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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머의 산문

사랑, 혹은 기다림의 트라우마

by 너머의 새 2015. 9. 10.

내가 쓴 시억에 남는 시



능소화/ 강영은

엄마가 내 푸른 담요를 걷었을 때
나는 꽃이 될 거라는 예감을 가졌어요.
꽃이 나에게 노크를 했거든요.

엄마가 내 몸 속에
얼마나 많은 꽃씨를 숨겨 놓으셨는지
보세요, 저리도 많은 발가락과 손가락들을
마구 뻗어난 길들을

늙은 소나무의 축 늘어진 그것이든
버드나무 휘어진 허리춤이든
낭창낭창 휘감는 붉은 뱀들이
절정으로, 꼭대기로 치닫고 있잖아요?

폭염에 술 취한 딸처럼
주홍빛 얼굴을
울컥울컥 게우고 있잖아요?

그게 나라구요, 나였다구요

그러니 엄마, 습한 문 열고 나 장마 지게
꽃다운 나답게, 꽃답게,
툭, 툭, 모가지를 떨굴 때까지

그냥 피어나게 내버려 두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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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혹은 기다림의 트라우마/ 강영은


시를 쓴다는 것은 시인의 눈에 비친 우주나 사물이나 내면의 세계를 시라고 하는 언어형식으로 표현하는 미적행위를 말한다. 이 미적 구축물이 놓이는 공간을 시적 공간이라 한다면, 이 시적 공간의 다양성, 혹은 광활함이 시를 쓰게 하는 매력중의 하나일 것이다.나 역시 물리적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는 시적 공간 속에서 감꽃 목걸이를 만들어 목에 거는 열세 살의 나를 불러오기도 하고 활짝 피고 싶은 어느 시간대에 나를 정지시켜 놓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시 속에 존재하는 공간과 시간들은 물리적 나이와는 아무 상관이 없이 시들지 않는 꽃 한 송이를 내 늑골 속에 피워 놓곤 한다.

위시의 모티프가 되는 능소화는 한 여름 오랫동안 감상할 수 있는 아름다운 꽃이지만 꽃이 지닌 전설에서 보듯 사랑과 기다림이라는 트라우마를 간직한 슬픈 꽃이기도 하다. 담장에 핀 능소화를 보는 순간 이 한편의 시가 쓰여진 것은 어쩌면 내 안의 무음, 사랑과 기다림에 상처 입은 젊은 날의 기억이 붉은 피를 뿜었던 것인지 모르겠다. 누가 말하는 것인지 구분할 수 없는 경지가 바로 미적 체험이요 세계의 융합이라고 바슐라르가 말했듯이 졸시 ‘능소화’는 이러한 자아와 세계의 만남이 동일성으로 이루어져 생긴 미적체험이라 할 것이다.

시를 쓰는 매력은 이처럼 단단하게 닫혀 진 마음의 문을 열어 딱딱하게 굳어 있는 사유의 빵들을 말랑말랑하게 만드는 것,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하는 재현성에 있다. 때문에 나는 마음껏 확장되거나 축소시킬 수 있는 시 속의 공간과 시간들을 사랑한다. 나에게 주어진 모든 경험과 사유가 짜깁기 되어 하나의 새로운 공간과 시간으로 탄생될 때, 그것은 대상을 아우르는 매력과 더불어 자연 현상, 우주 만물에 이르기 까지 그 속에 숨겨진 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한다.
외부세계의 충격에 대한 유기체의 반응을 인간의 존재 양식이라 할 때 내 자전의 세월 속에 들락거렸던 구름의 흔적을 포착하는 것, 사라져버릴 편운 한 조각을 스케치하는 것이 내 시 쓰기 이다. 그 구름들이 내 안에서 소용돌이치는 한 나는 세상의 접면에 나를 문질러 붉게 피 흘리고 싶은 환상을 어쩌지 못한다. 그래서 내 시의 꽃잎은 늘 아프다.

2008, 시선 가을호 기획특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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