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리수를 읽는 법/강영은
젖은 7월이 우산 위로 기운다. 빗방울 하나가 손등을 타고 굴러 떨어진다. 빗줄기가
슬어놓은 물꽃, 꽃은 웅덩이에 파문을 낳고 그리움의 둘레는 끝없이 퍼져나간다.
물수제비를 뜨는 새들은 젖은 깃털에 우기를 묻어둘지 모르지만 나는 처마 밑에 흐
르는 태양을 모아 둬야지,
따뜻한 방을 꿈꾸는 구름은 앓고 있는 어금니, 잇몸 속에 상처를 가두지 못한 구
름은 진화 이론을 거부한 √2, 줄줄 흐르는 구름의 상처 아래 활짝 핀 꽃잎들이
무리지어 젖는다.
꽃잎 위로 확산되는 곡선의 불이문(不二門), 세상의 모든 꽃은 접이불루의 불문
율을 지닌다
흐르는 것들이 무리수라면, 직선이거나 사선으로 꽂히는 빗줄기는 유리창의 안팎
을 통과한 적이 없는 유리수로 읽는다
물에 잠긴 먼 마을의 이야기이지만 사랑에 눈 먼 어족류의 지느러미가 겨드랑이
아래 돋았던 날들, 읽지 못한 날들은 죽은 물고기의 눈알로 떠오른다
발자국 소리가 젖는 수요일, 연골의 흐느낌에 미끄러진 한 쌍의 남녀가 빗물처
럼, 빗줄기처럼, 서로를 스친다
수 천 년 동안 옴폭 파인 웅덩이에서 한 발자국도 떠나지 못한 지구가 동그랗게
고인다. 무리수를 가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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