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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머의 해설

이상과 현실, 존재의 시학-김종철 시선 집<못과 삶과 꿈>

by 너머의 새 2015. 9. 10.

이상과 현실, 존재의 시학 /강영은

-김종철 시선 집<못과 삶과 꿈>을 읽고


1,

시선 집이란 말 그대로 시를 선별하여 엮은 시집으로써 시인이 걸어온 시적 행보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장점을 지니고 있다. 김종철 시인이 금번 상재해낸 시선 집은 활판 공법의 한정판 특제본이다. 40년 넘게 한국시의 내질을 천착해온 중진 시인의 높은 품격을 마치 한 눈에 보여주는 듯 싶다. 검정 천을 씌운 중앙의 붉은 색 바탕에 못처럼 박혀있는 <못과 삶과 꿈>이라는 제호는 '못의 시인'이라는 별명에 걸맞게 핏자국과 같은 상징을 보여준다. 시인이 상재해낸 7권의 시집이 못 자국 같이 아로새겨져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든다. 묵직한 질감이 느껴지는 겉표지를 넘기면 정갈한 한지 위에 육필로 쓴 시구가 뭉클하게 다가온다. “당신의 무지개가 저 세상 잇는 다리로 다시 뜨는 날 나는 한 마리 학 되어 한 생애를 날아오를 것입니다” 시선 집의 맨 앞자리 앞자리에, 그것도 육필로 모신 이 구절을 통하여 시심의 발원지가 신화적 원형질을 포함하는 모성임을 제시하는 한편, 원형 복귀의 여정을 보여주고 있음을 시사해준다.

책머리에 의하면, 그것은 못과 망치를 시의 화두로 던져준 아오스딩이라는 세례명에서 발원하여 해마다 꽃 피우는 나무가 되어 가슴 속의 시를 칼로 꺼내어 줄 도둑을 찾아 새로운 여정을 떠나는 길까지 두루 의미하는 것으로 설명되어지고 있다. 따라서 이번 시선 집은 지금까지의 시적 여정에 대한 정리이면서 앞으로의 향방에 대한 이정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삶은 현실이고 꿈을 이상이라고 한다면, 현실과 이상은 인간이 삶을 영위하는 두 공간을 말한다고 할 수 있다. 못은 두 공간 속에 박혀 있는 존재를 의미한다 하겠다. 못이라는 존재가 시인의 삶과 꿈, 다시 말해서 현실과 이상과 어떻게 조우하며 어떠한 미학을 구축하는지 조심스럽게 살펴보고자 한다.




2,




시선 집을 펼치자마자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한다. 100편의 시들로 구성된 점은 여타 시선 집과 마찬가지이나 흔히 전기, 중기, 후기로, 차례가 정해진 것이 통례인데 반해 이 시선 집은 최근의 시집부터 역순의 차례로 구성되어져 있는 점이다.

지난해 상재한 7번째의 시집 <못의 귀향>을 필두로 첫 번 째 시집인 <서울의 유서>에 이르기 까지 시간의 바퀴를 거꾸로 돌려 과거의 시세계 속으로 역행해가는 시의 향연은 색다른 재미를 준다. 이는 시적 모태가 되는 고향, 즉 원형질적인 고향을 향해 회귀해 감을 의미한다. 타임머신을 탄 듯, 시선집의 시공간은 반추의 공간을 드러낸다, 그래서인지 시인이 낳고 자란 초또마을 시편이 무려 21편이 들어 있다. 시란 "무엇은 사실이다」하고 단언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사실을 우리로 하여금 좀 더 리얼하게 느끼도록 해 주는 것이다." 라고 한 T.S.엘리엇의 말처럼 시인의 고향이기도 한 <초또시편>을 전면에 배치한 것은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고 볼 수 있다. 환갑, 진갑을 다 지낸 시인이 생의 한 절정에서 회귀하는 시적 여정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한층 성숙한 원융무애의 길로써 새로운 시작의 또 다른 이름처럼 느껴진다.




유년시절 어머니가 사 남매 키운 밑천은

국수 장사였습니다

부산 충무동 좌판 시장터에서

자갈치 아지매들과 고단한 피란민에게

한 그릇씩 선뜻 인심 섰던

미리 삶은 국수 다발들

재 때 팔리지 않은 날은

우리 식구 기니도 되었습니다

내가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것은

불어터진 국수입니다

눈물보다 부드럽게 불어터진 가난

뜨거운 멸치 다싯물에 적신

저 쓰러지다 일어서는 시장기를

아직도 그리워합니다

배 아픈 날 당신 약손이 그립듯

어쩌다 놓친 늦은 저녁

뽀얀 김 후후 불며 식혀 먹던

불어터진 허기가

오늘은 내 생의 삐걱이는

나무 걸상에 걸터앉아 당신을 기다립니다




모든 추억이 그렇듯, 지나간 시절은 무성영화처럼 아름답다. <초또시편> 역시 다르지 않다. 그러나 그 아름다움은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회귀성 때문만이 아니라 시인의 삶 속에서 불러오는 삶의 진정성에 바탕을 두고 있는 까닭에 그 울림이 더욱 크다 하겠다. 서정시의 본질인 단단하게 구축되어 있는 시편들은 시공간적인 넓이와 깊이를 두루 아우르고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라 하겠다. ‘초또 시편’의 시편 모두가 잃어버린 시간, 잃어버린 공간에 대한 기록임을 보여주는데 그 시공간이야말로 시의 원형적 요소로서 깊이 있게 천착해온 시인의 발화는 귀중한 정신적 문화유산과도 같다. "해 뜨는 곳에서 해 지는 곳까지 어머니 나라"라고 발화하는 사모의 정은 지속적으로 시인의 시세계를 관통해온 소재이고 주제이지만 시인 개인의 본질적 자아에 대한 고유 영역이다.

다음의 시를 읽어보자.




어머니 젖을 오래 빨았습니다/ 빈 젖꼭지라도 물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었습니다/ 어머니는 막내라고 나를 달고 다녔습니다/ -중략-/ 숨이 턱까지 차야 볼 수 있는 꽃!/ 간밤에 밤도둑처럼 아내의 앞섶을 풀다가 주책없다 야단맞았습니다-<어머니의 젖꼭지>부분-




"시는 언제나 우리의 삶을 새로 출발하도록 고무하며 그 삶의 근원으로 되돌아가게 할 것이다." 라고 말한 이는 박두진이지만 이 시적 고백을 통하여 볼 때 시인이 지니고 있는 경험들은 진정성을 지닌 특별한 것으로써 삶의 근원적 공간을 되돌아가게 하는데 조금도 유감이 없다. 시인의 풍부한 시어들과 농도 짙은 감수성과 어우러진 이 근원적 공간은 보다 구체적이고 생생한 원형적 공간을 재구성해 낸다.




3,




역순으로 시편들을 묶었다고 하였지만 2부에 실린 <못에 관한 명상>은 3부인 <등신불 시편> 보다 앞서 나온 시집이다. 2001년에 나온 <등신불 시편> 7년 앞서 1994년에 발간한 시집이다. 김재홍 교수의 해설에 의하면 <못에 관한 명상>의 첫 작품인 시<고백성사>는 시인 자신에게는 물론 이 당의 현대시사에 있어서도 의미 있는 작품이라고 말하고 있다. 획기적이고 전환점에 해당한다고 여겨지는 이 작품은 시인의 시사에 있어서 하나의 절정이면서 가히 명시의 반열에 꼽힐 수 있는 시라고 소개하고 있다. 시를 보도록 하자.




못을 뽑습니다

휘어진 못을 뽑는 것은

여간 어렵지 않습니다

못이 뽑혀져 나온 자리는

여간 흉하지 않습니다

오늘도 성당에서

아내와 함께 고백성사를 하였습니다

못자국이 유난히 많은 남편의 가슴을

아내는 못 본 체 하였습니다

나는 더욱 부끄러웠습니다

아직도 뽑아내지 않은 못 하나가

정말 어쩔 수 없이 숨겨 둔 못대가리 하나가

쏘옥 고개를 내밀었기 때문입니다

-<고해성사>전문-




“시가 단순히 삶의 시간을 따라가기만 한다면 시는 삶만 못한 것이다. 시는 오로지 삶을 정지시키고 기쁨과 아픔의 변증법을 즉석에서 삶으로써만 삶 이상의 것이 될 수 있다”고 말한 바슐라르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위 시는 존재 이상의 어떤 것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기쁨과 아픔의 변증법 같은 것, 못이라는 사물이 생산해내는 이미지는 영혼의 비밀과 존재와 사물을 동시에 제공한다. 못이 주는 의미는 존재의 본질을 넘어서 예수의 옆구리에 박힌 못에 이르기까지 원형적 상징까지 두루 아우르는 테마가 된다. 그런 의미에서 못은 죄를 의미한다.

못에 대한 풀이를 보자. 부사로써의 ‘못’ 동사가 나타내는 동작을 할 수 없다거나 상태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부정의 뜻을 나타내는 말이며 명사로 쓰일 때는 목재 따위의 접합이나 고정에 쓰는 물건. 쇠, 대, 나무 따위로 가늘고 끝이 뾰족하게 만든 것을 말한다. 또, 넓고 오목하게 팬 땅에 물이 괴어 있는 곳. 혹은 손바닥이나 발바닥에 생기는 단단하게 굳은살을 말하기도 한다. 어느 의미로 해석하든 아픔의 속성을 지닌 단어이다. 못의 의미를 더욱 확대시켜준다, 이러한 못을 평생의 테마로 삼았다는 것은 시인의 시세계가 가톨릭시즘을 바탕으로 한 원죄의식에 있다는 것을 어느 정도 보여준다.




한 밤 어디선가 불빛 따라온/부나방 한 마리,/창문에 머리를 자꾸 박습니다/ 나는 딱해서 불을 껐습니다/ 잠 못 이루는 그 밤/ 금육일의 대못 하나가/ 쾅쾅 못질되고 있었습니다- <귀향>전문




시선집의 서시이기도 한 이 시편은 전체 시편을 이끌어가는 묵시록처럼 느껴진다. 불빛을 찾아 날아든 부나방을 위해 불을 끄는 시적 화자는 기실, 부나방과 동일성을 지닌 존재이다. 인간이 본래적으로 지니고 있는 원죄성은 골고다의 언덕 위, 나자렛 예수에게 대못을 박는 행위와 무관하지 않다,




나는 어머니를 엄마라고 부른다

사십이 넘도록 엄마라고 불러

아내에게 핀잔도 들었지만

어머니는 싫지 않은 듯 빙그레 웃으셨다

오늘은 어머니 영정을 들려다보며

엄마 엄마 엄마, 엄마 하고 불러보았다

그래그래, 엄마 하면 밥 주고

엄마 하면 업어 주고 씻겨 주고

아아 엄마 하면

그 부름이 세상에서 가장 짧고 아름다운

기도인 것을 이제야 깨닫다니!

내 몸뚱이 모든 것이 당신 밖에 없다니!

-<엄마 엄마 엄마>전문-




윤동주가 그랬듯 시인의 내적 화자 역시 이 원죄성에서 해방되지 못한 듯하다. 그것이 신이든, 시와 같은 예술의 세계이든 간에 원형적인 진리를 향해 날개 짓하는 부나방의 고행은 속죄의 미학, 부끄러움의 미학으로 태동한다. 때문에 속죄와 참회의 길을 모색하는 시인의 시편들은 에덴으로의 복귀를 갈망하는 원형 복귀의 상징성을 지닌다고 볼 수 있다. 시인이 갈망하는 에덴동산은 물리적 공간으로서는 초또마을이며 심정적 공간으로서는 어머니의 품속이 아닐까 한다.




4,




<못의 귀향>에서 존재의 근원이 되는 현실 공간을 재현해 내었다면 <못에 대한 명상>에서는 존재에 대한 성찰을, 혹은 그 존재성에 대한 탐구라고 읽혀진다. 시선집이 역순으로 되어 있다 보니 후기 시에서 초기 시에 이르는 작품의 특성을 거꾸로 보게 되는데, 초기 시로 갈수록 현란한 수사와 낭만적인 상상력이 결합된 꿈과 우울의 시편들을 만나게 된다. 비교적 간결한 수사로 담백한 표현을 통해 오히려 깊어진 내질을 갖는 후기 시편들과는 달리 70~80년대의 중기 시로 거슬러 가면, 시집 <오이도>와 <오늘이 그날이다>등, 본격적인 자기 성찰의 시기로 돌입하여 좌절과 모색의 인생론적 탐구가 주가 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시기와 더불어 특히 초기 시의 시편을 꿈의 미학이라고 이름 지어본다.




사시사철 눈 오는 겨울의 은은한 베틀 소리가 들리는/ 아내의 나라에서는/ 집집마다 아직 태어나지 않은 마을의 하늘과 아이들이/ 쉬고 있다/마른 가지의 난동暖冬의 빨간 열매가 수실로 뜨이는/ 눈 나린 이 겨울날/나무들은 신의 아내들이 잔 은빛의 털옷을 입고/ 저마다 깊은 내부의 겨울바다로 한없이 잦아들고/ 아내가 뜨는 바늘귀의 고요한 가봉假縫,/ 털실을 잣는 아내의 손은/천사에게 주문받은 아이들이 전 생애의 옷을 짜고 있다/ 설레는 신의 겨울,/ 그 길고 먼 복도를 지내나와/ 사시사철 눈 오는 겨울의 은은한 베틀 소리가 들리는/ 아내의 나라,/ 아내가 소요하는 회잉懷孕의 고요 안에/ 아직 풀지 않는 올의 하늘을 안고/ 눈부신 장미의 아이들이 노래하고 있다/ 아직 우리가 눈뜨지 않고 지내며/ 어머니의 나라에서 누워 듣던 우레가/ 지금 새로 우리를 설레게 하고 있다/ 눈이 와서 나무들마저 의식儀式의 옷을 입고/ 축복받는 날/ 아이들이 지껄이는 미래의 낱말들이/ 살아서 부활하는 직조織造의 방에 누워/ 내 동상凍傷의 귀는 영원한 꿈의 제단,/ 이 겨울날 조요로운 아내의 재봉 일을 엿듣고 있다 -<재봉>전문-




이 시는 한국일보 신춘문예 당선작이다. 2년 후 서울신문에 <바다 변주곡>이 다시 당선됨으로 약관 20대의 나이에 등용문을 두 번 뚫었으니 시인으로서의 재능과 역량은 천부적이라 할 수 있다. 이 시는 21세의 나이에 쓴 것이고 보면 시인의 상상력과 서정성은 이 때 이미 보증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시 속에서 보여지는 현란한 수사와 시어들은 아름다운 상상력이 펼쳐가는 꿈의 공간이다.




낙타를 한 마리 사야겠다/ 이 도시에서는/ 아무도 낙타를 타고 다니지 않는다/ 아무도 낙타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낙타는 먼 나라의 사막이나 동물원의 것으로 안다/ 그러나 아무래도 낙타를 한 마리 사야겟다/ 사람들은 손가락질 할 것이다/ 냄새가 난다면 키우지 못하게 할 것이다/ 끝내는 낙타보다는 나를 고발할 것이다/-중략-/ 천국으로 가는 길을 배우기 위해서/ 아무래도 낙타를 한 마리 사야겠다 -<낙타를 위하여>-



위 시는 <오늘이 그날이다>에 수록된 시이다. 이 시집 속에는 <어린 왕자를 기다리며> <콩나물 기르기> <줄타기>등 여러 시편들이 실존의 불안과 함께 존재의 본질에 대한 탐구가 꿈의 현상학처럼 실려 있다. 초기 시의 낭만적인 상상력과 젊은 열정이 분출해내는 현란한 수사학적 시편들을 지나 중기 시에서 시작된 인간 존재의 본질에 대한 지속적인 탐구는 시간의 존재론으로 확대 심화되는 양상을 지나 후기 시에 이르는 과정에서 못이라는 평생의 테마를 발견하게 된다. 이 못을 통해 자신의 삶을 반성하고 존재의 원형 복귀를 꿈꾼다.




등신불을 보았다/ 살아서도 산 적 없고 /죽어서도 죽은 적 없는 그를 만났다/ 그가 없는 빈 몸에/ 오늘은 떠돌이가 들어와/ 평생을 살다 간다 -등신불<등신불 시편 1>전문-




시선 집을 통해 시인의 시적 생애를 더듬을 수 있다는 것은 행운이다. 40여년을 지나온 시인의 행보를 더듬다 보니 이상과 현실 속에 조화를 이룬 존재의 시학을 만날수 있었다. 찬연히 빛나는 시혼이 등신불 되어 빛나고 있었다. 그가 없는 빈 몸에 떠돌이가 들어와 중언부언 한 셈은 아닐까. 시인의 존명에 못 자국이 되지 않을까, 염려스러운 마음이 든다. 시의 깊이와 넓이에 미치지 못하는 시안詩眼을 용서해주기 바라며 더욱 건강하셔서 “나의 망치질 소리는/살아 있다는 축복입니다” 시구처럼 망치질 소리가 쉬지 않았으면 하는 간절한 바램으로 가져본다.



문학과 창작 2009, 가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