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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머의 리뷰

아픔에게 던지는 말과 굴절의 용해/정공량

by 너머의 새 2019. 6. 21.

시선 서평   

 ​​

아픔에게 던지는 말과 굴절의 용해                     

  -강영은 시집『마고의 항아리』정 공 량(시인·시선 편집주간)​​  



강영은의 시집『마고의 항아리』는 우리 삶의 내면에 잠재해 있는 아픔을 구체적으로 드러내어 보여주고 있는 시편들이 많았다. 결국은 우리들 삶에 황급하게 다가오는 불편함의 원인들을 규명하려는 것이라고 본다. 인간이면 누구나 겪는 지난 시간의 퇴적된 미련과 후회들을 들추어내어 화해의 시점을 마련하려는 것이다. 이미 응어리져 있어 퇴적되려하는 과거로의 집착을 순순히 탈피하고자 하는 시적 의도를 보여주고 있다. 미래의 희망을 향해 구름처럼 날려 버리려는, 무망하고 아픈 존재들에게 단호한 질문과 함께 내일의 힘찬 행렬로 이를 환전시키고 있는 것이다. 가두어 둘 수 없는 존재는 항시 우리 인간에게 충격으로 다가온다. 그 충격에서 벗어나려는 삶의 진퇴양난 같은 이 마법. 그 성에서 우리 인간은 안개와도 같은 내일의 향방에 대하여 어떤 수수께끼를 풀어야 하는가를 말하고 있다. 우리가 함부로 던진 말은 이미 우리의 정신과 마음을 떠나 둥실 떠 있어 가히 잡을 수 없는 구름과 같은 존재이다. 그러나 한 치의 양보도 없는 오늘의 잔혹이 삶을 덩어리 채로 삼키려고 드는 것이다. 삶의 분절과 고독 아니면 고통과 굴절의 시간을 향해 강영은의 시는 섬세하게 이를 용해시키고 있는 것이다.​​ 초록이 생각의 빛깔이어서 굽히지 않는 생각 쪽으로 초록이 무성하네몸 안으로 흘러든 시간이 어떻게 지렛대가 되는지 아름다운 수형을 지닌 생의 절정은 뺨을 맞거나 어깨 짓밟힌 시간 속에서 걸어 나왔네싱싱하게 뻗은 결의는 구부러진 시간 속에서 걸어 나갔네세상을 한 손으로 괸 반가사유상도 제 몸의 직선을 구부린 후에야 미소를 띠었네 여기까지 온 마음이 생각하는 정원이네여기까지 온  몸이 한 그루 분재네 -「생각하는 정원」중에서​ 「생각하는 정원」에서 시적 화자는 삶의 진통에 대해서 오히려 숙연함을 보여주고 있다. 싱싱하게 뻗은 결의는 구부러진 시간 속에서 걸어 나갔네”에서 삶의 역경과 고통을 우리가 어떻게 건너야 하는가를 시사하고 있다. “여기까지 온 마음이 생각하는 정원이네”에서 보여주는 바는 ‘생각’으로 결론을 짓고 있다. 인간은 사고하는 동물이다. 이 사고의 치렁치렁한 숲에서는 어쩌면 고통과 역경도 한방에 나가고 말, 물결 같은 것은 아닐까. 우리 인간의 내면에 잠재해 있는 숙성된 지각의 판단과 내일을 향한 현명한 각오의 수치는 삶을 보다 더 윤택한 쪽으로 이끌어 갈 것이 분명하다.   소리를 버린 입의 원근에서 새는 날아간다​새장처럼 보이는 것을 찾으려고구름의 변용을 잠시 허용한다​불속의 연꽃처럼불속의 소처럼 보이는 새를 보려고 피아노 뚜껑을 연다​ 꽃병에서 떨어진 물방울들이 우산을 받쳐 든 느낌으로지나간다-「음악」전문  강영은 시인은「음악」에서 보여주는 바와 같이 감각적 언어 탐색에 이번 시집에서 주력하고 있다. “새장처럼 보이는 것을 찾으려고/구름의 변용을 잠시/허용한다”에서 보는 바와 같이 언어 자체를 분해하거나 통합하여 새로운 의미의 전이를 유도하고 있다. 이는 언어의 변이를 통해서 또 다른 세계로의 진전을 보이고자 하는 시인의 시적 의도라고 생각한다. 시에서 언어는 재료이면서 새로운 의미창출의 혁신적 질료인 것이다. 시인이 의도하는 바는 동떨어진 세계로 변이를 통해서 시적 진술을 다채롭게 하면서 풍성한 시적 자산을 노리고 있는 것이다.「음악」에서 보여주는 바는 우리가 흔히 아는 세계에서 과감히 일탈하여 언어 자체의 존재감에 옷을 입히고 있는 것이다. 이런 낯선 세계로의 그물망을 펼쳐감은 시를 보다 신선하게 해주고 있는 것이다. 강영은의 이번 시집에서 이런 시도들은 다채롭게 연출되고 있다. ​​ 당신은 나를 건너고 나는 당신을 건너니 우리는 한 물빛에 닿는다 눈발 날리는 저녁과 검은 강물처럼 젖은 이마에 닿는 일떠나가는 물결 속으로 여러 번 다녀온다는 말이어서발자국만 흩어진 나루터처럼 나는 도무지 새벽이 멀기만 하다 당신의 표정이 흰색뿐이라면 슬픔의 감정이 단아해질까비목어처럼 당신은 저쪽을 바라본다저쪽이 환하다 결계가 없으니 흰 여백이다 어둠을 사랑한 적 없건만 강둑에 앉아 울고 있는 내가 낯설어질 때 오래된 묵향에서 풀려 나온 듯 강물이 붉은 아가미를 열고 울컥, 물비린내를 쏟아낸다 미늘 하나로 당신은 내 속을 흐르고 나는 당신 속을 흐른다                         -「공무도하가」전문​​ 이 시는 이번시집에서 횡행하는 굴절된 우리 인간의 삶을 여실하게 보여주는 시이다. 그러나 굴절은 우리에게서 낯설거나 멀리 있지 않은 존재다. 언제나 우리 인간의 삶 가까이에서 지겨운 소름처럼, 안개처럼 얼굴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인간의 심성에 독소로 작용하는 아픔을 거대하게 거느린다. 이런 인간의 굴절되고 파편화된 아픔의 두께를 이 시는 헤집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헤집어 내어 마음의 독소, 정신의 독소를 제거하려는 긍정의 세계인식으로의 환전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아픔은 인간에게 숙명처럼 다가오고 굴절로, 숨결처럼 우리를 항시 지배한다. 그러나 그로부터의 일탈하려 함은 시에서 보는 바와 같이 성숙된 인간의 조건으로 작용될 것이 분명하다.​ 향기만 날려 보낸 꽃에 대해 가장 짧은 다리를 지닌 것이 벼랑이라면 ​ 당신께 나를 드릴게요, 지극한 어조로 뒷걸음질 친 나는 벼랑에 핀 꽃​ 올라갈 수도 내려갈 수도 없는 마음이 꽃 같아서 절벽 앞으로 나들이 간 꽃  반공중에 걸린 무덤 앞에서 메아리만 돌아오는 절벽 앞에서​붉은 마음을 꺾어 바친 당신의 멘토는 누구입니까? 검은 암소를 끌고 가는 노옹입니까?​ 누가 나에게 묻는다면 손이라 대답하겠습니다아니, 아니 봄이라 하겠습니다 ​ 향기만 날려 보낸 꽃에 대해 가장 짧은 묵념을 지닌 것이 벼랑이라면,    -「당신의 멘토」전문​ 이 시에서는 불안한 내일에 대한 우려를 증폭시키는 암울함을 동반한다. 우리 인간에게 내일은 항시 불안의 몸을 빌려 살고 있는 것이다. 이 불안이 정당한 허울을 쓰고 우리에게 다가와 있는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현실은 우리를 오늘의 현명한 주인공의 역할에서 더욱 멀리 떼어 놓고 말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이 시에서의 궁극적 메시지는 내일은 분명히 밝은 긍정적 세계로의 인식을 과감하게 들추어내려는 것이다. 우리에게 내일은 항시 희망을 담보로 한다. 이 시에서와 같이 조심스럽게 내일을 우리가 맞이한다면 그 희망은 계속해서 거센 햇빛의 광장을 이룰 것이 분명하다. ​강영은의 이번 시집은 언어에 대한 무수한 탐색과 아울러 언어 자체에 존재감을 부여하려는 노력들이 주목할 만한 것이라고 본다. 또한 고통으로 굴절된 인간의 삶을 다부지게 용해하여 희망의 안식에 발을 디디려는 힘을 시에서 용출시키고 있다. 강영은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 보여준 다양한 탐색의 자장을 앞으로 더욱 잘 살려 좋은 시가 계속 창출될 것을 기대해본다.​    『시선』 2015년 여름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