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너머의 리뷰

눈먼 박쥐의 돌진에서 눈부신 부재의 중심으로/ 신주철(강남대 겸임교수)

by 너머의 새 2015. 9. 7.

강영은의 시 11편을 접하고 촌평을 위해 어느 때와는 다른 '고감도의 안테나'(버려진 휴대폰에서)를 세워야 했다. 그러나 애당초부터 불량기가 있던 안테나는 여름 장마에 녹슬어 잇었고, 게다가 엉뚱하게도 가을산의 현란한 발성에 눈길을 빼앗시곤 해서 11편의 작품의 발신음을 해독하는 것이 용이하지 않았다. 이처럼 시행들 사이를 탐색하는 것이 쉽지 않으면서도 즐거울 수 잇었던 것은 작품들이 흔히 접하게 되는'아줌마'시의 범주를 단연 넘어서 있었던 점이다. 이것은 다소 늦은 나이에 문단에 나온 강영은 시인의 시정신이 육체의 나이를 거슬러' 환하게 몸을 켜들고(허리 띠에서) 있음을 입증하는 것이다. 이번 11편의 작품은 2002년과 2004년에 펴낸 두권의 시집에서 보여주었던 일면과 맥박이 닿아잇으면서도, 전반적으로 자아와 세계 존재의 심층에 훨씬 더 육박햇으며 그만큼 긴장을 유지하고 있다. 이러한 판단의 근거를 작품의 결들을 다라가며 살펴보고자 한다.

그녀의 몸은 깊은 동굴이거나 버려진 폐광이 되고 만 것일까
더 이상 발신음도 수신 음도 들리지 않는 적막 속
(중간 생략)

저기, 창자가 흘러나온 채 버려져 있는

-'버려진 휴대폰'


시적 화자에게는 앞 시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세계 또는 타자들로부터 단절되고 버림 받앗다는 의식이 있다. 유사 이래 생산한 도구 가운데 휴대폰만큼 사람들 가가이에서 애지중지 소용된 것이 잇었을까? 가수 유열의 멘트로 이어지는 00텔레콤 휴대폰 광고에서 어쩌다 휴대폰을 떨어뜨린 남자는 자신의 몸뚱이가 팽개쳐진 고통 이상으로 아파한다. 이제 휴대폰은 사람과 일심 동체여서 강영은의 시에서처럼 '그'가 되고 '그녀' 가 된다. 그래서 그는 '그녀'를 통해 세계를 수신하고 발신하며 그녀 도한 마찬가지다. 그런데 이렇게 늘 옆에서 사랑받고 세계를 연결하던 '그녀'는 '창자가 흘러나온 채 버려'진 것이다. 그렇다면 시적 화자는 언제 누구로부터 버림받은 것일까?

유기遺棄당한 제 몸의 젊음을 어쩌지 못해
촉수 낮은 달빛을 움켜쥐었던 그 '아가씨나무'의
손톱 같은 가지 끝
뾰족한 가시에 찔릴 때마다 명자나무
그늘이 자주 출렁였다

-'내 슬픈 전설傳說의 22페이지'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도 없는 그를 향해
고감도의 안테나를 세웠던
그녀는 정말이지, 머나먼 신생대의 밤을 향해 돌진했던
한 마리 눈먼 박쥐가 아니었을까

-'버려진 휴대폰'

그녀가 버림 받은 것은 '머나먼 신생대'로 기억되는, 눈먼 박쥐처럼돌진했을 때이다.'그'를 향한 고감도의 안테나를 세웠다고는 하지만 그가 누구인지 또는 무엇인지를 알 수 없다. 다만,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나 없는 '그'라는 말을 통해 '그' 가 어던 특정인이라기보다는 아주 힘겹게 만날 수 있는, 그래서 어디에나 있는 것은 아닌 보편적 가치 같은 것임을 추측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에서 주목할 점은 돌진하던 젊음을 遺棄당한 것으로 기억하며, 그 기억의 그늘에 자주 출렁인다는 것이다. 더욱 끔찍한 것은 시적 화자가 돌진 했던 '그'가 조명을 비추면 '그늘은 영원히 그녀의 내부가 된다('그림자 연극'에서) 는 점이며, 그늘진 22페이지에는 내가 없었다는 존재부정을 낳는다.

이러한 화자에게 가녀린 발목으로 풀잎을 틀켜쥐고 잇는 잠자리의 모습은 '흙냄새를 향한 간절함으로/ 풀잎처럼 땅에 뿌리내리고 싶은 것이다'<닻>에서로 이해된다. 그리고 땡볕에 죽어 나뒹구는 지렁이는'울컥울컥 어둠을 게워내어/ 눅눅한 습기로 족쇄채워진 제몸의/ 슬픔을 풀려했던 것일까'<'허리띠'>에서 로 보인다. 잠자리와 지렁이를 통한 발화는 그것과 동일시 된 화자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절망과 상처 가운데에서도 시적화자는 "장미 넝쿨의 가시들. 무참히 짓밟힌/ 제몸의 아픔에게로 그늘을 이동시킨다<'세입자들'에서>처럼 자신과 세계를 응시한다. 그리고는 마침내 다음과 같이 그와 같은 시간들이 자신을 키워왔음을 깨닫는다.

시간의 순적한 어머니인 그녀 속에서
내 몸의 아픔을 꺼내는 사이
돌아갈 수 없는 시간들이 나를 키워왔음을 깨닫는다

-<서귀포 먼나무>

이와 같은 깨달음은 낮고 음울하고 힘겨운 것이지만, 한편 부단하고 질긴 과정으로 수행된다." 음파를 타고 이동해온 슬픔의 멜로디는 정직한 총알이다"<그가 나를 쏘았다> 라고 말하듯이 슬픔의 멜로디까지도 정직하게 대면하고 받아들였기 대문이다. 트라우마로 자리잡은 상처는 결코 그냥 사라지지 않으며 연약한 자아에게는 거듭 생채기를 내어 생활을 파괴하기까지 한다. 하지만 상처의 극복하는 길은 그것들과 맞섬을 통해서이다. 그리고 때로는 상처를 준 사태에 대한 인식과 통찰, 대결을 통해 한 단계 성숙한 자리로 나아갈 수도 있다. 아마 그어디쯤의 자리에 다음과 같은 시가 놓일 것이다

지상의 모든 길들 돌아 와
하얀 어둠의 옷 하나씩 벗을 때마다

더욱 작고 단단해지는
그, 눈부신 부재의 중심에서

나는 더 이상 만져지지않는
옷으로 남는다

'양파론' 부분

11편의 작품을 통해서도 알 수 잇지만, 강영은은 용기와 열정이 잇는 시인이고 그의 시는 단순하지 않다. 필자의 녹슨 감지력이 짚어내지 못한 부분은 다음 기회이거나 다른 평자들의 눈을 통해 조명될 수 잇을 것이다. 부디 시인의 정진함과 팽팽한 긴장력이 지속되기를 빈다.


2005년 미네르바 겨울호 '신작 소시집' 평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