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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고의 항아리

죽은 돌

by 너머의 새 2015. 10. 22.

죽은  /강영은

 

 

 제주에서는 죽은 돌이 산 사람을 지킨다

 진펄 같은 검은 몸체는 한 덩어리 죽음에 불과하지만 화산

이 베껴놓은 크고 작은 화첩이어서 생이* 날개에 뱀 모가지를

얹혀 전설을 부풀리거나 제주꼬마팔랑나비가 넘나드는 유곽

이 되기도 한다

 가까이서 보면 한 번도 소리 내어 울어본 적 없는 가슴팍, 올

망졸망한 자식들을 떠나보내는 갯가의 돌덩이들은 늘 젖어 반

지르르하다

 먼 바다에 바람이 일 때면 칭얼대는 파도를 끝없이 안아주는

황홀한 그늘, 뜨거운 불길에 눈도 코도 입도 녹아내린 몸

뚱어리는 아랫뜨르* 과수댁을 품은 돌하르방으로 서 있다

 무너질 때 산목숨보다 더 크게 소리 내는 돌 더미는 죽은

돌이 아니다

 태풍이 불때마다 복숭아 뼈까지 주저앉히는 아버지, 석탄

더미 같은 돌무덤 앞에서 나는 매번 발이 고꾸라져 어깨를 들썩이

는 것인데

 돌에서 왔다가 돌로 되돌아간 죽은 뼈들이 만 팔천名의 神*

불러오는 것인지

 제삿날에는 산 사람이 죽은 돌을 지킨다

 

 

*생이/새, 아랫뜨르/ 아랫마을..........제주방언

*만 팔천名의 神......제주의 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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