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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고의 항아리

이른 눈

by 너머의 새 2020. 1. 16.

 

 

 

 

 

이른 눈/강영은

 


 우리는 목관 악기에 혀를 끼워 울음소리를 보탰다. 목젖이 울리고 피리가락이 흐르는 동안 향의 단조로움에 붓을 세운 한지처럼 죽음을 애도했다. 

 

 목에 매단 나비를 고쳐 매주던 그 여자 만큼 우리도 사랑했을까,

 

 내리면서 녹는 눈이 죽음의 어깨를 두드렸지만 흐느끼는 여자 앞에서 푸르다는 말은 위안이 되지 못했다.  

 

 백합과 흰 장미의 무덤인 혼례식장에서 우리는 웃으며 축복했었다. 축복의 미래를 확인할 새도 없이 눈을 덮는 꽃의 폭설(暴泄), 우듬지를 때리는 꽃의 폭력이 청춘을 끝장 냈다. ​​

 

 청춘이란 5월에 내리는 눈,​​

 

 초록 잎사귀가 조문객 틈에 끼여 장례식장으로 운구 되는 동안 언제 이 별에 왔다갔는 지 우리의 청춘도 모호해졌다.

 

 짧은 한 때, 이른 눈이 벚나무를 조문하며 우리를 다녀갔다.  지는 꽃자리가 환하다는 통속적인 저녁이 술잔을 기울였지만 우주를 다녀온 죽음이 도착 전이어서

 

 열 개의 손가락으로 늙은 얼굴에 다가갔던 우리는 꽃 지는 저녁마다 목관 악기를 보았다. ​​

 

 그 해 여름 목관 악기가 사라졌다. '5월 19일에 큰 눈이 내렸고 8월 1일에 천지가 깜깜해졌다'.


 ​


  *『삼국유사』 제2권 기이(紀異)  제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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