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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머의 신작

울릉(鬱陵)

by 너머의 새 2024. 10. 6.

 



 

울릉(鬱陵)/ 강영은

 

 

 섬잣나무 같은 사내에 눈이 먼다면, 울릉도에 가볼 일이다.

 깊은 바다 외롭게 솟아있는 해산海山처럼 폭발하는 마음, 아무도 모르게 출렁거리는 마음 데리고 울릉도에 가볼 일이다.

 남몰래 띄우는 편지처럼 나리분지 북쪽에 일렬로 늘어선 봉우리 어느 한 칸에 우데기* 같은 초막 한 채 세워도 되리.

 밤이면, 섬잣나무 무릎에 누워 사랑하는 이의 귓밥 파주듯 가만가만 속삭이는 파도 소리 들어도 좋으리. 젊은 화산체 같은 마음 다시 타오르기를 기다려도 좋으리

 섬과 섬 사이, 안개 짙어지면 오갈 데 없는 마음 고요해져 출렁거리는 밤의 기척은 한층 더 깊어지리. 세간의 이목구비는 아무래도 상관없으리.

 좋았다가 흐리다가 비 오가를 반복하는 날씨 더불어 오직 그대만이 그리워지리. 슬픔이 울창해질 때까지 그리움이 물결을 밀고 가리.

 누가 맨 처음 도착했는지, 도착해서 일가 이루었는지 부지깨이 같은 알 지 못해도 없어도  화산火山이 터전을 가꾼 화산도,

 

 화산처럼 터지는 사랑에 눈이 먼다면,  울릉도에 가볼 일이다.

 

*우데기/ 사방에 짚을 엮은 거적으로 된 벽을 둘러친 울릉도의 가옥 형태,​

『한국 시인』 2024 하반기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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