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너머의 해설

절정의 始原(시원)에서 부르는 노래

by 너머의 새 2015. 9. 10.


절정의 始原(시원)에서 부르는 노래/강영은

-이기형 시집 (절정의 노래)를 읽고









-------------------------------------------------------------------------------------------



2008년 12월 28일, 창작21 송년 모임에서 참으로 귀한 시집 한 권을 받아들었다. 이기형 시인의 시집<절정의 노래>였다. 먼발치에서 뵙기만 했을 뿐,시인과 특별한 인연이 없었지만 망백의 나이를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우렁찬 목소리와 남다른 기개를 지니신 노시인의 시집을 받아드는 순간, "다시 천고(千古)의 뒤에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이 있어 /이 광야에서 목 놓아 부르게 하리라"라고 노래한 <이육사>의 '광야" 한 구절이 뇌리를 꿰뚫고 지나갔다. 시 구절에 나오는초인이 현현 한다면 바로 시인의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시집을 펼치자 "시는 시인의 노고와 연구의 결과이며 열매이다 "라고 말한 존슨의 말처럼 노시인의 시혼이 활할 타오르는 것 같았다. 그 시혼이야말로 시인의 삶을 절정으로 이끌어나가는 불꽃일 터였다. 주지하다시피 한 세기에 가까운 세월을 몸속에 지닌 말 그대로 역사의 산증인인 시인이 쇠락하지 않는 시의 불꽃은 어디에서 어떻게 점화된 것일까.시인의 시집이 자못 궁금해졌다.




1, 무장화 된 언어




'문학은 그 스스로를 사회적 현실이나 상황, 역사에 구속시킨다고' 말한 바 있는 <사르트르>의 말처럼 시집 <절정의 노래>는 한국의 사회적 현실이나 상황, 혹은 역사와 무관하지 않음을 본다. 반세기 이상을 조국의 분단 극복과 통일 운동을 평생의 숙원으로 지향해 온 시인이기에 그에게 있어서 문학이란 민족이 하나 되기 위해 부르짖는 소망의 노래이며 분단된 현실을 안타까워하는 비탄의 노래이고 탈식민주의를 향해, 혹은 파괴되어지는 자연적, 문화적 생태에 대해 일침을 가하는 비판의 목소리라 할 수 있다. "시는아름답기만 해서는 모자란다. 사람의 마음을 뒤흔들 필요가 있고, 듣는 이의 영혼을 뜻대로 이끌어 나가야 한다"는 <호라티우스>의 말처럼 시집 속에 나타나는 시적 어조는 시의 내용에 맞춰 비장하고 구슬프며 때로는 격렬함과 안타까운 시말로 충만해 있다. 이에 대해 <임헌영> 평론가는 “그는 영원한 청년이다 어려운 현장 에서도 그는 비켜서거나 젊은이에게 양보 않는 전위대로나선다. 그는 영원한 대중 시인이다. 그의 시는 국민 대중의 고통을 호소하는 큰 함성이자 절규로, 큰소리를 내면 바로 구호와 표어가 될 수 있는 무장화된 언어들”- 이라고 2004년도에 발간된 이기형 시집<봄은 왜 오지 않는가> 발문에서 말한바 있다. 시 한편을 보기로 하자.




터벅터벅..................

구십 노구를 이끌고 만감에 젖어

녹사평의 지하도를 간다

어디로 가는가?

내 애인들이

슬픈 조국을 지키고자 절규하는

국방부 앞으로 간다

뭣하는거냐?

한미합동 을지포커스 훈련을 막으려

몸을 던진다

21세기초 밝은 민주주의 대낮

북쪽 형제를 잡는 군사 훈련이라니!

원흉은 누구냐?

분단의 독균을 싹둑 오려내야 한다

망국한 서렸던 백년 전

을사오적 무리들은

한맺힌 패망길 일본길로 갔다

오늘 친일 친미 배족 수구 무리들은

예속길 미국길로 가자 하네

사천만 겨레는, 지금

민족 비극의 절정 백척 간두에 섰거니

삐꺽하면 떨어져 죽어




허우적이지 말고

자주의 밧줄을 굳게 붙잡아야 해

태양도 멍들었던 일제 침략을 부숴 얻은

자주정신을 우러러

북쪽 선군 형제는 생명탄 일곱발을

원흉의 정수리에 쏘아 올렸다




어쩔거냐

“미군은 물러가라!‘

생명의 울림이 가슴을 친다.

-생명의 밧줄-




시인의 시세계를 알기 위해서 시인의 내력을 잠깐 살펴보기로 하자. 1917년 함경남도함주에서 태어난 시인은 함흥고보를 졸업하고 도쿄 일본대학 예술부 창작과에서 2년간 수학하였다. 1947년 <민주전선>지에 작품을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하였으며 정신적 지주로 모셔온 몽양 여운형 선생 서거 이후 일체의 공적인 사회활동을 중단하고 칩거생활을 하였다. 1980년 시인 신경림, 문학평론가 백낙청, 시인 이시영 등을 만나 분단 조국 하에서 시를 쓰지 않겠다는 생각을 바꿔 다시 시작활동을 결심하였다. 1980년부터 1990년 대 중반까지 재야 민주화 통일운동에 참여하였으며, 1989년 시집<지리산>필화 사건으로 발행인은 구속되고, 자신은 국가 보안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되어 대법원에서 징역 1년, 집행 유예2년 확정 판결을 받았다. 저서로는 <망향> 외 다수의 시집이 있으며, 모양과 도산의 전기 및, <시인의 고향> 등 다수의 기행서를 펴냈다. 이상과 같은 내력에서 살펴보았듯, 시인은 이 땅의 굴곡진 역사의 가시밭길을 몸으로 부딪히며 직접 헤쳐 온 분이다.



인간이 살기 위해 가장 요긴한 의식주 문제 보다 분열된 국가와 민족의 아픔을 먼저 생각해 온 시인의 시세계는 이 땅을 어머니로 하여 태어난 우리들에게 결코 외면할 수없는 운명적 동질감을 확인케 한다. 그의 목소리가 한 세기를 거쳐민족의 고통스런 현장을 직접 목격한 증인으로써의 생생한 발언이며 시인으로서의 양심을 가지고 이 땅의 앞날을 구현하려는 몸짓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시인의 시말들은 무장화된 언어로서 현실을 질타하고 시인의 의도하는 바를 정직하게 드러내는 민중시, 혹은 참여시로써 자유분방한 문예사조의 시대적 흐름 속에서도 독보적인 목소리를 지니고 있는것이라 할 수 있다. 이데올로기와 냉전의 암울한 세기가 가고 새로운 세기가 펼쳐지는 작금이라 할지라도 시인이 펼치는 시적 언표들은 여전히 민중의 입장에서 절정을 노래하고 있으며 시인의 삶이 그대로 시편 속에 녹아 있기 때문에 진정성을 답보한 그의 시들은 현재적 입장에서 현현하는 참여시로써 대표적인 예라 하고 싶다.




2, 진보적인 문학성




“저번 시집들보다 수준이 높아야 할 텐데”라고 쓴‘자서’첫머리를 읽으며 나도 모르게미소를 짓는다. 인간이 누리는 모든 경지를 지나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망백의 나이(91세)마저 지난 시인이지만 시집 발간을 앞두고 설레이는 모습을 보니 시인이 아무리 험난하고 지난한 세월을 통과 하였다 해도 시인 본연의 천진무구함, 순수함을 벗어나지 않는 천상, 시인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시인은 '시에 대한 평가의 기준을 겨레와 역사에대한 정확하고도 높은 인식'이어야 한다고 자신의 시에 대한 평가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인간적, 역사적, 지식적 인식의 총체로 씌여진 시이기를 바라는 마음도 내비친다. 또한“통일”이라는 민족적 역사적 대명제에 어느 정도 접근해 있는지, 독자 제현의 질타를 달게 받겠다고 명백히 밝히고 있다. 한 사람의 독자인 나를예로 한다면 시인에게 질타는커녕, 오히려 시인이 갖고 있는 민족적 역사적 대명제 아래 자신을 점검해보아야 할 판이다. 인간적, 지식적인 면에서도 족적을 따라 밞는 것조차 버겁기만 하다. 나의 무지가 시인의 행간을 더듬는 동안 큰 누를 끼치는 것을 아닐런 지 마음이 조마조마 하다. 그러나, 나의 모든 부족함은 시인의 커다란 그늘에 무늬 없는 작은 그늘로 담겨 질 것이라 믿기에 용기를 내어 시인의 시를 조심스레 읽어나가기로 한다.




구십 노구를 이끌고

삼각산에 올라 한강을 굽어본다.




한 갑자 긴긴 성상을 헛보낸 슬픔을 딛고

옛사람은

'王昭는 귀불귀라' 탄식했으니

눈물의 격류에서

"내 님도 귀불귀'라 장탄長 歎 하노라,

그날 춤추던 내흉을

다시 보고파




세월도 인결도 무심하다만

유심한 역사를 바라보며

피목청 야호를 외친다.




경술 망국의 恨 그날

외에밋들 달구벌 황금물결은 어떠 했는지.

쓰러졌다간 다시 곧추서 춤췄다.

20세기 중엽

지리산 수렁수렁 상수리 잎은 어떠 했는가.

피울음 밀리다간 다시 펼쳐서 펄럭였다.




오늘, 갈라져 예순 한 해

황금물결도 상수리 잎도 엎드려 난자당한다.

차라리 하늘아 내려앉아라.

원흉은 누구냐

둘러리는 뉘고

저들과 그들이 기를 써 맞장구 친다만

전쟁이냐 평화냐

분단, 통일

자주의 지국 적 해맑은 격랑에 부딪혀 봐

환희의 굉음을 예감한다.

-<예감> 전문-




무장화 된 언어의 옷을 입혔지만 시인은 시를 형상화함에 있어서 보다 진보적인 문학성을 염두엔 둔 듯하다. 반세기동안 분단 극복과 통일 운동을 지향해온 시인의 목소리는 때론 격정적이지만 시인으로서 그가 지향하는 것은 진보적 서정성이라는 것을 다음의 글을 통해 알 수가 있다. 시인은 지난 2005년, "서구의 패권주의에 대한 저항 의식과 민족주의적 패러다임 속에 재미와 서정성을 불어넣어야 한다"고 <창작 21>의 <역사의식을 담은 진보적 통일 문학을 향하여> 라는 특별 대담 코너에서 언급한 바 있다. 민중시,참요시일수록 민중의 외면을 받지 않기 위해 시 속에 재미와 서정성을 넣어야 한다고 강조하셨다. 그 지향점을 향해 시적 발화를 함에 있어서 객관적 거리를 둔시편들도 눈에 띄는데 <예감>은 이러한 서정성을 바탕으로 분단된 조국에의 통일을 예감하는 환희의 시편이다. 재미있게 씌여진 또 한 편의 시를 보기로 하자.




어라연 삼지연 풍광이

아무리 빼어난들 뭘해

겨레의 빈쪽밖에 못 보는데

설악산 금강산이

제 아모리 수려장엄해도 뭘해

겨레의 반쪽 밖에 볼 수 없으니




전주비빔밥과 함흥냉면이

제 아모리 맛이 좋은들 뭘해

겨레의 반쪽 밖에 맛보지 못하니

천안 삼거리능수버들과 함경도 어랑 타령이

제 아모리 흥겨워도 뭘해

겨레의 절반 밖에 못 들으니

아 반쪽의 눈물 젖음이여!

-<반쪽의 눈물>부분




시인 자신이 청자가 되는 이 시 속에는 진보적 문학성을 지닌 메타포만이 아니라 반쪽이 된 겨레의 통일을 바라는 시인의 마음이 들어 있다. 시를 형상함에 있어서 시인은 이처럼 민족의 통일을 최우선으로 한다.《모시 서 毛詩 序》에 "시란 뜻이 향해 가는 바라, 마음 안에 있으면 뜻이 되고 말로 나타내면 시가 된다" 고 쓰여 있는 데 시인의 시편들은 대부분 마음 안에 있는 뜻, 즉 통일에 대한 염원을 간곡한 말로 드러내는데 있다 하겠다.




3, 통일을 향하여




사람에게는 귀소본능이 있다. 자신이 태어나고 자신이 생활하는 자신이 자란 곳으로 돌아가려는 이러한 경향은 본질적으로 영원한 고향인 모태로 돌아가려는 본능이며 존재의 시발점이 되는 우주로 돌아가려는 근원적 몸짓이기도 하다. 시인에게 있어서이 귀소본능은 민족이라는 역사적, 운명적 공동체를 향해 통일을 지향해나간다. 통일은 민족의 과제이며 소원이기도 하지만, 개인사적으로는 귀소본능의 근원적 몸짓이며 시인 자신의 생애를 관통해온역사적 과업이자 숙명이다. 그 결과물인 시를 생산해내는 시적 모태이기도 하다.




아내가 보시기에 고구마 한 개를 놓고 물을 부어

보시기에 놔두었다

아침마다 일과처럼 물을 갈아 주었다

줄기가 여섯 가닥이 돋아나면서 푸른 잎새도 싱싱 생겨

보시기 위에서 제법 생명력 푸른 잔치가 벌어졌다

동짓달이 거의 갈 무렵엔

푸른 이파리가 누렇게 변색하면서 하나 둘씩 떨어져

앙상한 줄기가지만 남았다

쌀쌀한 힘의 계절에 힘입어

생명력의 종말에 이른가부다 했다

그래도 호기심과 기대로 물을 계속 갈아주었다




어느 날 아침, 이게 웬일

말라가던 줄기 한 가닥에서

떡잎 하나가 파랗고 뾰족한 잎을 내밀지 않는가

놀라서 감탄했다

물 준 보람이구나 신이 났다

섣달 중순도 지났건만 떡잎은

여전 푸르게 악전고투하는 눈치다

오늘 2007년 12월 19일 대선 선거 날 아침에도

새싹을 바라 물을 갈아 주었다

떡잎은 보들보들 떨고 있었다

대한민국을 죽이느냐 살리느냐의 심정으로

한 표를 던지고 돌아 와 떡잎 앞에 섰다

내 어머니에게 계속 생명력을 대줍시사

애원하는 눈빛이 역력했다

떡잎의 부활

우린 패배하지 않았어 투표자가 졌을 뿐이야

유전자의 부활

세상만사 살리고자

닐닐 늴리리야

아리랑 아리랑 외세를 걷어차고

삼팔선 고개를 넘어간다

사랑아 손길을 다오 싸움을 흥겨웁게 펼치자

낙동강 백사장, 두만강, 기암괴석

어라연, 삼지연 거울 얼굴

그 어디쯤에선가 하늘이 터지는 절박한 역사의 순간

우린 꼭 얼싸 안아야 한다

그때까지 알뜰히 생명수를 부어주는 게

역사의 부활

산자의 도리가 아닐까

-<떡잎>전문




송용구 평론가는 발문에서 '고구마'는 민족의 통일을 의미하는 은유라 말한 바 있다. ‘고구마’를 통일된 조국이라 생각했을 때 떡잎을 통일로 향하는 시발점 내지 통일을 이룰 수 있는 실마리라 생각해 본다. 이 시속에서 떡잎의 상징성이 무엇인지 구체적인 언표를 통해 나타낸 바는 없지만 통일을 이루기 위해서 끊임없는 관심과 노력을 기울여야 할 대상으로 묘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고구마'를 맺기까지 떡잎은 끊임없는 생장을 필요로 한다. 통일된 조국으로 결실을 맺기 위해서는 작고 미미하지만 떡잎과도 같은 존재가 필요함은 두말 할 필요가 없다. 떡잎은 통일을 향한 발아체로서의 생명력을의미한다. 그 생명을 성장시키고 촉진시키는 것은 물이다.물로 표상되어지는 것은 통일을 향해 지속적으로 행하여져야 할 총체적인 어떤 것이 아닐까. 통일이 본질적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이라면 물은 현상적으로 시행해야 될 행동성을 의미하기도 한다. 다시 말해 통일이라는 본질과 통일을 향한 현상이 적절히 어우러질 때 “하늘이 터지는 절박한 역사의 순간” 이 도래하는 것이다. 본질과 현상이 접목하여 통일로 나아가는 방법에는 정치적으로 여러 현안이 있겠지만 시 속에서 읽어낸 바에 의하면 시인은 참여정부의 계승과 외세의 개입 없는 통일을 바라고 있다. 시인이 지나온 반세기의 역사가 그 어느 때보다 굴곡이 심했던 험난한 시대였으며 누구보다 투철한 민족애의 정신으로 무장되어 있었기에 이러한 목소리를 내는 것은 너무나 자명한 일이라 하겠다. 한편, 분단된 조국은 시인의 생애에 있어서 가장 커다란 상실감이 되었을 것이다. 자아와 세계와의 합일이 시가 추구하는 목표라 한다면 시인이 투사요 민중 운동가로써의 숙명적 생애를 살게 된 것은 이러한 상실감이 커다란 요인으로 자리 잡았음 직 하다. 그 근저에는 귀소본능이라는 본질적 원인도 함께 자리하고 있을 것이다.




이제 세계는 냉전시대의 종식을 맞아 베트남과 독일이 통합되었으며 예멘 역시 가시적으로는 한 국가가되었다. 이전의 분단 국가였던 그들은 각각 어떠한 방법으로 통일을 이루어냈는지 참고삼아 드려다 본다. 베트남은 프랑스 점령에서 해방되자(1956년) 우리와 마찬가지로 남북으로 분리되었다. 공산당베트남,자유 민주베트남 정권이 수립되었는데 미국은 인도차이나 반도에 연쇄적인 공산화(도마논이론: 한국가가 공산화 되면 인접국도 연쇄적으로 공산화 된다는 논리)를 억지시키기 위하여 1964년 베트남 통킹 만 사건을 기점으로 미군의 본격적인 개입을 통해 베트남 전쟁이 일어났지만 1975년 미국의 완패로 베트남에서 철수하고 공산 베트남(베트콩)에 의한 자력으로 통일한 경우이다. 그들은 베트남 전쟁을 민족 통일 전쟁이라 한다. 두 번 째 예맨 통일을 보기로 하자. 19세기 말 영국과 터키에 의해 남북으로 분리된 예멘은 북은 1962년 민주아랍예멘으로 남은 1967년 사회주의 인민공화국으로 남북예멘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1989년 사회 통합을 이루었다가 실패한 후 전쟁을 일으켰다가 북예멘이 승리하여 재통일을 하였다. 예맨의 경우 현실적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일방적 정치 사회 군대를 통합하였으나 민족정서 계층과 지역갈등 등 불안전한 통합으로 기계적 인위적으로 남북 간 동등하게 군대 행정기구를 분배하여 집권하여 경제 개발에 힘쓰고 있으나 현재까지 통일 후유증으로 지역계층 간 갈등과 경제적 빈곤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독일통일을 보기로 하자. 2차 대전 후 강대국에 의해 인위적으로 분리 된 독일은 냉전종식에 의한 자유화 물결에 힘입어 동서독의 통일을 가져오게 되었다. 한국의 상황과 분리된 원인은 유사하지만 한국은 남북 전쟁이란 동족상잔의 전쟁을 치루는 등, 독일경우와는 대조적이다 우리가 독일식 통일은 어려운 이유가 바로 동족 간 전쟁으로 인해 많은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보여진다. 독일은 외부에 의해 분리되었지만 통일 또한 자주적으로 통일한바있어 그저력과 통일에 따른 후유증을 슬기롭게 처리 해결 해나가고 있다.




사실,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인 조국의 통일이 얼마만큼 근접해 있는지 나로서는 알 길이 없다. 민족의 통일이 우선인지, 남한이 처해 있는 사회 현실이 더 중요한지에 대해서도 일반적인 관심을 가졌을 뿐, 내일처럼 관심을 가졌던 적이 별로 없다. 한 사람의 시인으로서 시의 효능과 효용 면에 대해서 예술로서의 한 역할을 감당하는데 더 관심을 가져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시인의 시집을 받아들고 다시 한 번 생각해본다. 이 땅의 시인들이라면 마땅히 부르짖어야 할 이 땅의 역사와 민족의 아픔에 대해 이렇게 당당하게 노래했던 시인이 얼마나 될까. 통일이라는 대명제 앞에 불굴의 의지를 갖고 꾸준한 목소리로 한결같이 노래했던 시인은 또 얼마나 있을까. 돌아보니, 참으로 드문 것 같다. 그렇다. 민족과 통일이라는 대의 아래 절정에 선 시인이 아니고서는 감히 흉내 낼 수 없는 일인 것이다. 절정에 선 시인만이 할 수 있는것이다. 때문에 시인은 그 존재감만으로도 중요한 의미를 던져준다. 그렇게 생각하고 보니 시인은 삶에 있어서도 시에 있어서도 절정에 서 있는 분이시다. 그렇기에 시인은 통일을 향한 불굴의 의지로 민중의 선봉장으로서시들지 않는 불꽃의 삶을 살고 있는지 모른다. 다음 시를 보도록 하자.




어마어마한 불덩어리가 식기 까지

수십 억 년의 세월 층을 까마득 쌓아올린

어느 날 한 순간

생명탄생의 환희롭고 다채로운 징조가

모락모락 일기 시작했다

지구 생명체 탄생의 첫 새벽이 열렸다.




한 지어미와 지아비가

먹을 수 없는 본능의 욕구와

생명의 탄생을 위해

환희와 격정과 신비의 뜨거운 과정은 아름다워

드디어 고고의 소리가 터졌다




예술혼은 벅차오르는 가슴을 진정하며, 달래며

예술 삼매경에 잠졌다가

못 참아 붓을 들어 일필휘지

첫 점 첫 터치를 갈겨 댔다

무아의 경지 식음도 마다하고

붓끝은 분망했다

무시무시 험상궂던 지구의 낮짝은

밝아지고 부드러워져 온기가 돌기 시작햇다




해맑은 혼합 빛깔의 축제를 펼치며

감돌고 굽이돌고 사방으로 위 아래로

흥에 겨워 탄성을 지르며

지구의 얼굴을 수놓았다

첫 숨소리가 어드메쯤서 들려오려나

우지직 새 순 돋는 소리

시냇물 소리 들려 올 듯

지저귀는 새 소리 조잘댈 듯

생명의 첫 모습이 삼삼히 풍겨 왔다

인간세상의 모습도 실루엣처럼 화끈거렸다

생명 탄생의 아련한 모습은

대채롭고 신비로운 색깔 경연으로 일깨워 주었다




화가요 시인인 유명선 님은

귀중한 역작 <시원>을 나에게 선물로 주셨다

나는 몸 둘 바를 몰랐다

황홀의 절정에서 빛을 쏘아

걸작 <시원>에 영원히 입 맞추리

-<지구와 인간 생명의 탄생>

-유명선 님의 걸작<시원>에 부쳐- 전문







민족의 비애가 도도한 강물처럼 시인의 옷자락을 적시지 않았다면 어쩌면 시인은 진정한 예술가로서의 아름다운 시의 낙원을 꿈꾸었는지 모른다. 험한 역사의 격랑에 밀려 <이육사>처럼 광야에선 시인의 파란만장한 삶의 뒤안길을 알지못하지만 이 시는 투쟁가요 투사이기 이전에 한 예술가로서 시원을 그리는 시인의 모습이 각인된, 그렇기 때문에 더욱 가슴에 와 닿는 시다. 시인은 인생의 최고 찬사인 망백을 넘어선지 오래다. 백세까지 아니 통일된 조국을 볼 때까지 아무쪼록 건강하셔서 한 맺힌 생애가 활짝 피어나시기를 기원하면서 이 글을 맺기로 한다.



2009,창작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