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침반/강영은
복사꽃 진다 볕뉘에 피었던 복사꽃 진다 바람 한 점에 겹겹 허공,
천길 벼랑 너머 천랑성 뜬다
사나운 별빛에 물어뜯긴
복사꽃 되는 일도 복사꽃을 바라봄도 저무는 봄밤의
명주바람 탓, 실낱같은 바람은 꼬리를 숨기는데
돛을 단 별자리가 몸을 트는 저녁은 남쪽이 멀다
복사꽃 지는 마음은 삿대가 짧다
꽃이 진다는 건 지나간 별의 방향을 묻는 일
별의 방향만 읽어내는 꽃인 것처럼
당신에게 가는 길이 그러했으니
몸속에 별자리를 묻은 나는 자석이어서
안개 낀 밤에는 뱃속에서 새가 울었다
가수알바람 부는 흐린 밤에는
쇠가 된 가슴에서 거북이가 기어 나왔다
꽃 지는 남쪽이 그리운 건 무슨 까닭인가
- 시집 『풀등, 바다의 등』에서
복사꽃이 지고나면 천랑성이 뜬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 했던가.유한한 존재로서
의 꽃이 피고 짐을 경험한 시인에게 무한적 존재로서의 천랑성의 발견은 그 자체로서 아름
다운일이다. 명주바람에 흩날려 떨어져버린 복사꽃에 대한 미련도 잠시, 불어오는 서풍(가수
알바람)을 따라 흩날려가는 그 자리에 떨 오른 천랑성 같은 영원한 사랑을 간구하는 시적
화자의 정수가 물씬 풍겨 나온다. -중략-
올해의 좋은 시로 선정된 우리 시단의 흐름을 살펴볼 때, 현대 사회에서 시인들이 추구하
는 삶은 결국 어떤 방식으로든 독자들의 그것과 만나게 되고, 이것이 현대시의 흐름으로 귀
착된다고 볼 수 있다. 이렇게 보면 최근에 와서 드러나는 시적 특질로는, 거대 담론의 퇴조
가 분명해진 점을 들 수 있겠다. 역사와 현실이라는 거대한 메시지를 담아왔던 시들이 사회
와 현실을 반영하면서, 그 구체적인 삶의 현장을 거쳐 각자의 가슴 속으로 파고드는 까닭이
겠다. 한동안 우리 시단의 흐름을 분석하고 쪼갬으로 시를 읽어내거나, 손 끝의 재주로 비
틀고 뒤틀린 이미지의 나열은 시라는 이름으로 독자들 앞에 던져주는 시인들이 제법 많았
다. 그것은 '현대' 혹은 '현대성' 이라는 이름으로, 전통적 서정시를 '낡은 시'로 치부하던 모
더니즘의 시대가 서서히 막을 내리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나서 '신 서정' 이니 뭐니 하며
새로운 모습으로 시의 모습이 달라짐을 있음을 본다.
앞에서 살펴본 시의 경향들도 가만히 살펴보면 이잔의 '현대성' 이라는 이름만으로 시를 읽
어내기에는 뭔가 모자란 느낌이 있어 보인다. 이러한 측면에서 인간의 전인적 인식을 한편
의 시에 담아내는 통합주의 혹은 총체시로서의 변화를 보는 것은 섣부른 판단일까,
<올해의 좋은시> 총평 중에서/변종태(다층 주간)
- 『다층』 2012년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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