매기와 세찬 바람, 눈보라까지 몰려들겠지만

당신의 엽서는 하얗고 딱딱한 껍질에 싸여 도착할 테니까요

발 크고 다리 짧은 엽서 위에도 균형은 필요하고

희고 깨끗한 엽서 에게도 혹한의 계절은 있겠죠

이리저리 비틀거리는 올해는 눈이 많이 와서

창문에 쌓인 눈을 털며  엽서가 걸어올 길을 예비해 둡니다

사람들은 네모난 창 안에서 엽서를 쓰겠죠

이곳은 온통 바람과 눈과 얼음 뿐이야,

나는 펭귄의 말을 그대로 받아쓸 거에요

당신만 아는 유일한 울음을 깃털에 적셔 띄울 거에요

펭귄 우체국이 울음의 서식지니까요

알아요, 짝짓기를 하려면 우는 법을 알아야 하죠

사랑에 눈뜨기 전에 울음부터 배워야 하죠

울지 못한 사람들은 펭귄 우체국으로 오세요

울음이 번식하는 눈폭풍을 맞아보세요 

젖는다는 게 무언지 알 수 있을 거예요

얼음 바다에 발과 부리를 적신 아기펭귄처럼

당신의 엽서도 무럭무럭 자라 먹이를 구할 수 있을 거에요

그래요, 당신의 삶이 엽서처럼 아름다운 건 아니죠

하지만, 당신의 엽서는 나를 지킬 수 있죠

그곳에서 엽서를 기다릴래요

내 마음의 남극, 로크로이 항구가 풀릴 때까지



 열린시학2019년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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