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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머의 리뷰

고양이에 대한 관찰은 계속된다/방민호

by 너머의 새 2019. 1. 8.

고양이에 대한 관찰은 계속된다/방민호

 

 

 강영은 시인의 이름은 몇년 전에 접했던 것 같다. 그때 <유심> 잡지에서 올해의 시라는 것을 마련해서 처음 대상작을 선정할 때였다. 그해에 나온 <유심>에 실린 시들 가운데 뛰어난 시를 뽑아보는 것인데, 그때 강영은의 시가 눈에 들어왔다. 지금 그 시가 어떤 시였는가는 기억에 없다. 선정 과정에서 나는 강영은의 시에 마음이 기울어지기도 했는데 결국 선택된 것은 홍종화 시인의 <오래된 생불>이라는 시였다. 그 시는 어미 개의 모습을 생불로까지 본 것에 착안점이 있고 그것이 또한 단점이지만 동시에 높이 살 수 있는 덕목이었다고 생각된다. 또한 시인의 마음을 자연스럽게 따라갈 수 있도록 해준 리듬의 조율도 좋았다. 그럼에도 나는 강영은 이라는 낯선 시인의 이름을 마음에 담아두었고 여기저기서 그 이름을 발견하곤 했다. 그의 시의 스타일은 대체로 한결 같았다. 그것은 시단에서 선례를 찾자면 박정대 시인과 같다고 할 수 있다. 그렇게 산문적인 시행을 연갈이를 해가며 쓰는 스타일은 어딘지 모르게 세련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이 언제나 성공적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이것이 굳이 전형적인 느낌을 주는데 까지 가면 그 성패를 새롭게 따져 볼 시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문제와 별도로, 강영은 시인의 이번에 <시현실>에 발표한 시는 이장희의 <봄은 고양이로소이다>(1925) 연상시키는 흥미로움이 있다.

 

 

  고양이 한 마리, 눈을 비비고 입을 훔치는 것이 날카로운 고요를 벼리어내니 톱날을 뺀 발톱은 얼마나 부드러운 연장이냐  

  

  가느다란 떨림이 가르랑거리는 목덜미를 넘어서니 비어있으면서 꽉 차 있는 어떤 고요가 고양이의 발톱을 연장으로 삼은 것이냐  

 

  타지 않는 형상을 배운 어떤 고요가 천만 번 움직여도 보이지 않는 내 마음의 발톱과 교감하는 것이며 간섭하는 것이냐

  

  잔잔한 파동이 스치고 간 빈집의 고요는 세수하던 손이 사라지면 그 뿐이지만 내 음의 무너진 담장을 지키는 당신도 한 때는 부드러운 연장이어서  

 

  모란 꽃그늘에 기대어 천만년 피고 지던 어제지척인데 길이 끊어지고 마음 가는 곳이 없는 그리움이란, 어떤 발톱 속에 들어 있는 고요한 장이냐

 

  누구 입속에 들어 있는 싱싱한 물고기냐 누구 눈 속에 들어있는 싱싱한 원앙이냐   

            

                                               -강영은<이암의 화조묘구도>(시현실 2012년 겨울호)

 

 

 고양이를 노래한 시가 많되, 이장희의 <봄은 고양이로소이다>의 감각적 표현을 능가하는 시는 여지껏 다시 볼 수 없었다고 해야 맞을 것이다. 나 또한 즐겨 고양이 (괭이)를 시로 옮기는 사람이지만 감각적 차원의 묘사와는 거리가 먼 시를 쓴다. 이암은 연산군 조에 태어나 화인으로 활동한 왕가 집안 사람이라는데, 그의 동물 그림들을 몇 점 살펴보니 그렇게 우리 사람에게 친근할 데가 없다. 하지만 한국적인 분위기가 그렇게 유니크 하다고 할 수가 없다는데, 정말 그렇다.


 

오른쪽에 시 옆에 붙여놓은 그림을 보라. 이 고양이는 차라리 개다. 개가 나무에 올라가 새를 희롱하는 듯한 이 그림을 보고 , 시인은 그 앞에 위에서 본 바와 같은 시를 읊어댔다. 본래 <화조묘구도>는 아래 그림대로 두 폭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시의 두번 째 연은 두촉 중 개를 보고 개를 보고 가르랑거리는 듯한 오른쪽 그림을 본 소감을 쓴 것이 아니겠는지?

  

자, 이 시의 화자는 이안의 그림을 보고 먼저 그림 안의 고양이와 정적 같은 것에 먼저 마음을 빼앗기고, 다시 그림에 나타난 고양이와 새의 친애 같은 것을 보면서 어떤 사연을 떠올리고 있는 것 같다. 이 때문에 이 시는 단순한 감각의 시가 아니라 감각너머에 있는 보이지 않는 기운과 감정으로 노래의 대상을 옮겨 가고 있다. 화자는 그림을 보며 잃어버린 사랑같은 것을 되돌아 보는 것 같기도 하고, 또는 이 그림이 그려지던 때로 돌아가 그윽한 심사에 잠기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여기서 이 시에서 화자가 노래하고자 한 것이 무엇이었느냐를 더 정밀하게 캐내려고 하지 않겠다. 다만, 나는, 이 시인이 이 따뜻하고 다정한 그림과 교섭할 수 있는 "마음의 발톱" 을 가지고 있다는 것, 이 발톱을 잘 다듬어 가고 있다는 것을 이 자리를 빌려 유념해 둔다

 

                           - 『유심 』2013년 2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