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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그늘

달콤한 그늘

by 너머의 새 2015. 9. 7.

달콤한 그늘/ 강영은




탑골 공원 벤치에 앉아 아이스크림을
빨고 있는 아이,
땀투성이 이마에 때 국물까지 질질 흘리면서
아이스크림을 빨다 말고
문득, 나를 쳐다 본다

내가 아이스크림이 된 것처럼 흠칫 놀란다
바람은 볼록하니 볼을 부풀리고 구름 아이스크림은
유리창에 줄줄이 흘러내린다
아이의 입 속으로 와르르 내가 빨려든다

세상이 온통 아이스크림이라는 듯
입술에 온 힘을 싣는 저, 집중력!

세상에서 가장 신나는 일이 빠는 일이라는 듯
세상의 어떤 그늘도 맛있다는 듯
내 젖줄을 쪽쪽쪽, 쭉쭉쭉, 빨아먹던 아가에게
몸을 통째 내주던 그때 진작 알았다

먹는 입에서 먹여주는 입이 된 나는 그때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그늘이었다
내 몸의 땡볕조차 저절로 사라지는 그늘이었다

두 볼을 고무풍선처럼 불었다 놓을 때 마다
시원한 그늘 한 뼘씩 자라는 아이,
작은 입 속으로 7월 무더위 에 달구어진 내가
한 순간 사르락 사르락 녹아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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