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현복 시집 <동미집>해설
서정과 진정성의 미학/강영은
우리는 과거를 수정하지 않고는 사고를 창안하지 못한다. 수정을 거치면서 하나의 진정한 사고를 끌어낸다. 사고영역 안에서 창안하는 것과 이미지들을 상상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정신적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시가 언어로 구축되는 미적 재현 물임을 감안해볼 때 이처럼 과거의 체험을 자신의 사고 영역 안에서 재창조하는 자들을 시인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과거의 체험이 새로운 이미지로 되살아나면서 시인에 의해 지속되는 회상은 독자를 위로된 상태로 데려간다. 시로 위로 받는 것, 이것은 극도로 시의 고통을 지속하게 하는 것이 아닌가. 소박한 독자인 우리가 그 시를 택한다면 이제 우리는 시 속에서 시인의 섬세하게 어루만져 주는 위로를 맛볼 수 있을 것이다. 위로의 기능은 시의 순기능 중 하나지만 ?시란 힘찬 감정의 발로이며, 고요로움 속에서 회상되는 정서에 그 기원을 둔다?고 한 영국의 서정시인 ?W.워즈워스?의 말처럼 시 속에 드러나는 회상의 정서가 보편적 세계를 이룰 때 생겨난다. 신현복의 원고를 읽는 동안 이 말이 생각난 것은 이와 같은 정서가 무엇보다 눈길을 끌었기 때문이다. 신현복이 회상하는 정서는 보편적인 체험의 진정성에서 비롯된다. 발화지점이 상상력이나 관념이 아닌 시인이 직접 체험한 현장성에서 기인할 때 진정성이 바탕이 되는 것은 서정성이다. 어디까지나 주관적 개성적인 정서를 표현하거나 혹은 추구하는 이 서정성은 신현복의 경우 고유명사, 시간․공간의 한정, 사상 등의 유무와는 관계없이 자기 체험의 직접표현인 시 속에 고루 분포되어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 서정성은 시 작품 속에서 의미를 파악하고자 할 때 시의 소재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시 정신을 의미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때의 시 정신이란 바로 시를 짓는 시인의 정신을 일컫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신현복 시편들은 이러한 시 정신, 즉 서정성을 두루 아우르는 진정성에 바탕을 두고 있다. 때문에 그가 선보이는 시편들은 ?시는 사람이 생각하는 것처럼 감정은 아니다. 시가 만일 감정이라면 나이 젊어서 이미 남아돌아갈 만큼 가지고 있지 않아서는 안 된다. 시는 정말로 경험인 것이다?라고 한 ?R.M.릴케?의 말처럼 일상적이고 사소한 체험 속에서도 자신을 둘러싼 세상에 대해 놀라울 정도로 내밀하고 부드러운 시행들을 만들어 낸다. 序詩를 보도록 하자.
강물 흐른다 갈대 흔들린다
황오리 날아가고 어둠 밀려오고
찰랑찰랑 달빛 노는 소리
온갖 풀벌레 소리 새 소리 바람 소리
노을 지는 저녁 강 풀어놓는다
방관도 집착도 없다
- 「동행․1」 전문
시적 메타포가 자연과 어울려 하나를 이루고 있음을 본다. 아마도 그가 지향하는 시세계가 아닐까 한다. 강물과 갈대와 황오리와 달빛과 온갖 풀벌레 소리와 새 소리 바람소리, 노을 지는 저녁 강까지 풀어놓는 詩에 대하여 방관도 집착도 하지 않고 동행하겠다는 그의 결연한 의지는 시행들 위에서 서정적으로 숨을 내쉬며 순수하고 맑은 사유로 빛을 발한다. 이처럼 사특함 없이 진정성에 바탕을 둔 그는 다음 시편처럼 존재에 대한 결곡함을 드러내기도 한다.
메밀꽃 핀 그림 액자 하나 걸으려고
안방 콘크리트 벽에 박는 못
구멍만 만들고 풍경은 고정시키지 못한다
순간, 그 구멍에서 본다
제 몸의 상처 포기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 벽
견디지 못하고 끝내는 떨어져 나온
조각들
벽, 날카로운 못 끝을 생살로 감싸 안아야
못, 비로소 올곧게 서는 것을
망치질 박힘만을 고집하며 살아온 나
부스러지려는 자신을 악물고
기꺼이 벽으로 버티며 견디고 있는, 저
수많은 사람들 향해 몇 번이나
못질 했던가
꾸부러지지 않고 튕겨나가지 않고
작은 풍경화 한 점 고정시키며
더불어 벽으로 살기까지
- 「못을 박다가」 전문
시인은 못을 박다가 벽에 대하여 느낀 즉자적 인식을 대자적 자아로 전환시킨다. 즉자라는 것은 우리 밖에 존재하는 사물들을 말하는 것으로서 인간처럼 인식할 수 있는 인식 능력이 없는 외부의 환경 즉 사물들을 말한다. 그냥 그대로 존재하는 사물들을 말하는 것이다. 외부사물을 인식하고 자기 자신에 대해서 성찰할 수 있는 시심의 깊이를 지니고 있음을 보여준다.
첫 시집을 상재하는 시인들이 예의 그렇듯, 신현복의 시 역시 거대담론 같은 의미나 눈에 보이는 보편적 세계를 시적 대상으로 삼았기보다 개인적 주관적 대상물을 통하여 자신의 내면세계를 형상화하고 그 속에서 위안을 강구한다. 그 미적 행위의 궁극적인 의미는 자기와 세계의 구원에 있으며 문학적 구원의 방식이라는 데서 종교와 구별된다. 개인적, 주관적인 대상이 빚어내는 풍경들은 시인의 자장 속에 들어 있는 사물이나 인물들을 주된 모티프로 삼아 거짓 없는 세계를 구현함으로써 자신을 구원하는 성과물로 여겨진다. 그 구원방식은 아직 발현되지 않는 잠세태로서의 자각이 아닌 자기를 회복하는 對自적 관계에 있음을 보여준다.
새 구두를 신고 걸으면
나, 오른발이 훨씬 더 아프다
왼발에 맞춰 골랐기 때문이다
오른발 조금 헐렁하지만
오른발에 맞추면
왼발이 움츠려야 한다
가장 아픈 곳은
발등도 발뒤꿈치도 발가락도 아니다
복사뼈다
오른발 안쪽 복사뼈다
발이 고른 신발 걸음이 신었기 때문이다
걷다보면
자연스레 편한 왼발에 힘 쏠리게 되고
오른발 뻣뻣함에 더욱 스치게 된다
그럴 때마다
어느 한쪽으로 기우는 사랑을 생각한다
사랑도 발이 있어 신발을 신는다
슬리퍼를 질질 끌고 다니기도 하지만
외출할 때는 대개 구두를 선호한다
즐겨 신는 신발은 빨리 닳고
새 구두는 불편하다
우리사랑 가끔 절룩거리는 이유다
- 「새 구두는 불편하다」 전문
구두는 시인들에게 자주 회자되는 시적 대상이다. 구두 자체가 은유적이고 확장적 의미를 지니기 때문이다. 신현복은 구두를 통하여 사랑을 이야기 한다. 구두라는 즉자적 존재를 사랑이라는 존재로 환치 시킨다. 감각이라는 주관의 즉자적 상태가 대자적 상태로 외화된 후 즉자대자적 상태로 복귀한 상태를 지각이라고 하는데 이러한 지각은 신현복에게 있어서 생래적인 듯 하다. 다음의 시를 보자.
깜짝 수는
이제 통하지 않는다
초반 몇 판에 이미 주고 받았다
실력 차 많이 났다면
한두 판에서 벌써 끝났을 일
서로 수 드러난 피장파장의 내기 장기다
상대는 또 면포장기를 둘 것이고
나 역시도 익숙한 면상장기를 택할 것이다
나는 졸을 죽이지 않고 중앙으로 몰아야 할 것이고
상대는 상을 버려서라도 내 졸을 잡으려 할 것이다
내 포가 중앙수비에 치중하지 않는 만큼
상대도 포의 중앙배치를 서두르지 않을 것이다
이제 묘수는 실수를 줄이는 것
자충수를 덜 두는 것이다
단 한 수의 외통으론 판 끝나지 않는다
나도 상대도 깜빡한 외통은 물려달라 할 것이고
한 수 정도는 서로 그러려니 할 것이나
불리해질수록 내심 더 큰 한방을 노리는 법
피차 물릴 수 없는 외통을 경계하면서
밀고 밀리다 보면 뻔하다 싶은 판에서도 여전히
아차, 허허, 이런, 휴우, 아아
장군이면 멍군이고 멍군이면 다시 장군이고
어차피 갈 때까지 가야 끝이 나는
자손심의 내기 장기다
이제부턴
- 「불혹 넘어」 전문
장기 두는 행위를 통하여 자아를 성찰하는 위 시는 불혹을 넘어서는 자신을 표상한다. 불혹이란 공자가 40세에 이르러 직접 체험한 것으로, 세상일에 정신을 빼앗겨 갈팡질팡하거나 판단을 흐리는 일이 없게 되었음을 뜻하는 말이다. 이처럼 사물이나 행위 속에서 자신을 발견하는 타아적 면모는 시인이 본래적으로 지닌 따뜻한 시선에서 비롯된다. 말하자면 시인의 시세계가 인본정신에 충일해 있음을 뜻한다고 할 수 있다. 인본주의(휴머니즘)는 일반적으로 말해, 인간이 궁극적인 가치라는 것, 즉 인간의 존엄성이 존중되어야 하고 모든 정치적, 종교적, 이데올로기적, 경제적 예속으로부터 보호되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이러한 인문철학과 상관관계에 있는 것은 아니지만 신현복의 휴머니즘은 신현복이 본질적으로 가지고 있는 생래적 기질로 보여진다. 때문에 그가 그려내는 형상은 가족을 중심으로 친구와 고향을 묘사하는 등 원형복귀의 양태를 지니는데 이것은 자신의 근원에 대한 존재론적인 천착이며 원형적 보편적 세계로 나아가기 위한 통과의례로 여겨진다. 이 구원방식의 양태는 어머니를 향한 사모곡이 주류를 이룬다. ?어머니라고 불리는 이 세상의 모든 분들게 제 시집을 바?친다고 서문에서 밝혔듯 시집 속에는 15편 가량이 어머니를 소재로 하거나 주제로 하고 있다. 60편의 시편 중, 약 1/4을 점유한 비중을 생각해볼 때 세상에서 가장 고귀한 이름을 가진 어머니들에게 바치는 시집으로서 유감이 없는 듯하다. 「매운 情」, 「동미댁」, 「옛집을 허물다」, 「빈자리」, 「노모」, 「욕」, 「쪽달」, 「하지」, 「동미집」, 「엄마와 크레파스」, 「우기」, 「김치냉장고」, 「도니의 經 읽기」, 「만성로봇증후군」과 같은 시편들은 이처럼 영원한 구원의 고향인 어머니를 표상하거나 소재로 하고 있다.
어머니, 몇 물째 따다 말리시는 건가요
할머니 방에 고추가 널려 있다
반쯤 마른 채 매운 냄새 짙게 풍기고 있다
듬성듬성 짓무른 것도 보이고
바싹 마른 것들은 푸대*에 담겨 있다
아랫방에다 말리면 되는데 싶어 여쭸더니
창문을 그렇게 열어 뒀는데도
돌아가신 할머니 냄새 도무지 가시지 않아
심통 좀 부렸다며 슬쩍 웃으신다
그렇구나, 방안 가득 이 붉은 것들 한때는
시퍼렇던 시집살이로구나
눈물겹던 청상의 여름날들을
이렇게 꼬들꼬들 말리고 계셨구나
그럼 푸대 속 저 마른 것들
하, 설움이구나
설움도 곱게 말려 빻으면 매운 情
맛 돋우는 양념이 되는구나
몇 물을 더 따다 말려야 끝물인가요, 어머니
- 「매운 情」 부문
뒤란 장독대 빛바랜 항아리다. 막붓으로 거칠게 칠한 빗살무늬 생, 그 사이 사이마다 지나온 흔적 땟국으로 묻어 있다. 아흔 일곱 지금도 동미집 과수댁, 노환으로 웃음그늘 깊고 입담 걸어 차라리 더 명품이다. 한 백년을 사시고도 이름 두 자 얻지 못해 名不詳*으로 호적에 올라계신 할머니, 품고 살았던 날들 다 부리시느라 토방에 앉아 찌끼뿐인 텅 빈 시간 말리고 계신다. 곰삭히며 살아온 오랜 세월에 뼛속까지 깊게 배어들었는가, 지릿한 조선간장 냄새 도무지 날아가지 않는다. 하얀 알갱이로 다시 피어나는 저 소금기, 멈출듯 멈출듯 영 멈추지 않는다.
- 「간장독」 전문
위 시들에 의하면 화자의 어머니는 고된 시집살이를 겪었음에 틀림없다. ?듬성듬성 짓무른 것도 보이고 바싹 마른? 고추와 ?名不詳?으로 호적에 올라계신 할머니, 품고 살았던 날 다 부리시느라 토방에 앉아 찌끼뿐인 텅 빈 시간 말리?는 간장독은 어머니를 표상하는 존재들로써 고된 시집살이를 살아낸 존재의 고달픔을 묘사한다. 눈물겹던 청상의 여름날들을 시퍼렇게 보낸 어머니에 대한 안타까움과 애정은 어머니와 아들이라는 단순한 상관관계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어머니의 핍절한 생애에 대해 동참해온 개인적 본질적인 동질감에서 더욱 극대화 되어 지난한 삶을 관통하는 원인이 된다. 이러한 정체성은 시인이 몸속에 새겨진 바닷가 마을의 바람과 파도 소리를 불러낸다.
마을 끝집, 부엌 하나 긴 방 하나 피리 같은 바닷가 그 집에는 늘 바람 있었네 하나가 울면 나머지는 울 수 없었네 운동화 자전거 또박또박 끊어 울었네 고등학교 대학교 점점 세게 울었네 악보에는 반음 유난히 많았네 서로 눈치보다 박자 어긋나기도 했네 가끔은 음 갈라질 때도 있었네 5남 3녀가 다 울음보 간신히 틀어막으면 엄마가 울었네 뒤란에서 새 나오던 더 이상 내려갈 수 없는 그 느린 울음소리, 어린 막내 철없이 끼어 울면 이때다 모두가 다 울음보 확 열어젖혔네 끊어질 듯 찢어질 듯 한 옥타브 높아졌네 하나 되어 마음껏 울고 나면 처얼썩 쏴아 철썩 쏴아아 말갛게 마알갛게 부서지던, 동미집은 바다 첫집이었네
- 「동미집」 전문
한 편의 아름다운 서정시 「동미집」은 시인이 마음과 몸에 새겨진 지울 수 없는 고향이다. 어머니가 원형적 고향이라면 시인이 자란 동미집은 바람소리와 울음소리로 세워진 물리적 고향인 셈이다. 반음의 울음이 곽 들어찬 집, 온음을 낼 수 없는 가난한 삶이 청각적으로 감각화 된 이 시는 ?고대인의 시는 소유의 시며, 우리들의 시는 동경의 시다. 전자는 현재의 지반 위에 굳게 서지만, 후자는 추억과 예감의 사이를 흔들려 움직이고 있다?고 한 ?A.W.슐레겔?의 말처럼 피리음으로 흐느끼는 바람과 파도소리를 독자의 귀에 선물한다. 개인의 감정이나 정서를 주관적으로 표현한 抒情詩의 축 위에 세운 시말들은 파도너울 같은 큰 파장으로 다가온다.
잠그고 떠났다는 건
소중한 것을 남겨뒀기 때문이다
뒤란 장독대 빨갛게 익은 물앵두
똑,
똑,
떨어지고
바람아, 까치발하지 마라
빼앗을 순 있어도 훔치지 못하는
물앵두가
해종일 빈집을 지키고 있는 건
그리움이 저 혼자 익어가기 때문이다
- 「물앵두의 집」 전문
좋은 시로써 갖추어야 할 가장 중요한 바탕이 서정성임을 감안해 볼 때 이러한 서정성은 좋은 시인으로 성장할 수 있는 예표와 같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서정성을 연결고리로 하여 바닷가 첫 집인 「동미집」, 그 쓸쓸하고 아픈 추억 속의 빈집은 「물앵두의 집」으로 현현한다. ?꿈꾸는 세상이 다 너머에 있어 자라면서 모두 떠난 산?인 매봉재를 넘어 서울로 상경한 시인에게 「물앵두의 집」은 소중한 추억을 남겨두고 왔기 때문에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고 소중한 집이 된다. 슬픈 과거를 승화 시키는 힘은 시간의 힘이다. 잠그고 떠나온 과거 속으로 다시 돌아갈 수 없지만 이제 시인은 그리움이 저 홀로 익어가는 완숙의 단계에서 지난 시절을 돌아보며 어머니의 현신인 아내와 고향과 친구들에게까지 두루 사랑을 고백하고 관심을 가짐으로써, 자아 구원의 양태를 지속시킨다.
삽교호가 바다였던 고향 당진은
통통배 몇 척 오가는 외딴섬 같아
신례원 거쳐 온양 천안으로 돌아야 겨우
서울로 갈 수 있었다
그 허기 깊은 숲에서도 뻐꾸기들
낮에만 울었다
진달래 꽃망울 터지듯
폭음 울리기 시작한 후 몇 해
서울 가는 지름길이 생긴 날 저녁
내 친구 영규도
헬기처럼 큰 날개 달겠다며 서울로 갔다
칡뿌리 씹듯 씹어대던 유조선 만드는
과학자 꿈 포기하고
어느 봄날, 고향에 온 녀석은
뻐꾸기란 이름의 웨이터가 되었다고 했다
술집 우거진 영등포 숲에서
밤에만 우는 서울뻐꾸기가 되었다며
함께 놀던 느티나무 아래서
밤새 울고 또 울었다
나쁜 녀석, 내게 처음으로 그
쓰디쓴 양주를 먹인
매봉재 길 넓어지는 속도로 숲 사라져
나도 서울로 왔다
일년에 서너 번씩 동창회를 하는데도
그 뻐꾸기는 오지 않는다
나쁜 녀석, 저 땜에 동창회를 어느 땐 낮에
어느 땐 밤에 번갈아서 하는 줄도 모르고
깊이 숨어 울지도 않는
화장실에서 뻐꾸기 날아왔다 간 흔적
작은 스티커를 보았다
?현관에서 뻐꾸기를 불러주세요, 성심껏 울겠습니다?
혹시, 냄새나는 골방에서
고추장에 꽁보리밥 비벼 함께 먹던
내 친구 영규 놈인지
그 밤 문득 그 녀석이 보고 싶어져, 나만
뻐꾹뻐꾹
코리아나 나이트클럽에서 울었다
- 「서울뻐꾸기」 전문
회상을 기조로 하는 신현복의 시들은 서사적 구조를 이룬 시편들이 많다. 위 시에서 보듯 체험을 바탕으로 한 사실적 인식에 깊은 관심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그의 시들은 시적 묘사라는 특정한 수사적 차원에서 볼 때, 서사적 국면의 수용 형태에서 개괄묘사보다는 세밀묘사細密描寫 형태에 가까운 편이다. 이처럼 구체적으로 정황을 그려내는 신현복의 시들은 상상보다는 체험에 비중을 두고 있어서 광원의 반대방향으로 굽어 자라는 음성 굴광성처럼 어둡고 습한 기억 속으로 뻗어나간다. 그 굴광성의 기억들이야말로 우리가 한 때 지녔던 아픔이기에 진정성을 답보로 한 그의 시편들은 그만큼 공감대가 큰 울림을 준다.
?해지는 끝집이라 / 그 두레질 길고 길어도 / 끝내 퍼낼 수 없던 / 그래서 내 어머니 남보다 배로 빨리 늙던 집 / 그래도 당신의 보름달 항상 환하게 뜨던 / 그 집이 무너지고 있다 // 조각난 마루 판대기에 불 지피는 내 곁으로 / 꾸부정하게 그림자 하나 걸어온다 / 속 허한 어머니가? -「옛집을 허물다」 부분-에서 보듯 시인은 기억으로 꽉 찬 시의 옛집을 허물고 ?외딴 고향집처럼 찾는 이 없어도 / 스스로 치유하는 잡초의 자생력으로 / 내 외로움 채워가야지? -「삶, 그 폴더를 만들고」부분-에서처럼 부단한 자생력으로 새로운 시의 집을 지을 것임을 예고한다. 이제 그는 자신의 구원방식일 뿐만 아니라 새로운 지평으로 나아가는 시적 여정의 출발점에서 아직 날개를 다 달지 못했지만, 아니 이제 막 날기 시작했지만 거짓 없는 세계를 구현함으로써 자신을 구원하고 자기를 회복하는 對自적 관계에서 하늘 가득 나비 날리는 꿈을 꾸지 않을까 싶다.
푸른 살은
날것들과 들것들
모두 퍼주고
텅 빈 거죽만 두른 채
해와 달 별 부르고 있음은
품 안의 벌레들
아직 날개를
다 달지 못하고 있음이니
그 거죽으로
곰팡이 물올라
뽀얀 버섯으로 피어나는
날
하늘에 나비 날겠다
나방이 날겠다
저 고목
바람이 되어 어디든
떠나가겠다
- 「고목의 꿈」 전문
예문에서 보듯 어디로든 떠나가려는 바람처럼 새로운 시세계를 향한 그의 소망은 세상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과 풍부한 서정으로 해와 달과 별까지 끌어안는 활발한 시적 행보를 지속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첫 시집 출간을 진심으로 축하드리며 필자가 채 읽어내지 못한 것은 독자들 몫으로 남기고 싶다. 바라건대 시와 동행하는 삶이 고난과 역경의 연속일지라도 ?위대한 시는 남자나 여자에게 최후가 아니라 오히려 시작이다?라고 한 ?W.휘트먼?의 「풀잎」의 귀절처럼 꾸준히 정진하여 서정과 진정성을 지닌 장점이 더욱 꽃피기를 기원해 본다.
신현복 시인/ 충남 당진 생, <문학 선>2002년 하반기호 등단, 화시동인, 다시올 편집위원, 한라건설 홍보팀 근무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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