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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머의 단평

단풍잎 /허문영

by 너머의 새 2019. 10. 6.

단풍잎 /허문영

 

 

앞차 유리창에

발그레해진 얼굴이 붙어 있다

 

어디서부터 따라왔을까

소백산일까 내장산일까

도회지 구경이 하고 싶어

동행했는지도 모른다

 

둘인 걸 보니

정염情炎의 가을 숲에서 나온 연인

달리는 차창에 붙어서

서로 떨어지지 않으려고

두 손을 꼭 잡고 있는데

 

불타는 계절이 보여주는

아슬아슬한 질주

내 옆에도 단풍잎 한 장이 앉아있다.

 

 문학과 창작 2013년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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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긋불긋한 행락객들에 눈이 취하고 한층 달라진 바람결과 햇살에 마음이 들뜨는 계절, 가을은 시인의 상상력도 물들였을까,

 

‘앞차 유리창에/ 발그레해진 얼굴이 붙어 있다//어디서부터 따라왔을까/소백산일까 내장산일까’ 시인의 손끝을 따라 가다보면, 단풍잎과 대응되는 불그레한 얼굴이 나온다. 정염의 가을 숲에서 나온 연인이자. 시적 화자의 곁에 앉은 한 여인으로 대용되는 단풍잎이다. 계절의 순환을 정애의 한 측면으로 묘사한 시어의 대착점이 빛난다. 시에 쓰이는 시어는 사물 속에 숨은 또 다른 세계를 보여주기 위해 비유의 기능을 가진다. 표현하고자 하는 바를 구체적이고도 생생하게 나타내기 위해 다른 사물을 이끌어 들여 쓰는 환유적 기능은 수사적 방법의 핵심이 되기도 하다.

 

'단풍잎'은 가을의 흥취를 섬세하게 포착하여 사물 사이의 공간적 시간적, 논리적 인접성을 재미있게 표출한다. ‘불타는 계절이 보여주는/ 아슬아슬한 질주’, 망아황홀(忘我恍惚)을 구가하는 에로티즘의 미학이다. /강영은


『2014 시인들이 뽑은 좋은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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