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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그늘

방의 연대기

by 너머의 새 2015. 9. 7.

 

 

 

 

방의 연대기/강영은




엄마는 얼마나 많은 할머니를 죽였나 얼마나 많은 할머니를 죽여서 이리 따끈따끈한 방을 남겨주었나

훈춘 면세점에서 산 마트로쉬카 인형 속, 곱게 화장한 내가 겹겹 들어 있다

엄마, 엄마는 무엇으로 나를 만들었나 새끼손가락보다 작은 나를, 손도 발도 없는 나를, 엄마는 어느 할머니의 뼈로 내 몸의 뼈대를 세웠나 어느 할머니의 피톨로 바람만 불어도 펌프질하는 내 왼쪽 심장을 오려붙였나 엄마는 또, 어느 할머니의 살가죽 벗겨 은분 금분 입힌 내 껍데기를 만들었나 벗겨지지 않는 옷의 유전자를 나에게 입혔나 밤의 유곽처럼, 검은 음부처럼, 삼켜지지 않는 밤의 흔적들을 저토록 반지르르하게 은폐시켰나

엄마의 밖은 할머니의 방, 엄마의 안은 내 무덤,

마트로쉬카 인형, 겹겹 무덤을 열고 나는 얼마나 많은 할머니를 낳아야 하나 나는 또, 나를 낳아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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