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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등 바다의 등

첫사랑 극장

by 너머의 새 2016. 3. 7.

첫사랑 극장 /강영은
 
 

  여보세요, 여보세요, 수화기 저편이 응답 없는 날, 나는 팝콘 봉지 비우러 변두리 삼류
극장에 가요
 
  자막에선 빗방울 튀기지 않는 비가 죽죽 내리는데 빗줄기처럼 극장 의자에 기대어 앉아
자막 위를 헤엄치는 구름 물고기를 세어요
 
  한 마리, 두 마리, 세 마리,  네 마리 째의 기억이 흘러가는데 편집한 날씨와 상관없이 
필름은 자꾸 되감기고 비오는 자막을 지닌 나는 첫사랑을 시작해요.
 
  첫사랑을 심었던 벚나무 그늘에선 버찌가 익어가고 나는 새똥만큼 자라난 젖꼭지가 아
파 울어요 
 
  새가슴을 지닌 과거는 언제나 울기 마련이지만 가슴에 총상 맞은 새들이 흐느껴 우는 
오늘은 진짜 진짜 잊지마*를 상영하는 날,
 
  첫사랑을기다리다 나는 죽어요 화면 밖 내가 따라 죽어요  
 
  붉은 불이 켜지고 뉴스가 끝날 때 팝콘 봉지에서 벚꽃이 터져요 환생의 벚꽃이 펄,펄,펄,
거리를 덮는데 내가 사라진 벚꽃의 계절,
 
 여보세요, 여보세요, 죽은 여배우처럼 묵묵부답의 당신은 나는 어디 있죠? 
 
 
* 이덕화, 임예진 주영의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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