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과 모성, 그 사랑의 생명나무
-김남조 시선집 <오늘 그리고 내일의 노래> 를 읽고/강영은
1,
김남조 시인이 시선집 <오늘 그리고 내일의 노래>을 상재했다. 6백여년 전 우리나라에서 처음 만든 금속활자처럼 체온으로 덥히는 수작업 공법을 통하여 어렵게 나온 활판 공법의 한정판 특제본 시선집이다. 그동안 상재했던 1000편 가까이 되는 시편 중, 주옥같은 작품들을 골라 수록한 시선집이어서일까. 神의 발목에 부어지는 <나아드의 향기>처럼 은은한 광채를 발하는 무명천의 표지 한 가운데 혈점처럼 찍힌 붉은 낙관이 시선을 잡아끈다. "역력히 이 나무를 닮고/ 역력히 이 마음을 닮은/ 한낱 내 사랑의 표지입니다/붉은 날인과 같은 회상입니다/<雪木>중 부분 시인의 시 구절처럼 붉은 날인과 같은 회상이 속속들이 스며있는 시선집임에 틀림없을 것 같다.
익히 알려진 대로 시인은 1920년대의 김명순, 김일엽, 나혜석 등의 여류문학에 이어 1930년대의 노천명을 지나 1950년대의 황폐한 이데올로기와 고난 속에서 영원한 생명의 활력소인 사랑을 노래하며 대지의 여신처럼 불모의 여성시를 일구어낸 분이다. 이처럼 빛나는 시인의 행보를 더듬는 건 절차탁마의 보석을 캐는 일처럼 귀한 기회임에 틀림없지만 망설임이 앞장섰다. 戰後, 생명의식의 생존적 계기에서 출발하여 참다운 사랑과 구원의 세계를 보여주기까지 한국 여성시의 지난한 세대를 선각적 입장에서 두루 아울러온 시인의 존명에 누를 끼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시단을 넘어서 대중에게까지 널리 알려진 시인의 영토를 천착한다는 건 위편삼절(韋篇三絶 )의 고행일 것 같은 두려움도 한 몫 했다. 하지만 "시는 최상의 마음의 가장 훌륭하고 행복한 순간의 기록이다. 하나의 시란 그것이 영원한 진리로 표현된 인생의 의미이다" 고 말한 P. B.셸리의 말처럼 그 언어의 광맥에서 캐어낼 진리의 정수는 얼마나 오묘할지 시인의 혈점처럼 찍힌 붉은 낙관에 기대어 뜨겁게 용기를 내기로 했다.
시인의 시적 성과에 대해서는 많은 평자들이 숱하게 거론되어 왔던지라 부족한 필력으로 재 거론하는 것은 온당치 못하다고 생각되어 생략하려고 한다. 다만, 이 땅이 용납지 않았던 사회적 계층인 여성이자 어머니로서의 시인의 삶이 범용치 않은 그 경계선을 넘어 어떻게 시세계와 접목되어 왔는지 더듬을수록 커다랗기만한 족적을 조심스럽게 밟아볼 생각이다.
2, 모성이라는 사랑의 발원지
표지를 열면 시인이 육필로 쓴 구절 "하늘에 올림을 그대 함께, 하늘이 베푸심을 또한 그대 함께 이는 내 기도임을"이라는 구절이 제일 먼저 마중 나온다. “오늘 그리고 내일”에도 울려 퍼질 시인의 노래를 집약한 구절이라 느껴진다. 단아하고 고졸한 품격으로 씌어져 있는 시인의 말인 책머리를 지나 차례에 이르면 초기시, 중기시, 후기시, 신앙시, 환경시라는 표제 아래 공정하게 20여 편의 시들이 수록되어 있음을 볼 수 있는데 시인의 시적 생애가 일목요연하고 정갈하게 담겨있는 듯했다.
서시의 자리에 1953년 첫 시집《목숨》의 표제 시<목숨>이 담겨있다. 첫 산고를 치루어 낸 시집의 소중한 자리매김이라 여겨진다.
아직 목숨을 목숨이라고 할 수 있는 가/ 꼭 눈을 뽑힌 것처럼 불쌍한/사람과 가축과 신작로와 정든 장독까지//누구 가랑잎 아닌 사람이 없고/ 누구 살고 싶지 않은 사람이 없고/ 불붙은 서울에서/ 금방 오므려 연꽃처럼 죽어갈 지구를 붙잡고/ 살면서 배운 가장 욕심 없는/ 기도를 올렸습니다.-후략 -
<목숨>부분
전쟁의 비극적 상황에서 느낀 절박한 위기의식을 형상화한 작품인 <목숨>은 '아직 목숨을 목숨이라고 할 수 있는가.'와 같이 신뢰할 수 없는 인간 존재의 허망성에 대한 질문으로 시작된 목숨의 비속함을 산, 가축, 장독 등의 이미지를 통해 그리고 있다. 절박한 상황에서 인간이 취할 수 있는 반응은 '가장 욕심 없는 기도'를 올리는 방법뿐이라고 하여 종교적인 갈망 속에 인생의 욕망과 고뇌를 여과시킴으로써 전후 서정의 한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초기시들에 대해 평자들은 6·25전쟁 이후의 파괴와 참혹한 정신의 분열, 불안 그리고 방황 속에서 끈질긴 생명의식을 노래하여 자력구원의 의미망을 확충시키려 노력했다고 귀결 지은 바 있다. 이 생명의식이야말로 시인의 평생을 관통해 온 화두, 사랑의 발원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생명의식이 발아되는 초기 시편들은 격렬하다기보다 푸른 생명이 너울거리는 암유를 바탕으로 풋풋하고 서정성이 풍부한 작품들로 주류를 이루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지구라는 것, 인간이 바라는 모든 지혜가 미워 /축축한 산마루에/ 너 한 칸 이끼 낀 동굴이라면/ 나야 얼마나 한 마리의 어린 곰으로/ 살고 싶을까 <남은 말> 부분
사랑은 인생의 별/고독한 영혼의 창문에서 보는 거란다/ 사랑은 인생의 통곡/ 고독한 영혼의 창변에서 우는 거란다-<얼굴>부분-
창호지 한 장 너머/ 누가 오고 누가 가건/ 우리 아가 옆자리는/ 엄마의 낙원-<아가와 엄마의 낮잠>부분-
눈물이 많은 어머니로 말하면/ 눈물은 모성의 샘입니다/ 기다림에 사는 어머니로 말하면/ 시간 속에 모성은 섬입니다-<모성>부분-
첫 번 째 시집<목숨>에서 4번 째 시집<정염의 기>까지를 초기시로 분류하고 있는데 이 시기를 연령적으로 보면 20대 말에서 30대 중초반인 시기로써 시인이 결혼을 하고 자녀를 기르는 시기라 할 수 있다. 촉수와도 같은 감성이 모성과 결부되어 아름답게 빛나는 작품을 초기시에서 찾아 볼 수 있는데 작품 <아가에게> <아가와 엄마의 낮잠><모성>이 그것이다. 대학 강의를 하면서 육아까지 겸하느라 한 참 바빴을 당대의 모습이 현실감 있게 다가오는 작품들을 읽으며 사랑으로 충만한 젊은 엄마의 모습이 새로운 감동으로 다가온다. '사랑의 시학'으로 표상되는 시세계의 근저에는 모성이라는 절대명제가 또 다른 발원지를 이루고 있음을 확인해 본다. 생명을 잉태하고 출산의 고통과 양육을 책임지는 모성이야말로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사랑의 절대적 근원지가 아닐까. 시인을 길러온 또 하나의 모성을 (1997년<시인세계>가을 호)에서 확인해본다.
"어머니는 유언을 남기셨다. 한 젊은 신부에게 당부하여 그 신부가 죽는 날까지 날마다 기도 중에 당신의 딸을 위해 몇 가지의 축원을 보태어 줄 약속을 받으셨다. 장례식 얼마 후에 안 일이지만 어머니는 짧게 다듬은 기도 구절을 아예 만들어서 내주셨으며 수중에 있던 돈의 잔액을 미사예물로 바치셨다. 천주교회의 한 사제와 죽은 이와의 서약은 영원히 신성할 수밖에 없고 오늘에 이르도록 어김없이 지켜오고 있으며 이 일은 공표와도 같은 숙연함을 언제나 일깨워 준다"
어머니가 되었든 어머니를 그리워했든, 모성에서 발원된 사랑은 종교적 사랑과 결합되어 커다란 카테고리 속에서 인간성에 대한 확신과 생명력을 통한 정열로 구현된 것으로 보여진다. 초기시편의 맨 마지막에 수록된 시는 시인의 4번 째 시집의 표제시로서 시인은 이 시를 통해 그리움과 목마름이라는 한 폭의 기를 내걸기 시작한다.
내 마음은 한 폭의 기/보는 이 없는 시공에/없는 것 모양 걸려왔더니라//스스로의/혼란과 열기를 이기지 못해/눈 오는 네거리에 나서면//눈길 위에/연기처럼 덮여오는 편안한 그늘이여/마음의 기는/눈의 음악이나 듣고 있는 가//나에게 원이 있다면/뉘우침 없는 일몰이/고요히 꽃잎인 양 쌓여가는/그 일이란다//황제의 항서(降書)와도 같은 무거운 비애가/맑게 가라앉은/하얀 모래펄 같은 마음씨의/벗은 없을까/내 마음은/한 폭의 기/보는 이 없는 시공에서
때로 울고/때로 기도드린다 <정념의 기(旗)>전문
깃발이라는 구체적 사물에 마음을 비유하여 모든 욕망과 번뇌, 갈등을 극복하며 그와 같은 임을 소유하고 싶어하는 소망을 가시적으로 형상화한 이 시는 수능시험의 텍스트로 자주 활용되기도 했다.
3, 정갈한 시어와 심연에서 건져올린 커다란 울림
교과서처럼 아니, 참고서처럼 품에 안고 다녔던 시편들이 시선집의 중기시에 들어 있다 그리움과 목마름의 접면에서 꽃잎 날리듯 편편이 눈물겨워진다. 예문으로 든 두 편의 시는 더 이상의 소개가 필요 없을 만치 유명한 시이리라.
그대만큼 사랑스러운 사람을 본 일이 없다
그대만큼 나를 외롭게 한 이도 없었다
이 생각을 하면 내가 꼭 울게 된다
그대만큼 나를 정직하게 해준 이가 없었다
내 안을 비추는 그대는 제일로 영롱한 거울
그대의 깊이를 다 지나가면
글썽이는 눈매의 내가 있다
나의 시작이다
그대에게 매일 편지를 쓴다
한 구절 쓰면 한 구절을 와서 읽는 그대
그래서 이 편지는
한 번도 부치지 않는다
<편지>전문
나의 밤 기도는/길고/한 가지 말만 되풀이 한다//가만히 눈뜨는 건/믿을 수 없을 만치의 /축원,/갓 피어난 빛으로만/속속들이 채워 넘친 환한 영혼의/내 사랑아//쓸쓸이 검은 머리 풀고 누워도/이적지 못 가져 본 너그러운 사랑/너를 위하여 나 살거니/소중한 건 무엇이나/너에게 주마/이미 준 것은/잊어버리고/못다 준 사랑만을 기억하리라/나의 사랑아/ 눈이 네리는/ 먼 하늘에/ 달무리 보듯 너를 본다/ 오직 너를 위하여/ 모든 것에 이름이 있고/기쁨이 있단다/ 나의 사람아 <너를 위하여>전문
30년대에 접어들면서 시인의 시는 낭만적인 의식으로 정감이 앞선 초기시의 특징 위에 구조적 탄력감이 곁들여져 한층 심화된 시적 양상을 띠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시인의 시어들이 발하는 광휘는 보석처럼 정갈한 시어와 심연에서 건져낸 감성으로 커다란 울림을 자아낸다. 일찌기 시인은 시의 질료가 되는 언어에 대해 “시인이 원하는 첫 번째 언어는 정직하고 투명한 언어, 고통을 함께 느끼는 아픔의 언어, 상처에 기름 바르는 치유의 언어, 누구도 타인이 아니라는 확신을 널리 퍼뜨릴 수 있는 우정과 신뢰의 언어, 한 번뿐인 사랑을 몹시도 좋아하게 만들 사랑과 은총의 언어”라고 밝힌바 있다. 위에 쓴 예의 작품에서 보듯 섬세한 결을 지닌 시인의 시어들은 우연히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화룡첨정의 자리를 점하고자 하는 간곡한 시정신의 발로이며 언어의 정수를 뽑기 위해 한시도 긴장을 놓지 않고 절치부심해온 대가의 모습임을 알 수 있다
4, 神 의 영원한 막달라 마리아
이러한 시인의 시적 성과에 대해 허영자는 "주제는 사랑이며, 그 내용은 기도의 정신이다" 라고 하였으며 정영자는 "사랑과 생명의 시인"으로, 오세영은 "영과 육의 갈등이 빚어낸 정신적 부하물"로, 김재홍은 "사랑과 구원, 또는 사랑과 기도의 시"라고 요약하였으며, 김종해는 "사랑의 절대적 가치부여에 김남조 시의 근원적인 맥락이 있다"고 보고 있다. 시인의 시를 사랑의 시라고 규정하는 것은 이제 명약관화한 사실로 받아들여진다. 이러한 바탕에는 성속의 세계를 지향하는 시인의 종교관이 존재한다. 신성, 즉 아카페적인 사랑은 인간에게 성속의 삶을 요구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인간의 몸은 그 원죄성으로 인하여 체질적이고 운명적으로 세속의 삶을 영위할 수밖에 없다. 신과 화해를 도모하는 방법은 참회와 기도를 통해서만이 가능해진 것이다. 구원을 향해 노래하는 시인의 사랑은 아가페처럼 완전한 사랑을 갈구하는 양상을 지닌다. 값비싼 나아드 향유로 예수님의 발을 씻은 막달라 마리아처럼 시인은 종교적 도그마의 세계를 넘어 자신의 영혼과 세계의 구원을 향해 번제물을 드리게 된다. 그것은 즉, 시인 자신이 막달라 마리아가 되는 것이다,
가시나무의 가시 많은 가지를/ 머리 둘레 크기로 둥글게 말아/ 하느님의 머리에/사람의 두 손으로 씌워드린/가시 면류관/너희가 준 것은 무엇이든 거절치 않노라고/이천년 오늘가지 하느님께선/그 관을 쓰고 계신다 <면류관>전문
나 기도 드릴 때면/주의 몸 그림자 안에/ 일렁이는 빛살 무늬로 돋아나는/한 여인을 본다-중략-당할 수 없어/ 죄와 통회와 큰 울음인 여자/ 전령이 불에 탄 상처자국인/ 막달라 마리아만은/ 도저히 어절 수 없어/ 기죽어 엎뎌 있는 나여/ 죄와 통회와 나의 큰 울음은/ 어느 하늘 끝에 뉘일 것인가 <막달아 마리아 3> 부분
당신에게선 손 씻는 소리 못 박는 소리/아슴히 들립니다/사랑하는 분이/ 앞에서 못 박혀 죽으신 후/당신 몸은 못 박는 소리와 그 메아리들의/소리를 사랑합니다//세상에서 가장 강한 건/고통입니다/고통의 반복 앞에 서는/울연한 공포입니다/그래도 사랑하는, 사랑입니다<막달라 마리아 4>부분
여기서 시인의 시에 등장하는 막달라 마리아가 누구인지 잠깐 살펴보기로 하자. 마리아 막달레나라고도 부르는 이 여인은 성서에 의하면 일곱 마귀에 시달리다가 예수에 의해 고침받고 열렬한 추종자가 되었다(루가 8:2). 갈보리에서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의 죽음을 지켜보고(마태 27:56), 향료를 가지고 무덤을 찾아와(루가 23:55), 요한 및 야곱의 어머니 마리아와 함께 부활한 예수를 만났다(루가 24:1∼10). 또한 가파르나움 거리에서 세 번이나 그리스도의 발에 향유를 바르고 죄를 회개한 여자(루가 7:37∼50)와 동일시되는 여성이다. 마리아 막달레나는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모두 지켜 본 증인인 동시에, ‘참회의 성녀’로서 복음서에 총 13차례 등장할 정도로 성서 속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과 지위를 점하고 있는 여성이다. 막달라 마리아를 시의 소재로서 차용하게 된데 대해 시인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막달라 마리아, 그녀는 죄와 통회의 성녀이며 애환의 두 극점이 그녀에게 함께 있었다. 그의 영혼의 내포는 거대하며 그 거대함의 용량 전부로써 번뇌하고 사랑하고 헌신하면서 높이높이 동반하여 인류사의 최고인 분의 전령(全靈)을 남김없이 포옹해 드리게 되었다고 나는 그리 믿어온다. 여기에 완미한 정점과 완미한 심연이 모두 있기에 내 허약한 문학혼의 아득한 지향을 이곳에 두고자 했다. 사람에겐, 특히 시인에겐 별다른 굶주림의 자각이 있다. 옛날 미국 대륙에서 가축들의 소유권 표시로 불에 달군 강철의 화인(火印)을 살결에 눌러두듯이 시인이고자 하는 사람에게 신이 행하시는 입문의 법칙이 이 일일지도 모르는 것이었다. 나에게도 그 일 인분의 분배가 주어졌다. 그런데 어떤 대책이 가능했을까? 결국 나는 작은 울음이 큰 울음 앞에서 눈물을 그치는 이치로 더 치열한 배고픔과 이것조차를 능가하는 거대한 사랑… 뭔가 이러한 모범을 찾아 막달라 마리아의 영토 그 기슭에 기항했는지도 몰랐다.”(<시와 시학> 1997, 가을)
인간이 신을 향하여 구원을 바랄 수밖에 없는 것은 막달라 마리아처럼 세속과 성속의 두 극점을 동시에 지닌 인간의 본질적인 아이러니에 있다. 그 간극을 해소하고자 시인이 바라는 구원의 방식은 사랑이며 구체적인 양태는 기도와 참회의 형식으로 나타난다. 신앙시의 내포와 외연은 이러한 공식 아래 또 하나의 찬란한 금자탑을 세운 것이라 할 수 있다.
사랑한 일만 빼고/ 나머지 모든 일이 내 잘못이라고/ 진작에 고백했으니. 이대로 판결해다오// 그 사랑 나를 떠났으니/ 사랑에게도 분명 잘못하였음이라고/ 준결히 판결해다오.<참회 >부분
5, 에필로그
팔순을 넘으셨음에도 인간적 고뇌와 휴머니즘을 깊은 신앙 체험을 통해 성스러움의 차원으로 승화시킨 시정신은 여전히 치열하다. “평안을 위하여” 라는 부제를 단 후기시편 속에서는 한층 웅숭깊어진 울림을 낸다. 재작년에 출간된 16번째의 시집의 발문에서 고은 시인은 “이 필생불변의 시인에게서는 사랑은 그냥 사랑 타령이 아니다. 그것은 고행이고 연단의 다른 이름”이라 썼다.
나는 시인 아니다/ 시를 구걸하는 사람이다/ 이 고백 진심 이었다// 백기 들고/ 항복이라고 굴복한 일/ 여러 번이었다// 삼수갑산 돌며/ 실컷 놀다온 너에게/타지에 나돈 건 오히려 나라고/ 사죄하고 참회하는/ 상습 참패자였다// 마침내 짝사랑의 명수 되고 너의 부재를 견디는 공부에도/ 도통할 즈음// 시여/ 살풋이 네 모습 보이니/ 내 가슴 뛰고/ 황홀하여/ 다시금 손 내미는구나-<나의 시에게 4>전문-
시선집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환경시 20편 역시 교과서에 수록된 <겨울바다>를 비롯하여 <나무들>같은 명시들로 채워져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시작활동이 60년에 이르는 동안 한 치도 흐트러짐 없이 지속될 수 있었던 것은 무엇일까. “시 자체의 무게와 긴장과 거미줄같이 퍼져 있는 모세 혈관에 가닥가닥 퍼져 감도는 섬세하고 아픈 감수성 때문에, 또한 한 번씩 지구의 밑바닥까지 내려가 엎드리는 아득한 침잠의 그 어둠 때문에 신이 창조하신 미와 영원성에 대하여도 그 예찬(禮讚)을 끝내는 일이 결코 없을” 것이라고 말한 시인의 염결한 정신에 있는 것인지 모른다.
겨울 바다에 가 보았지
미지(未知)의 새
보고 싶던 새들은 죽고 없었네
그대 생각을 했건만도
매운 해풍에
그 진실마저 눈물져 얼어버리고
허무의 불 물이랑 위에
불붙어 있었네
나를 가르치는 건
언제나 시간
끄덕이며 끄덕이며 겨울 바다에 섰었네
남은 날은 적지만
기도를 끝낸 다음 더욱 뜨거운
기도의 문이 열리는
그런 영혼을 갖게 하소서
겨울 바다에 가 보았지
인고(忍苦)의 물이
수심(水深) 속에 기둥을 이루고 있었네
-<겨울바다>전문
지상에 존재하는 가장 아름다운 이름은 어머니이며, 우주가 존재하는 한 영원 미답의 존재는 신일 것이다. 원시시대부터 최대 불가사의로 회자되는 사랑은 인간이 존재하는 한 지속될 수밖에 없는 명제로써 그것은 영원히 소멸되지 않는 생명나무로 타오를 것이다. 그러고 보면 시인은 지상에 현존하는 삶 속에서 가장 본질적이고 절대불변의 명제를 탐구해 온 셈이다. 신성과 모성의 아우라 속에서 사랑을 노래했으며 시들지 않는 생명나무로 우뚝 서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시인의 시는 ‘오늘 그리고 내일’도 여전히 불려질 <오늘 그리고 내일의 노래>인 것이다.
2009, 문학과 창작 여름호
모성, 그 사랑의 생명나무
-김남조 시선집 <오늘 그리고 내일의 노래> 를 읽고/강영은
1,
김남조 시인이 시선집 <오늘 그리고 내일의 노래>을 상재했다. 6백여년 전 우리나라에서 처음 만든 금속활자처럼 체온으로 덥히는 수작업 공법을 통하여 어렵게 나온 활판 공법의 한정판 특제본 시선집이다. 그동안 상재했던 1000편 가까이 되는 시편 중, 주옥같은 작품들을 골라 수록한 시선집이어서일까. 神의 발목에 부어지는 <나아드의 향기>처럼 은은한 광채를 발하는 무명천의 표지 한 가운데 혈점처럼 찍힌 붉은 낙관이 시선을 잡아끈다. "역력히 이 나무를 닮고/ 역력히 이 마음을 닮은/ 한낱 내 사랑의 표지입니다/붉은 날인과 같은 회상입니다/<雪木>중 부분 시인의 시 구절처럼 붉은 날인과 같은 회상이 속속들이 스며있는 시선집임에 틀림없을 것 같다.
익히 알려진 대로 시인은 1920년대의 김명순, 김일엽, 나혜석 등의 여류문학에 이어 1930년대의 노천명을 지나 1950년대의 황폐한 이데올로기와 고난 속에서 영원한 생명의 활력소인 사랑을 노래하며 대지의 여신처럼 불모의 여성시를 일구어낸 분이다. 이처럼 빛나는 시인의 행보를 더듬는 건 절차탁마의 보석을 캐는 일처럼 귀한 기회임에 틀림없지만 망설임이 앞장섰다. 戰後, 생명의식의 생존적 계기에서 출발하여 참다운 사랑과 구원의 세계를 보여주기까지 한국 여성시의 지난한 세대를 선각적 입장에서 두루 아울러온 시인의 존명에 누를 끼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시단을 넘어서 대중에게까지 널리 알려진 시인의 영토를 천착한다는 건 위편삼절(韋篇三絶 )의 고행일 것 같은 두려움도 한 몫 했다. 하지만 "시는 최상의 마음의 가장 훌륭하고 행복한 순간의 기록이다. 하나의 시란 그것이 영원한 진리로 표현된 인생의 의미이다" 고 말한 P. B.셸리의 말처럼 그 언어의 광맥에서 캐어낼 진리의 정수는 얼마나 오묘할지 시인의 혈점처럼 찍힌 붉은 낙관에 기대어 뜨겁게 용기를 내기로 했다.
시인의 시적 성과에 대해서는 많은 평자들이 숱하게 거론되어 왔던지라 부족한 필력으로 재 거론하는 것은 온당치 못하다고 생각되어 생략하려고 한다. 다만, 이 땅이 용납지 않았던 사회적 계층인 여성이자 어머니로서의 시인의 삶이 범용치 않은 그 경계선을 넘어 어떻게 시세계와 접목되어 왔는지 더듬을수록 커다랗기만한 족적을 조심스럽게 밟아볼 생각이다.
2, 모성이라는 사랑의 발원지
표지를 열면 시인이 육필로 쓴 구절 "하늘에 올림을 그대 함께, 하늘이 베푸심을 또한 그대 함께 이는 내 기도임을"이라는 구절이 제일 먼저 마중 나온다. “오늘 그리고 내일”에도 울려 퍼질 시인의 노래를 집약한 구절이라 느껴진다. 단아하고 고졸한 품격으로 씌어져 있는 시인의 말인 책머리를 지나 차례에 이르면 초기시, 중기시, 후기시, 신앙시, 환경시라는 표제 아래 공정하게 20여 편의 시들이 수록되어 있음을 볼 수 있는데 시인의 시적 생애가 일목요연하고 정갈하게 담겨있는 듯했다.
서시의 자리에 1953년 첫 시집《목숨》의 표제 시<목숨>이 담겨있다. 첫 산고를 치루어 낸 시집의 소중한 자리매김이라 여겨진다.
아직 목숨을 목숨이라고 할 수 있는 가/ 꼭 눈을 뽑힌 것처럼 불쌍한/사람과 가축과 신작로와 정든 장독까지//누구 가랑잎 아닌 사람이 없고/ 누구 살고 싶지 않은 사람이 없고/ 불붙은 서울에서/ 금방 오므려 연꽃처럼 죽어갈 지구를 붙잡고/ 살면서 배운 가장 욕심 없는/ 기도를 올렸습니다.-후략 -
<목숨>부분
전쟁의 비극적 상황에서 느낀 절박한 위기의식을 형상화한 작품인 <목숨>은 '아직 목숨을 목숨이라고 할 수 있는가.'와 같이 신뢰할 수 없는 인간 존재의 허망성에 대한 질문으로 시작된 목숨의 비속함을 산, 가축, 장독 등의 이미지를 통해 그리고 있다. 절박한 상황에서 인간이 취할 수 있는 반응은 '가장 욕심 없는 기도'를 올리는 방법뿐이라고 하여 종교적인 갈망 속에 인생의 욕망과 고뇌를 여과시킴으로써 전후 서정의 한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초기시들에 대해 평자들은 6·25전쟁 이후의 파괴와 참혹한 정신의 분열, 불안 그리고 방황 속에서 끈질긴 생명의식을 노래하여 자력구원의 의미망을 확충시키려 노력했다고 귀결 지은 바 있다. 이 생명의식이야말로 시인의 평생을 관통해 온 화두, 사랑의 발원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생명의식이 발아되는 초기 시편들은 격렬하다기보다 푸른 생명이 너울거리는 암유를 바탕으로 풋풋하고 서정성이 풍부한 작품들로 주류를 이루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지구라는 것, 인간이 바라는 모든 지혜가 미워 /축축한 산마루에/ 너 한 칸 이끼 낀 동굴이라면/ 나야 얼마나 한 마리의 어린 곰으로/ 살고 싶을까 <남은 말> 부분
사랑은 인생의 별/고독한 영혼의 창문에서 보는 거란다/ 사랑은 인생의 통곡/ 고독한 영혼의 창변에서 우는 거란다-<얼굴>부분-
창호지 한 장 너머/ 누가 오고 누가 가건/ 우리 아가 옆자리는/ 엄마의 낙원-<아가와 엄마의 낮잠>부분-
눈물이 많은 어머니로 말하면/ 눈물은 모성의 샘입니다/ 기다림에 사는 어머니로 말하면/ 시간 속에 모성은 섬입니다-<모성>부분-
첫 번 째 시집<목숨>에서 4번 째 시집<정염의 기>까지를 초기시로 분류하고 있는데 이 시기를 연령적으로 보면 20대 말에서 30대 중초반인 시기로써 시인이 결혼을 하고 자녀를 기르는 시기라 할 수 있다. 촉수와도 같은 감성이 모성과 결부되어 아름답게 빛나는 작품을 초기시에서 찾아 볼 수 있는데 작품 <아가에게> <아가와 엄마의 낮잠><모성>이 그것이다. 대학 강의를 하면서 육아까지 겸하느라 한 참 바빴을 당대의 모습이 현실감 있게 다가오는 작품들을 읽으며 사랑으로 충만한 젊은 엄마의 모습이 새로운 감동으로 다가온다. '사랑의 시학'으로 표상되는 시세계의 근저에는 모성이라는 절대명제가 또 다른 발원지를 이루고 있음을 확인해 본다. 생명을 잉태하고 출산의 고통과 양육을 책임지는 모성이야말로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사랑의 절대적 근원지가 아닐까. 시인을 길러온 또 하나의 모성을 (1997년<시인세계>가을 호)에서 확인해본다.
"어머니는 유언을 남기셨다. 한 젊은 신부에게 당부하여 그 신부가 죽는 날까지 날마다 기도 중에 당신의 딸을 위해 몇 가지의 축원을 보태어 줄 약속을 받으셨다. 장례식 얼마 후에 안 일이지만 어머니는 짧게 다듬은 기도 구절을 아예 만들어서 내주셨으며 수중에 있던 돈의 잔액을 미사예물로 바치셨다. 천주교회의 한 사제와 죽은 이와의 서약은 영원히 신성할 수밖에 없고 오늘에 이르도록 어김없이 지켜오고 있으며 이 일은 공표와도 같은 숙연함을 언제나 일깨워 준다"
어머니가 되었든 어머니를 그리워했든, 모성에서 발원된 사랑은 종교적 사랑과 결합되어 커다란 카테고리 속에서 인간성에 대한 확신과 생명력을 통한 정열로 구현된 것으로 보여진다. 초기시편의 맨 마지막에 수록된 시는 시인의 4번 째 시집의 표제시로서 시인은 이 시를 통해 그리움과 목마름이라는 한 폭의 기를 내걸기 시작한다.
내 마음은 한 폭의 기/보는 이 없는 시공에/없는 것 모양 걸려왔더니라//스스로의/혼란과 열기를 이기지 못해/눈 오는 네거리에 나서면//눈길 위에/연기처럼 덮여오는 편안한 그늘이여/마음의 기는/눈의 음악이나 듣고 있는 가//나에게 원이 있다면/뉘우침 없는 일몰이/고요히 꽃잎인 양 쌓여가는/그 일이란다//황제의 항서(降書)와도 같은 무거운 비애가/맑게 가라앉은/하얀 모래펄 같은 마음씨의/벗은 없을까/내 마음은/한 폭의 기/보는 이 없는 시공에서
때로 울고/때로 기도드린다 <정념의 기(旗)>전문
깃발이라는 구체적 사물에 마음을 비유하여 모든 욕망과 번뇌, 갈등을 극복하며 그와 같은 임을 소유하고 싶어하는 소망을 가시적으로 형상화한 이 시는 수능시험의 텍스트로 자주 활용되기도 했다.
3, 정갈한 시어와 심연에서 건져올린 커다란 울림
교과서처럼 아니, 참고서처럼 품에 안고 다녔던 시편들이 시선집의 중기시에 들어 있다 그리움과 목마름의 접면에서 꽃잎 날리듯 편편이 눈물겨워진다. 예문으로 든 두 편의 시는 더 이상의 소개가 필요 없을 만치 유명한 시이리라.
그대만큼 사랑스러운 사람을 본 일이 없다
그대만큼 나를 외롭게 한 이도 없었다
이 생각을 하면 내가 꼭 울게 된다
그대만큼 나를 정직하게 해준 이가 없었다
내 안을 비추는 그대는 제일로 영롱한 거울
그대의 깊이를 다 지나가면
글썽이는 눈매의 내가 있다
나의 시작이다
그대에게 매일 편지를 쓴다
한 구절 쓰면 한 구절을 와서 읽는 그대
그래서 이 편지는
한 번도 부치지 않는다
<편지>전문
나의 밤 기도는/길고/한 가지 말만 되풀이 한다//가만히 눈뜨는 건/믿을 수 없을 만치의 /축원,/갓 피어난 빛으로만/속속들이 채워 넘친 환한 영혼의/내 사랑아//쓸쓸이 검은 머리 풀고 누워도/이적지 못 가져 본 너그러운 사랑/너를 위하여 나 살거니/소중한 건 무엇이나/너에게 주마/이미 준 것은/잊어버리고/못다 준 사랑만을 기억하리라/나의 사랑아/ 눈이 네리는/ 먼 하늘에/ 달무리 보듯 너를 본다/ 오직 너를 위하여/ 모든 것에 이름이 있고/기쁨이 있단다/ 나의 사람아 <너를 위하여>전문
30년대에 접어들면서 시인의 시는 낭만적인 의식으로 정감이 앞선 초기시의 특징 위에 구조적 탄력감이 곁들여져 한층 심화된 시적 양상을 띠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시인의 시어들이 발하는 광휘는 보석처럼 정갈한 시어와 심연에서 건져낸 감성으로 커다란 울림을 자아낸다. 일찌기 시인은 시의 질료가 되는 언어에 대해 “시인이 원하는 첫 번째 언어는 정직하고 투명한 언어, 고통을 함께 느끼는 아픔의 언어, 상처에 기름 바르는 치유의 언어, 누구도 타인이 아니라는 확신을 널리 퍼뜨릴 수 있는 우정과 신뢰의 언어, 한 번뿐인 사랑을 몹시도 좋아하게 만들 사랑과 은총의 언어”라고 밝힌바 있다. 위에 쓴 예의 작품에서 보듯 섬세한 결을 지닌 시인의 시어들은 우연히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화룡첨정의 자리를 점하고자 하는 간곡한 시정신의 발로이며 언어의 정수를 뽑기 위해 한시도 긴장을 놓지 않고 절치부심해온 대가의 모습임을 알 수 있다
4, 神 의 영원한 막달라 마리아
이러한 시인의 시적 성과에 대해 허영자는 "주제는 사랑이며, 그 내용은 기도의 정신이다" 라고 하였으며 정영자는 "사랑과 생명의 시인"으로, 오세영은 "영과 육의 갈등이 빚어낸 정신적 부하물"로, 김재홍은 "사랑과 구원, 또는 사랑과 기도의 시"라고 요약하였으며, 김종해는 "사랑의 절대적 가치부여에 김남조 시의 근원적인 맥락이 있다"고 보고 있다. 시인의 시를 사랑의 시라고 규정하는 것은 이제 명약관화한 사실로 받아들여진다. 이러한 바탕에는 성속의 세계를 지향하는 시인의 종교관이 존재한다. 신성, 즉 아카페적인 사랑은 인간에게 성속의 삶을 요구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인간의 몸은 그 원죄성으로 인하여 체질적이고 운명적으로 세속의 삶을 영위할 수밖에 없다. 신과 화해를 도모하는 방법은 참회와 기도를 통해서만이 가능해진 것이다. 구원을 향해 노래하는 시인의 사랑은 아가페처럼 완전한 사랑을 갈구하는 양상을 지닌다. 값비싼 나아드 향유로 예수님의 발을 씻은 막달라 마리아처럼 시인은 종교적 도그마의 세계를 넘어 자신의 영혼과 세계의 구원을 향해 번제물을 드리게 된다. 그것은 즉, 시인 자신이 막달라 마리아가 되는 것이다,
가시나무의 가시 많은 가지를/ 머리 둘레 크기로 둥글게 말아/ 하느님의 머리에/사람의 두 손으로 씌워드린/가시 면류관/너희가 준 것은 무엇이든 거절치 않노라고/이천년 오늘가지 하느님께선/그 관을 쓰고 계신다 <면류관>전문
나 기도 드릴 때면/주의 몸 그림자 안에/ 일렁이는 빛살 무늬로 돋아나는/한 여인을 본다-중략-당할 수 없어/ 죄와 통회와 큰 울음인 여자/ 전령이 불에 탄 상처자국인/ 막달라 마리아만은/ 도저히 어절 수 없어/ 기죽어 엎뎌 있는 나여/ 죄와 통회와 나의 큰 울음은/ 어느 하늘 끝에 뉘일 것인가 <막달아 마리아 3> 부분
당신에게선 손 씻는 소리 못 박는 소리/아슴히 들립니다/사랑하는 분이/ 앞에서 못 박혀 죽으신 후/당신 몸은 못 박는 소리와 그 메아리들의/소리를 사랑합니다//세상에서 가장 강한 건/고통입니다/고통의 반복 앞에 서는/울연한 공포입니다/그래도 사랑하는, 사랑입니다<막달라 마리아 4>부분
여기서 시인의 시에 등장하는 막달라 마리아가 누구인지 잠깐 살펴보기로 하자. 마리아 막달레나라고도 부르는 이 여인은 성서에 의하면 일곱 마귀에 시달리다가 예수에 의해 고침받고 열렬한 추종자가 되었다(루가 8:2). 갈보리에서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의 죽음을 지켜보고(마태 27:56), 향료를 가지고 무덤을 찾아와(루가 23:55), 요한 및 야곱의 어머니 마리아와 함께 부활한 예수를 만났다(루가 24:1∼10). 또한 가파르나움 거리에서 세 번이나 그리스도의 발에 향유를 바르고 죄를 회개한 여자(루가 7:37∼50)와 동일시되는 여성이다. 마리아 막달레나는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모두 지켜 본 증인인 동시에, ‘참회의 성녀’로서 복음서에 총 13차례 등장할 정도로 성서 속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과 지위를 점하고 있는 여성이다. 막달라 마리아를 시의 소재로서 차용하게 된데 대해 시인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막달라 마리아, 그녀는 죄와 통회의 성녀이며 애환의 두 극점이 그녀에게 함께 있었다. 그의 영혼의 내포는 거대하며 그 거대함의 용량 전부로써 번뇌하고 사랑하고 헌신하면서 높이높이 동반하여 인류사의 최고인 분의 전령(全靈)을 남김없이 포옹해 드리게 되었다고 나는 그리 믿어온다. 여기에 완미한 정점과 완미한 심연이 모두 있기에 내 허약한 문학혼의 아득한 지향을 이곳에 두고자 했다. 사람에겐, 특히 시인에겐 별다른 굶주림의 자각이 있다. 옛날 미국 대륙에서 가축들의 소유권 표시로 불에 달군 강철의 화인(火印)을 살결에 눌러두듯이 시인이고자 하는 사람에게 신이 행하시는 입문의 법칙이 이 일일지도 모르는 것이었다. 나에게도 그 일 인분의 분배가 주어졌다. 그런데 어떤 대책이 가능했을까? 결국 나는 작은 울음이 큰 울음 앞에서 눈물을 그치는 이치로 더 치열한 배고픔과 이것조차를 능가하는 거대한 사랑… 뭔가 이러한 모범을 찾아 막달라 마리아의 영토 그 기슭에 기항했는지도 몰랐다.”(<시와 시학> 1997, 가을)
인간이 신을 향하여 구원을 바랄 수밖에 없는 것은 막달라 마리아처럼 세속과 성속의 두 극점을 동시에 지닌 인간의 본질적인 아이러니에 있다. 그 간극을 해소하고자 시인이 바라는 구원의 방식은 사랑이며 구체적인 양태는 기도와 참회의 형식으로 나타난다. 신앙시의 내포와 외연은 이러한 공식 아래 또 하나의 찬란한 금자탑을 세운 것이라 할 수 있다.
사랑한 일만 빼고/ 나머지 모든 일이 내 잘못이라고/ 진작에 고백했으니. 이대로 판결해다오// 그 사랑 나를 떠났으니/ 사랑에게도 분명 잘못하였음이라고/ 준결히 판결해다오.<참회 >부분
5, 에필로그
팔순을 넘으셨음에도 인간적 고뇌와 휴머니즘을 깊은 신앙 체험을 통해 성스러움의 차원으로 승화시킨 시정신은 여전히 치열하다. “평안을 위하여” 라는 부제를 단 후기시편 속에서는 한층 웅숭깊어진 울림을 낸다. 재작년에 출간된 16번째의 시집의 발문에서 고은 시인은 “이 필생불변의 시인에게서는 사랑은 그냥 사랑 타령이 아니다. 그것은 고행이고 연단의 다른 이름”이라 썼다.
나는 시인 아니다/ 시를 구걸하는 사람이다/ 이 고백 진심 이었다// 백기 들고/ 항복이라고 굴복한 일/ 여러 번이었다// 삼수갑산 돌며/ 실컷 놀다온 너에게/타지에 나돈 건 오히려 나라고/ 사죄하고 참회하는/ 상습 참패자였다// 마침내 짝사랑의 명수 되고 너의 부재를 견디는 공부에도/ 도통할 즈음// 시여/ 살풋이 네 모습 보이니/ 내 가슴 뛰고/ 황홀하여/ 다시금 손 내미는구나-<나의 시에게 4>전문-
시선집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환경시 20편 역시 교과서에 수록된 <겨울바다>를 비롯하여 <나무들>같은 명시들로 채워져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시작활동이 60년에 이르는 동안 한 치도 흐트러짐 없이 지속될 수 있었던 것은 무엇일까. “시 자체의 무게와 긴장과 거미줄같이 퍼져 있는 모세 혈관에 가닥가닥 퍼져 감도는 섬세하고 아픈 감수성 때문에, 또한 한 번씩 지구의 밑바닥까지 내려가 엎드리는 아득한 침잠의 그 어둠 때문에 신이 창조하신 미와 영원성에 대하여도 그 예찬(禮讚)을 끝내는 일이 결코 없을” 것이라고 말한 시인의 염결한 정신에 있는 것인지 모른다.
겨울 바다에 가 보았지
미지(未知)의 새
보고 싶던 새들은 죽고 없었네
그대 생각을 했건만도
매운 해풍에
그 진실마저 눈물져 얼어버리고
허무의 불 물이랑 위에
불붙어 있었네
나를 가르치는 건
언제나 시간
끄덕이며 끄덕이며 겨울 바다에 섰었네
남은 날은 적지만
기도를 끝낸 다음 더욱 뜨거운
기도의 문이 열리는
그런 영혼을 갖게 하소서
겨울 바다에 가 보았지
인고(忍苦)의 물이
수심(水深) 속에 기둥을 이루고 있었네
-<겨울바다>전문
지상에 존재하는 가장 아름다운 이름은 어머니이며, 우주가 존재하는 한 영원 미답의 존재는 신일 것이다. 원시시대부터 최대 불가사의로 회자되는 사랑은 인간이 존재하는 한 지속될 수밖에 없는 명제로써 그것은 영원히 소멸되지 않는 생명나무로 타오를 것이다. 그러고 보면 시인은 지상에 현존하는 삶 속에서 가장 본질적이고 절대불변의 명제를 탐구해 온 셈이다. 신성과 모성의 아우라 속에서 사랑을 노래했으며 시들지 않는 생명나무로 우뚝 서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시인의 시는 ‘오늘 그리고 내일’도 여전히 불려질 <오늘 그리고 내일의 노래>인 것이다.
2009, 문학과 창작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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