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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머의 신작

시간의 나비/강영은

by 너머의 새 2023. 11. 25.

 

시간의 나비/강영은

  말랑말랑한 젤리를 먹을 때처럼 슬픔을 아껴먹던 소녀를 기억한다. 눈가엔 흐느낌이 번져 있었지만, 젤리 껍질을 벗긴 것처럼 빛나던 눈빛

 

  산사(山寺)의 종소리가 내려와 오후 네 시의 마음에 울릴 때까지,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 입속말 되뇌이던 소녀를 기억한다.

 

  소녀의 슬픔을 기억할 필요는 없다.

 

  소녀의 머리칼에 앉아 있던 분홍 리본이 시간의 나비처럼 날아왔으므로 기억이 저 혼자, 날개를 접은 나비처럼 시간을 접어보는 것이다.

 

  실밥이 너덜너덜해진 리본처럼 나는 자주 울고 자꾸 실패하지만, 분홍으로 물드는 저녁이 되면 시간 속에 사라진 소녀를 불러온다.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 흰 무명 커튼이 펄럭이는 어두운 창가에서 내 가 왜 울었는지는 중요하지가 않다.

『시와 사람』2023년 가을호 , 신작 소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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