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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그늘

凹凸의 방식

by 너머의 새 2015. 9. 7.

 



凹凸의 방식 /강영은



나는 지금 정오의 태양과 그림자의 체위로 담장을 뛰어넘은 고양이 발톱, 보도블록에 물린 길의 상처와 물에 대한 하수구의 몰입을 흉내낸다 허공과의 관계를 타진하는 그녀를 열려면 그녀의 몸통 구조를 정독해야하는데,

(벌어진 틈 사이 구멍이 보이지? 중심이 어긋나면 안 되는 거기, 한쪽으로 쏠리면 곤란한 거기, 일방적으로 힘쓰면 힘든 거기, 그게 그러니까 더 깊은 안쪽, 그래, 바로 거기,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건드려야 하는 볼록한 거기, 닿는지 안 닿는지 섬세하게 찔러야 되는 오목한 거기, 오른쪽으로 한 번 더 오른쪽으로 두 번 더)

복잡한 순서가 나를 가로막는 것이다 아무리 급하게 골목길이 등을 떠밀지만 숟가락을 들 때도 발톱의 사용 출처를 대야 하는 법, 때묻은발자국 따위를 문틈으로 불쑥 들이미는 건 예의가 아니지 생각하는 동안, 허기진 내 발톱을 길들여 온 건 나를 도둑 고양이로 여겨온 그녀의 방식임을 깨닫는다

젖꼭지만 눌러도 스르륵 열리는 디지털 세상을 대문 밖에 버려두고 아날로그 방식의 그녀를 향해 눈치밥으로 다가가는 나는 집 고양이, 凹凸의 체위를 가진 마음통과 몸통의 내부를 통달하기 전까지 우리 집 자물쇠는 쉽게 나를 들여 놓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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