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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고의 항아리

석간 (夕刊

by 너머의 새 2025. 4. 14.

 

 

석간 (夕刊 )/ 강영은

 

 

 

단풍잎을 줍는 아이와 그 등을 바라보는 어미의

코끝에서 타는 낙엽냄새

나무들 같은 존재에 닿는 지면이

같다고 생각하면 같은 온도로 틀리다고 생각하면 틀린 온도로

타오르는 저녁이다

손으로 비벼 끈 담배처럼 우리는 서로를 모르지만

통곡의 벽을 지나가는 사람들, 모닥불처럼 피어나는 행간들​

누가 찢었나,

누가 되는 저쪽에서 이쪽으로 달려오는 불자동차

잠을 청하는 노숙자처럼

우리는 내일의 안녕을 묻지만

모르는 온도를 지닌 당신의 체온은 다른 낙엽으로 기록되는 것이어서

인기척에 놀란 활자들이 몇 갈피의 소모로 파쇄 되는 저녁

당신과 나의 입김으로 태어난 모로코나비n-nabi는

단풍잎 아래 파란색 수은주를 멈춘다.

두 날개가 접힌 세계는 벌써 낯설고 먼 지상이다.

-『문학사상』 2014년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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