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을 위한 예언서/강영은
초저녁별과 나 사이, 꽃잎 위를 기어가는 투구벌레의 등이 꼭짓점이다. 제 등이 꼭짓점인지 모르는 황금 갑옷이 반짝일 때마다 막 피기 시작한 꽃잎이 휘어진다.
곡선을 봉인한 날개 속에 죽음이 유지되기를 원할 뿐, 꽃잎을 덮고 있는 어둠을 보지 못한 당신은 에게해의 하늘을 건너 온 별빛이라고, 노래한다.
핀다는 것은 경배 받는 자이며 경멸 받는 자의 노래, 대지가 받아 적는 어둡거나 환한 문장이라는 걸, 나는 말하지 못했다.
순간의 영원 같은 꽃의 화엄에 양 날개를 묻은 투구벌레처럼 당신은 영원히 입을 다물 수 있나,
사랑에 대한 최초의 예언서는 알지 못하지만 삼각형의 문장을 접는 당신의 입속으로 붉은 모가지가 툭, 떨어진다.
곡선으로 피었다 곡선으로 지는 꽃,
태양의 문신을 몸에 새긴 투구벌레는 검게 빛나는 도리아식 기둥을 숭배할지 모르지만 꽃의 신전을 삼킨 당신을 나는 지평선이라 부른다.
------------------------------
피어나는 모든 꽃 속에는 죽음이 들어있습니다. 가장 아름다운 순간은 어쩌면 소멸과 가장
가까운 순간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시는 표면적으로는 꽃을 말하고 있지만 그 속을 자세
히 들여다보면 사랑에 대해 말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절정 속에는 언제나 배신
이, 그리하여 소멸이 잠재하고 있다고 경고하고 있는 시인은, 하지만 이 시를 통해서 허무를
말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순간과 영원이, 피는 일과 지는 일이, 빛과 어둠이, 경멸과 경배가
서로 자리를 바꾸게 하는 원동력은 바로 사랑이라는 것을, 그리하여 이 세계가 굴러가는 이
유가 그 때문이라는 것을 하고 있습니다.
- 시인 최형심
'너머의 리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문정희, 문학집배원, 시배달 ,「허공 모텔」 (0) | 2019.01.18 |
---|---|
제주 삶과 문화 '컬쳐제주'에 녹아나다 (0) | 2019.01.18 |
시인이 꾸는 꿈, 함께 꿈꾸는 인류 (0) | 2019.01.17 |
'올해의 좋은 시' BEST 10 『다층』 2012년 겨울호 (0) | 2019.01.17 |
이승과 저승에서 쓰는 사랑편지/ 이성혁 (0) | 2019.01.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