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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머의 뉴스

문학사상 2008년 문학계 연말결산 시 부문

by 너머의 새 2015. 11. 19.

문학사상 2008년 문학계 연말결산 시 부문

 
 
 
꾸준함, 풍성함, 그리고 새로움으로서의 한국 시단/ 송기한(평론가/ 대전대 국문과 교수)
 
 
선택과 배제
 
또 다시 한 해가 저문다. 끝없이 반복되는 계절의 순환을 보고 있노라면, 어제와 오늘은 어떻게 다르고, 또 지난 계절과 이번 계절은 어떻게 다른 것인가에 대해 자문 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이를 일상의 지루함 내지 반복이라 할 수 있을 텐데, 이에 젖어들게 되면 실상 이전과 이후를 구분 짓는 일이란 거의 의미 없는 일이 될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러한 일상의 편안한 반복을 즐기지 않을 뿐 만 아니라 뭔가 새로운 것을 찾게 되는 것이 보통이다. 지금이 이전과는 어떻게 다르고 또 지금은 어떻게 정립되는가에 대한 갈증을 계속 느끼게 되는 것이다.
 
 현재에 대한 자기 정립과 새것에 대한 갈증 콤플렉스는 비단 일상의 영역에만 국한되지 않는 것이어서 항상 새로운 것을 요구받는 문학의 경우에 더더욱 그 정도가 심한 것이 현실이다. 특히 한 해의 문학적 결실을 정리하고 총평하는 자리에서는 그러한 욕구들이 더욱 강렬해질수 밖에 없다. 이 시기만의 고유한 질을 담보해내는 것이 무엇인가를 찾아내고 자리매김해야 하는 노력이 다른 어느 시기보다 강렬해진다는 뜻이다. 그러나 그러한 노력이 언제나 대가를 받는 것은 아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을 수 있는 한 해에서 이루어지는 문학의 질과 양은 이전의 시기와 비교할 때, 크게 상이했던 적은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올해의 시단을 논의하는 지금위 이 자리도 이전의 경우와 별반 다를 것이 없다. 한 해의 시단을 정리하고 총평하는 곳에서 과연 작년의 경우와 무엇이 달랐고, 그 다른 것이 현재의 시단에서 어떤 모양으로 가지를 쳐 왔는가에 대해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부분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한 해의 시단을 정리되어야 하고, 이에 대한 적절한 시사적, 혹은 문단 적 의미들에 대해서 검토가 이루어져야 한다.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일까. 어느 해가 그러하듯 올 한 해도 무수히 많은 시집, 셀 수 없이 많은 시들, 그리고 다양한 시 경향을 가진 신인들이 등장했다. 이 많은 양적 풍부함을 질적 단순화로 어떻게 정리해 낼 수 잇을까. 이 물음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우선 몇가지 전제가 필요하다고 본다. 하나는 선택의 문제이고 다른 하나는 배제의 문제이다. 그런데 이는 두개의 상이한 방향 같지만 실은 하나의 문제이기도 하다. 선택이 있으면. 배제란 당연히 뒤따르는 연속적 행위이기 때문이다.
 
 우선 비평가의 세계관이 선택의 기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세계관이라는 것이 주관적인 것이기에 어느 정도의 객관성을 확보하느냐가 이 기준의 성패를 좌우한다 보겠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이전 시기와 현재의 그것과의 차별성이다. 이는 한 시인의 시적 진보와 문학적 발전과 관계되는 문제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주목할 만한 시인의 등장이다. 신인이란 세대론적 관점에서 참신성이 전제되는 것이기에 그 양적 풍성함 못지않은 질적 우수성을 갖고 있는 경우라 하겠다. 이런 기준에도 불구하고 여기에 포함되는 작품들은 셀 수 없이 많다. 이외의 또 다른 기준이 필요한 것은 이 때문이다. 그렇기에 인접성의 논리 역시 주요한 판단 기준이 될 수 밖에 없다. 어느 시집이 보다 근접한 자리에 놓여 있는가 하는 문제가 바로 그것이다.
 
풍성함, 꾸준함, 그리고 새로움
 
이런 기준으로 금년 시단의 흐름을 정리해보면, 풍성함, 꾸준함, 그리고 새로움으로 정리해 볼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다른 시기와 비교해도 부족함이 없을 정도로 올해에는 많은 시집들과 시들, 그리고 시인들이 배출되었다. 새로운 계간지 <한국의 현대시>도 창간되엇다. 그것이 풍성함이다. 다음은 꾸준함인데, 이는 두가지 측면에서 그러하다. 하나는 원로, 중견 할 것 없이 대부분의 시인들이 꾸준히 시를 발표하고 시집을 발간해 내엇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서정시 본연의 고향인 서정성을 계속 유지내지는 강화했다는 점이다. 일부 실험시나 전위시의 반열에 드는 작품들이 전혀 없엇던 것은 아니지만, 시의 본류는 서정성의 강화 내지 지속으로 꾸준함을 보여주었다. 그것이 금년 시단의 가장 큰 특징이라고 하겠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새로움의 측면인데, 이는 서정적 인식의 새로움과 불가분의 관계에 놓이는 항목이다. 어떻게 그러한지는 시집마다의 개성을 탐색하면서 이를 대신하고자 한다. 먼저 올해 간행될 시집들 가운데 위의 기준에서 걸러진, 주목의 대상이 될만한 시집과 논의할 시집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오세영,<임을 부르는 소리 그 물소리><랜덤하우스>
유안진,<거짓말로 참말하기><천년의 시작>
나태주,<눈부신 속살><시학>
이기철,<사람과 함께 이 길을 걸었네><서정시학>
오규원,<두두><문학과 지성사>
이사라,<가족박물관><문학동네>
김백겸,<비밀정원><천년의 시작>
문현미.<가산리 희망발전소로 오세요><시학>
이길원,<헤이리 시편><문학아카데미>
채풍묵,<멧돼지><천년의 시작>
강영은<녹색비단구렁이><종려나무>
김미숙,<눈물, 녹슬다><시학>
주승택,<앵무새와 악어새><태학사>
 
서정과 자아의 강화
 
우선 원로시인들의 창작활동이 왕성했다. 오세영, 유안진, 이기철, 나태주 시인 등이 새 시집을 상재햇다. 이들은 지난 몇십년동안 우리 시단을 이끌어 온 원로들이다. 이들의 왕성한 시창작은 그만큼 우리 시단의 풍성함과 원숙함을 대신하는 일이 아닐까 한다.
-중략
중견 그룹에 해당하는 시인들도 많은 시집을 펼쳐보였다. 중견이란 말그대로 중간자적 그룹이다. 세대별로도 그렇고 문단의 등단 경력에서도 그러하다. 그렇기에 이들은 시단의 허리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이들이 언제나 주목의 대상이 되는 것은 이 때문이 아닐까
-중략
 
시집을 새로이 상재한 시인들이 많기 하지만, 우선 주목의 대상이 되는 시인들과 시집들은 다음의 경우들이다. 채풍묵,<멧돼지><천년의 시작>강영은<녹색비단구렁이><종려나무>김미숙,<눈물, 녹슬다><시학>주승택,<앵무새와 악어새><태학사>등등이다.
-중략
강영은의<녹색비단구렁이>는 디지털 상상력을 보여주는 흥미로운 시이다. 소위, 문명이 주는 행운과 그 늪의 함정을 적절히 이용하여 자신만의 독특한 상상력을 일구어 내는 것이 이채롭다. 특히 자신의 몸에 새겨 들어오는 주름등을 통해 나와 타자를 구분하고, 그로부터 '내가 누구인가' 하는 존재론적 의문을 던지는 서정적 고뇌야말로 이 시집의 압권이라 할 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