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에 대한 관찰은 계속된다/방민호
강영은 시인의 이름은 몇년 전에 접했던 것 같다. 그때 <유심> 잡지에서 올해의 시라는 것을 마련해서 처음 대상작을 선정할 때였다. 그해에 나온 <유심>에 실린 시들 가운데 뛰어난 시를 뽑아보는 것인데, 그때 강영은의 시가 눈에 들어왔다. 지금 그 시가 어떤 시였는가는 기억에 없다. 선정 과정에서 나는 강영은의 시에 마음이 기울어지기도 했는데 결국 선택된 것은 홍종화 시인의 <오래된 생불>이라는 시였다. 그 시는 어미 개의 모습을 생불로까지 본 것에 착안점이 있고 그것이 또한 단점이지만 동시에 높이 살 수 있는 덕목이었다고 생각된다. 또한 시인의 마음을 자연스럽게 따라갈 수 있도록 해준 리듬의 조율도 좋았다. 그럼에도 나는 강영은 이라는 낯선 시인의 이름을 마음에 담아두었고 여기저기서 그 이름을 발견하곤 했다. 그의 시의 스타일은 대체로 한결 같았다. 그것은 시단에서 선례를 찾자면 박정대 시인과 같다고 할 수 있다. 그렇게 산문적인 시행을 연갈이를 해가며 쓰는 스타일은 어딘지 모르게 세련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이 언제나 성공적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이것이 굳이 전형적인 느낌을 주는데 까지 가면 그 성패를 새롭게 따져 볼 시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문제와 별도로, 강영은 시인의 이번에 <시현실>에 발표한 시는 이장희의 <봄은 고양이로소이다>(1925) 연상시키는 흥미로움이 있다.
고양이 한 마리, 눈을 비비고 입을 훔치는 것이 날카로운 고요를 벼리어내니 톱날을 뺀 발톱은 얼마나 부드러운 연장이냐
가느다란 떨림이 가르랑거리는 목덜미를 넘어서니 비어있으면서 꽉 차 있는 어떤 고요가 고양이의 발톱을 연장으로 삼은 것이냐
타지 않는 형상을 배운 어떤 고요가 천만 번 움직여도 보이지 않는 내 마음의 발톱과 교감하는 것이며 간섭하는 것이냐
잔잔한 파동이 스치고 간 빈집의 고요는 세수하던 손이 사라지면 그 뿐이지만 내 마음의 무너진 담장을 지키는 당신도 한 때는 부드러운 연장이어서
모란 꽃그늘에 기대어 천만년 피고 지던 어제가 지척인데 길이 끊어지고 마음 가는 곳이 없는 그리움이란, 어떤 발톱 속에 들어 있는 고요한 연장이냐
누구 입속에 들어 있는 싱싱한 물고기냐 누구 눈 속에 들어있는 싱싱한 원앙이냐
-강영은<이암의 화조묘구도>(시현실 2012년 겨울호)
고양이를 노래한 시가 많되, 이장희의 <봄은 고양이로소이다>의 감각적 표현을 능가하는 시는 여지껏 다시 볼 수 없었다고 해야 맞을 것이다. 나 또한 즐겨 고양이 (괭이)를 시로 옮기는 사람이지만 감각적 차원의 묘사와는 거리가 먼 시를 쓴다. 이암은 연산군 조에 태어나 화인으로 활동한 왕가 집안 사람이라는데, 그의 동물 그림들을 몇 점 살펴보니 그렇게 우리 사람에게 친근할 데가 없다. 하지만 한국적인 분위기가 그렇게 유니크 하다고 할 수가 없다는데, 정말 그렇다.
오른쪽에 시 옆에 붙여놓은 그림을 보라. 이 고양이는 차라리 개다. 개가 나무에 올라가 새를 희롱하는 듯한 이 그림을 보고 , 시인은 그 앞에 위에서 본 바와 같은 시를 읊어댔다. 본래 <화조묘구도>는 아래 그림대로 두 폭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시의 두번 째 연은 두촉 중 개를 보고 개를 보고 가르랑거리는 듯한 오른쪽 그림을 본 소감을 쓴 것이 아니겠는지?
자, 이 시의 화자는 이안의 그림을 보고 먼저 그림 안의 고양이와 정적 같은 것에 먼저 마음을 빼앗기고, 다시 그림에 나타난 고양이와 새의 친애 같은 것을 보면서 어떤 사연을 떠올리고 있는 것 같다. 이 때문에 이 시는 단순한 감각의 시가 아니라 감각너머에 있는 보이지 않는 기운과 감정으로 노래의 대상을 옮겨 가고 있다. 화자는 그림을 보며 잃어버린 사랑같은 것을 되돌아 보는 것 같기도 하고, 또는 이 그림이 그려지던 때로 돌아가 그윽한 심사에 잠기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여기서 이 시에서 화자가 노래하고자 한 것이 무엇이었느냐를 더 정밀하게 캐내려고 하지 않겠다. 다만, 나는, 이 시인이 이 따뜻하고 다정한 그림과 교섭할 수 있는 "마음의 발톱" 을 가지고 있다는 것, 이 발톱을 잘 다듬어 가고 있다는 것을 이 자리를 빌려 유념해 둔다
- 『유심 』2013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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