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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그늘

악어가 인간적이라는 말을 듣는 것은

by 너머의 새 2015. 9. 23.

악어가 인간적이라는 말을 듣는 것은/강영은


삼킨 먹이가 소화되는 동안 눈물을 뚝뚝 흘리는 건
악어뿐이다

먹이를 쉽게 삼키기 위해 수분을 보충하는
파충류의 습성 때문이라지만
악어가 인간적이라는 말을 듣는 것은 동공에 맺힌 눈물이
사람의 눈물처럼 그럴듯하기 때문이다

인간이 진화해서 악어가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안면 신경 마비의 후유증을
악어 눈물 증후군이라고 부르는 것을 보면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악어의 눈에는 모든 것이 먹이로 보일 뿐이라고
어떤 심리학자가 떠들어댔지만
굶주린 속내를 드러내는 저의를 아무도
악어的이라거나 악의적이라고 해석하지 않는다

악어인 줄 모르고 들고 다니던 핸드백을 잃어버렸다
그 뒤, 악어가 지하통로를 떠돌고 있다는 소문을 들었다
핸드백이 속이 빈 내막을 열어 보일 때마다
악어에게 매번 속는 건 악어새들이다

악어가 휴머니스트라는 건 딱딱한 가죽 때문이다
송곳으로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지 않는 가죽이
禽獸의 몸을 벗어던질 때
먹이사슬이 낳은 최고의 名品, 악어라는
이름을 되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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