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겨울 비/강영은
거기엔 첫눈 온다는데 여긴 비 내리네 첫눈이 되지 못한 비,
여기 내리네
빌레못동굴 속에 앉아 거기 내렸던 비의 표정을 바라볼 뿐
인데 음정 높은 콧소리로 활주하는 첫눈의 환호작약, 흰 작
약처럼 거긴 거리가 활짝 피네
초대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촉감의 간격, 십초 동안 택한 저
세상처럼 뒷 잔등을 버린 지
오래인 비가, 비가처럼 내리는데 나의 안부는 눈과 비 사이
를 헤매네
여긴 언제나 첫눈이 없지 함께 미끄러질 사람이 없지
오래 전 죽은 얼굴을 꺼내 첫눈 내렸던 언제인가를 생각해
보네 비양도와 차귀도 사이 돌아앉은 구름처럼 추억이 되지
못한 간극을 생각하네
거기 없는 나와 여기 있는 나, 이어폰을 꽂은 나와 나 사이
거리가 있네 눈썹아래 수위가 높아지네
비가 와도 젖지 않는 바다, 나는 언제나 내리면서 녹는 눈송
이로 네게 닿고 싶었네 그래, 그래, 나는 떠도는 공기와 물 아
니, 아니, 허공의 틈새를 채우는 첫 눈(目)
흘러내리는 슬픔을 딛고 따뜻한 흙 속으로 스며드네 갯가
의 돌멩이들이 희게 번지는 눈자위를 지켜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