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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등 바다의 등

나는 항상 성탄절이다/

by 너머의 새 2015. 10. 22.

나는 항상 성탄절이다/ 강영은

                          - 고 이탄 선생님 영전에

           

  

                             

선생님, 

낭송회가 아직 끝나지 않았는데 가셨습니까?

뒤풀이는 언제 하라고,

동네 아저씨가 구멍가게에 가듯 이발소에 가듯 

이리 말없이 가셨습니까? 

“말없음 중에 말을 해 준 예수의 목젖”처럼

“이 땅의 평면들, 울퉁불퉁한 평면”들에게

반쪽의 사랑밖에 못하신다고,

그리도 울리시더니 기어이 가셨습니까? 

"만날 수 없는 저 높이의 직선“과

“만날 수 없는 저 아래의 직선"같이

엇갈렸다면

선생님, 한 번만이라도 뒤돌아보아 주십시오

그 눈빛, 그 음성, 가끔 쓰시는 체크무늬 중절모까지

눈동자 속에, 마음속에, 그리움 속에 

꼭 붙들고 있겠습니다

“나는 항상 성탄절이다”라고, 

날마다 태어나셨던 선생님

이 땅의 아픔과 슬픔을 기꺼이 안으신 채

곧고 올바르게 걸어가셨던

당신의 그 길, 당신 닮은 모습으로 걷겠습니다 

선생님,

당신을 기다리는 그분 곁에서

날마다 즐거운 탄일이 되십시오.

채 울리지 못한 종소리를 마음껏 울리십시오

부디 편안히 가시옵소서

 

* 인용구는 이탄 선생님의 마지막 시집,『동네 아저씨』에서 가져옴

 

ㅡ미네르바 2010년 겨울호 이탄 시인 추모 특집에서ㅡ 

 

■ "이탄 선생님 별세" 라는  문자 메세지를 받은 건 별을 세던 밤의 초원에서였다. 별빛이 지상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몽골의 밤하늘을 가로질러 온 별빛을 받아들고 한동안 울음도 잊은 채 멍하니 서 있었다.  부족한 내게 손을 내밀어 시인의 길을 걸어가게 하셨던 선생님, 시인이라는 이름표를 붙여주시고  말없이 격려해주셨던  선생님,  시공이 어긋나는 바람에 장례식에 참석하지 못한  죄를  어이 용서 받을 것인가,  미네르바 초대 회장직을 맡았을 때 청맹과니처럼 덜렁대는 나를 인자한 아버지처럼 품어주셨던 모습을 잊지못한다. 선생님을 생각할 때마다 고아가 된 것처럼  눈물이 쏟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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