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늘들/강영은
앞산 비탈을 오르는 잎갈나무* 가지 끝
저, 바늘들
바람이 몸통을 지날 때마다 우수수 떨어진다
끊임없이 수액을 퍼 올려
침침한 하늘을 깁기도 했던 그것들
지층 깊은 곳에 뿌리내린 단단한 슬픔을 끌어올려
제 안 어딘가
가늘고 뾰족한 생각의 끝을 만든다
바람이 지날 때마다
몇 음절의 비명을 질러대는 바늘잎 몇 개
저 바늘들은 내 몸의 어둠 뚫고 흘러나간
푸른 별빛의 강물을 깁고 싶었던 걸까
날카로운 이마의 핏줄 돋우어 생의 조각들을
시침질하는 누대(累代)의 삶 속
천년 전 어머니의 대물림한 바느질 내력으로
강물처럼 깊어진 제 몸의 바람소리
올올이 꿰매는 저, 존재방식이 나를 찌른다
존재의 어두운 강물을 흘러가는 나비 혹은 거지/ 고명수(동원대 교수)
시의 본령 중의 하나가 사물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보여주는 데 있다면. 그것은 지금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사물의 의미를 새롭게 부여하는 행위이므로, 시인은 '알려지지 않은 세계의 입법자' 라 한 셸리의 말처럼 시인은 한 사람의 창조자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강영은의 시에서는 사물들에 대한 새로운 내력과 새로운 해석을 만날 수 있었다.
바늘들이 우수수 떨어지는 것은 사람이 나이들어 머리카락이 빠지듯, 존재의 무상성을 느끼게 한다. 그것들은 끊임없이 생명을 '수액'으로 퍼 올리며 어두운 존재의 숙명을 이겨보려고 한다. 그러나 그것은 불가항력의 싸움일 터, 다만 인간 존재의 '지층 깊은 곳에 뿌리내린 단단한 슬픔'만을 끌어올릴 수 있을 뿐이다. 이렇게 존재의 슬픔에 눈뜬 시인은 날카롭게 '생각의 끝'을 벼려 '가늘고 뽀죡하게' 만든다. 존재의 부조리에 반항할 때만이 참 존재를 찾는다는 카뮈의 전언이 들려온다.
이렇게 실존을 자각한 인간의 의식은 시간의 바람에도 반항하여 '몇음절의 비명'을 질러댄다. 그것은 인간존재의 숙명적 어둠을 뚫고 나오는 절규의 몸무림이다. 그러할 때만이 '푸른 별빛'처럼 아름다운 강물의 유한성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강영은의 시는 이처럼 일상적으로 만날 수 잇는 주변의 사물을 자기화하여 깊이있게 사유해나감으로써 형이상학적인 인식에 도달한다.
시선, 2005년 여름호 젊은 시인 특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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